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에서는 공산당이 급격하게 세를 불리고 있어서 당장이라도 혁명이 터질 분위기였습니다.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1946년 5월 12일, 세타가야 구민들이 쌀을 달라며 데모를 했습니다.

배가 고파 죽겠으니 어떻게든 해달라는 데모였습니다.

데모대는 마침내 궁성 안까지 들이닥쳐 "천황이 매일 먹는 식단표를 보여 달라!" 며 전대미문의 절규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받아보니 음식들이 별 것 없다는 것을 알고 어이없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게다가 1주일 후인 5월 19일, 도쿄도민 전체 규모로 "쌀과 밥 획득 인민대회", 이른바 식량 메이데이가 히비야 공원에서 열렸는데

열기가 매우 달아올라서 참가자는 25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많이 세워진 플래카드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국체는 보호되었다

짐은 배터지게 먹었다

너희들 인민 

굶어 죽어라

어명어새


커다랗게 쓰인 이 글귀에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당시 일본 형법에는 불경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실을 업신여기는 것도 유분수지 괘씸하다는 명목으로 플래카드를 만든 마쓰시마 마쓰타로가 체포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불경죄는 폐지되었고 마쓰시마는 무죄방면되었습니다.

이 정도로 일본 국내가 사회주의화 되고 도쿄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상당히 고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도 가즈토시 저 "쇼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