1942년 4월, 일본은 자신들이 점령한 남방 지역의 자원들을 본토로 수송하고 동시에 일선 전역에 병력 및 물자들을 수송하는 상선들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해상호위대라는 조직을 창설을 하게 됨.
해상호위대는 총 2개 제대로 되어 있는데, 제1해상호위대와 제2해상호위대로 나뉨. 그 중에서 제1해상호위대는 내부 제도를 통해 운항통제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각 상선들에 대한 현장 항행 및 지휘를 하게 됨. 제2해상호위대도 운항통제반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전쟁 중 자료소실 및 제2해상호위대의 사이판 전투 중 옥쇄, 부대해산 등의 사건으로 인해 정확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게 되었음.
이 운항통제반은 기본적으로 일본해군 예비역 중좌~대좌급 장교가 운항통제관으로서 보임되고, 예하로 통신/수기직별 하사관, 수병 일부가 운항통제관의 직속으로 배치를 받음.
뭐 모든 선단에 운항통제반이 편성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운항통제반이 동승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선단 내 최선임 호위함 함장이 그 임무를 대리로 수행하게 됨.
1942년 11월 4일부터는 명칭이 좀 바뀌어서 운항지휘반으로 바뀌기는 하는데, 어차피 그게 그거고 이들 운항통제반은 1944년 4월경에 특설호위선단사령부가 창설되기 전까지, 일본 측 수송선단 현장지휘를 해왔던 양반들임. 물론 완전히 특설호위선단사령부로 지휘권이 일임된건 아니라서, 히-72선단같이 제6호위선단사령관과 같이 수송작전을 지휘하는 등 부분적으로 전쟁 후반에도 수송선단 지휘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음.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음.
일단 적지 않은 운항통제관들이 전반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애당초 현역 일본해군 장교가 아니라 예비역이었다보니 당최부터 요즘전쟁 트렌드가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편이었음. 즉 퇴물에 늙다리들인데, 그와중에 성격까지 지랄맞은 인간상이면 호위함 함장들이나 상선 선장들에게 갑질하고 돌아다니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음. 의견이나 건의사항 제대로 반영 안되지, 쫀심 믿고 밀고나가지...
물론 모든 운항통제관들이 다 성격 지랄같은건 아니라서, 자기가 요즘전쟁 트렌드 못 따라가고 능력 딸리는걸 알아서 의견을 종합받거나 지휘를 어느정도 능력있는 양반에게 일부 위임하는 등의 모습도 있었음. 그렇다 보니, 이건 개인 차를 좀 많이 탔음.
계급도 못해도 중좌급이라 어지간한 구축함 함장보다도 높지, 그 와중에 일부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이나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총장(해군병학교 28기)이랑 해군병학교 동기임을 자처하는 양반까지 있을 정도였음.
무엇보다 운항통제관들은 휘하에 배속되는 참모가 단 한 명도 없었음.
실질적으로 예하에 있는건 통신이나 수기직별 하사관이나 수병 몇 명이 있는 정도인지라, 대부분 업무를 자기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보니 개인당 책임져야 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아 중압감이 상당했음. 거기다 능력이 능력인지라 대규모 선단 운영 관련으로 그 지휘능력 역시도 굉장히 의구심을 많이 받아왔음. 이 대규모 선단 운영능력 의심은 1944년 4월에 특설호위선단사령부 창설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되기도 함.
참모 부재가 참 엄청난 결점임.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해군의 장교 육성 및 진급 관련 문제랑 엮인 문제인데, 일본해군은 해군병학교 졸업 인원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대좌 진급을 원칙으로 소수 양성주의를 택해왔는데 이러다보니 중견 장교가 부족해지고 2선급에 해당하는 선단 호위업무에 일선 해군 중견급 장교를 배치하기에는 인원 여유가 극도로 부족한 것에 기인했음.
여튼 일은 사실상 혼자 해야하지, 능력은 딸리지 하니 생각보다 이 양반들은 알게모르게 곶통받는 양반들이었음. 저러니 일이 제대로 되겠냐고요? 사실상 자리에 앉혀놨다 정도지 실제 임무수행 역량을 절대 전부 발휘 못하는거임.
참 골때리게도, 운항통제반의 후신에 해당하는 특설호위선단사령부 역시도 제대로 된 참모부를 1944년 11월까지 제대로 보유하질 못했다는 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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