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희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조국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라크 육군 중령 무스타파 두라이미는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정규군은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기 전부터, 바트당이 이라크를 지배하기 전부터 있던 조직이고 후세인보다 조국에 충성했다. 하지만 상황은 슬로콤이 예상한 것보다 나빴다. 슬로콤은 이라크 군대가 최소한 병영은 지킬 줄 알았지만 병영이 모두 비어버렸던 것이었다. 이에 슬로콤은 그냥 해산시켜버리는 낫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미군과 국무부는 이라크 군대를 복귀시켜 이라크의 장래의 지도자들이 될만한 인재들을 그 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슬로콤은 브리머에게 이라크 군과 정보부를 모두 해체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보고를 올렸고 브리머는 솔깃해져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브리머는 국무부도 CIA도 백악관도 무시하고 마음대로 일을 했다. 심지어 그의 부하들도 알지 못했다. 브리머는 이라크에 부임한지 11일만에 2호 명령을 발동, 이라크 육군, 공군, 해군, 정보부를 모두 해체하라고 했다. 덕분에 이라크 성인의 40%가 실업자로 전락했다. 데이비드 맥키어넌을 비롯한 미군 지휘관들은 팔짝 뛰었지만 브리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대통령 궁 앞에서 수천명의 전직 이라크 군대가 이라크 군대를 복구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미군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저희는 이런 식으로 대우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미국이 이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라크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여섯 식구를 먹여살리는 사드 옴리 소령이 씩씩거렸다. 브리머는 새로운 군대를 만들어 4천명을 모집할 계획을 발표했고 시위대는 사라졌다. 이에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이 군인 하나를 잡고 물었다.
"모두 어떻게 됐나요? 다들 새로운 군대에 들어갔나요?"
군인이 웃었다.
"모두 반란군이 되었답니다. 브리머는 기회를 잃은 것이지요."
2.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더글라스 페이스는 90일이면 이라크가 다시 정부를 수립해, 피해를 복구하여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퇴역 육군 중장 제이 가너에게 90일간의 통치를 부탁했다. 가너는 '전후 이라크를 위한 통합 미션 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엔 이라크에선 군사 작전보단 전후를 처리할 활동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현명한 가너의 판단이 담겨 있었다. 가너는 이라크에 연합군이 오래 주둔하면 안되지만 최우선적으로 치안 확보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가너는 시민 행정 분야에 대해선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고 바그다드가 함락되기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부분을 완성하지 못했다. 또한 가너는 자신이 시민 행정 분야에 무지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카니나 던포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자료가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우왕좌왕했다. 던포드는 4페이지짜리 메모만을 받았는데 그 정도의 자료를 받은 사람도 매우 드물었다. 그는 국무부에 더 많은 자료를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고 결국 인터넷 서핑으로 이라크에 관한 정보를 구걸하는 글을 올렸다. 카니 역시 전직 이라크 산업부 장관 전기와 이라크 시집만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엔 이라크의 미래를 위한 보고서가 있었다! 그것도 국무부가 200명의 이라크 망명자들을 17개 분야로 분류하여 인프라 재건, 언론 자유화, 유물 보호, 법 집행, 경제 복구, 민주정부 수립 등에 대해 2500페이지에 걸쳐 매우 자세한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되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ORHA(재건인도지원처)사람들에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수장은 국제변호사 토마스 워릭이란 사람이었는데 미국국방대학교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가너는 그의 식견에 크게 놀라서 그를 즉각 스카웃했다. 하지만 딕 체니는 워릭을 싫어했고 럼즈펠드를 통해 가너에게 압력을 넣어 워릭을 해고했다. 가너는 워릭이 자신의 팀원들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항변했지만 체니는 워릭이 찰라비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막무가내였다. 결국 가너는 워릭이 만든 값진 자료들 중에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한편 가너가 통치해야 하는 바그다드의 상황은 개판이었다. 미국 탱크가 후세인의 동상을 까부수고 난지 얼마 안되어 곳곳에서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이 정부청사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귀중한 정부 문서들을 털어갔다. ORHA 직원들은 CNN을 통해 자신의 부서들이 불타오르는 광경을 허탈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관리해야 할 부서들의 문서와 관청들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 엄습하는 두통에 괴로워했다. 결국 해탈하고 만 ORHA 직원들은 불타오르는 바그다드를 보며 자신의 부서를 알아맞추는 게임을 했다.
"저기 자네 건물 나온다!"
"저기 내 건물 나온다!"
"저기 내 건물 나온다!"
그래도 그들은 미군이 개입하여 이 난동을 막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당연해보이는 희망은 허상이었다. 미군은 후세인궁을 빼면 석유부 건물만 지키고 나머지 정부 청사들은 불타게 놔두었다. ORHA는 미군에게 필수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이라크 관청들에 대해 보고했다. 중앙은행을 시작으로 국립박물관을 비롯하여 모두 값진 부서들이었고 석유부는 우선순위에서 제일 밑이었다. 몇주가 지나고 나서야 이 보고서가 바그다드의 육군 사령관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ORHA는 뒤늦게라도 약탈의 피해를 늦추기 위해 애썼다. 외교관 출신의 이라크 임시 시장 바바라 보딘은 미군 중앙사령부에 중앙은행에 보관된 아시리아 제국의 유물들을 보호해달라고 애걸했지만 중앙사령부는 그게 뭐죠?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럼즈펠드는 이런 시설과 유물들을 보호해야 할 인력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라크 군대만 두들겨 부수면 되는데 치안 유지 병력이 무엇에 필요하단 말인가? 곳곳에서 약탈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럼즈펠드는 짜증을 냈다.
"자유는 원래 어수선한거에요."
"해방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라 전역에 약탈자들이 난무했다. 이라크의 주요 문화재가 보관된 박물관과 주요 건물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을 받았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자가 무기고를 습격했다. 사담 후세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바트당원들이 일반 시민들과 달리 우리 정부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언제든 돌아올 구실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기존 공무원들이 남아서 정부 업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대다수 공무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상군과 경찰은 물론이고 유전 노동자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안전 문제 때문에 제이 가너가 이끄는 팀이 이라크에 진입할 수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 20만 대군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펜타곤은 현지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제이 가너를 보낼 수 없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제이 가너는 침공한지 3주 후에야 현지에 도착했다. 그는 현지 상황을 보자마자 아연실색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회고록, 최고의 영예 292페이지.
당시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심각한 사태가 하나 있었다. 이라크가 해방되고 나서 몇주간 바그다드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약탈자들이 이라크 국립 미술관에서 귀중한 유물을 훔쳐나오는 광경을 보거나, 납치, 살해, 강간에 대한 보고서를 읽으며 경악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4월에 열린 NSC 회의에서 물었다.
"왜 아무도 이 약탈자들을 막지 않는 겁니까?"
돌아온 짤막한 답변은 바그다드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라크 경찰은 정권이 무너질 때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이라크 군대는 해산되었다.
전쟁 초기에 발생한, 이 심각한 상황은 그 후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낳았다.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바그다드를 안전하게 유지하지 못함으로 우리가 이라크 국민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첫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조지 워커 부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 323~324 페이지.
상황이 이랬다.이 난관을 뚫고 바그다드에 들어간 ORHA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근무했다. 그들에겐 침낭 말고 어떤 취사, 취침 도구도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도 없었고 기본적 생활이 가능한 본부란게 없었다. 원래 ORHA는 숙소로 호텔을 수리해서 쓰려고 했다. 후세인궁에 미국인들이 들어가는 것은 미국인들을 점령군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대안으로 군기지에 숙소를 잡으려 했으나 그러려면 출근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결국 후세인궁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되었다. 열악한 치안과 미적지근한 군의 태도 때문에 ORHA 직원들은 자신의 부서에 출입도 할 수 없었다. 호위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은 궁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미군은 부서 건물이 어딨는지도 몰랐다. 결국 카니가 돈 주고 산 바그다드 여행자 지도가 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뒤늦게 찾은 건물들은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아시리아 유적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폭격보다도 약탈 때문에 이라크는 통제 불능이었다. 그린존의 저자 라지브 찬드라카세란의 운전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라지브 씨, 민주주의란 참 좋은 거네요. 이제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가 있어요."
3.
약탈과 파괴로 혼란해진 이라크였지만 천만다행으로 일부 멀쩡한 공장과 부서들도 남아있었고 그런 부서들을 중심으로 ORHA팀은 이라크 재건을 시도했다. 이에 이라크 관료와 노동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바트당과 관련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후세인 정권과 바트당, 공화국 수비대를 욕하는 현수막까지 들고. 이라크인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바트당과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이전의 모든 일들은 바트당원들의 만행이라고 주장하며 고위 바트당원이 사라진 공백을 차지하려고 애썼고 빠르게 누가 이라크인들 사이에서 실세인지가 정해졌다. 물론 솔직하게 바트당과 관련없는 이라크인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높은 교육과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선 바트당 입당이 필수적이었고 고위 관리가 바트당원이 되지 않으려 하면 해고는 물론, 후세인의 숙청을 면치 못했다. 이렇기 때문에 이라크엔 최소 백만에서 200만에 달하는 바트당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부에선 700만 당원설까지 나왔지만 이는 과장이었다.
한편 ORHA의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많은 편의시설을 요구했지만 군은 이를 들은체만체 했다. 특히 외교관들에게는 샤워와 빨래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양복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꾀죄죄한 자가 어떻게 고위 관료와 거물들과 협상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빨래를 한번 하려면 세탁물들을 쿠웨이트로 보내기 때문에 2주나 걸렸다. 이라크인들을 고용해서 빨래를 시킨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휴대전화도 여전히 개통되지 않았고 컴퓨터도 없었다. 침대도 없고 차도 없었다. ORHA 직원들이 이라크 재건을 위해 출근해야 하는데도 경호해줄 미군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ORHA에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계획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있는 직원도 없고 군의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군이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카니는 군이 아직도 군사 활동이 정치 활동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지원부족으로 산업부에는 10만명에 달하는 인원이 있음에도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3명의 미국인만 있었다. 미국인들이 이라크에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만약 이라크가 후세인만 사라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면 ORHA도 제법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라크는 파괴되고 약탈되고 혼란 그 자체였다. 잘못된 전제 하에 세워진 조직은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도 무능력했다.
여기에 중앙의 무능함도 더해졌다. 가너는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이라크의 신정부 수립과 미국이 얼마나 이라크에 통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에 관한 계획서를 올렸으나 국방부, 국무부, 백악관 모두 그 계획서를 승인해주지 않았다. 한편 이라크 망명자들은 자신들이 이라크 과도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 이라크 망명자 아흐메드 찰라비, 아야드 알라위, 시아파 지도자 이브라힘 알자파리,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쿠르드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 마수드 바르자니로 구성된 소규모 위원회가 이라크 과도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였는데 이들은 수니파 이라크인을 한명 더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가너가 보기엔 이 위원회는 이라크의 여러 종파와 세력들을 모두 대변하는 것으로 이들에게 이라크 과도정부를 수립하게 해서 권력을 넘기면 괜찮을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 과도정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정치적 전환'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 국방부는 미국 네오콘의 입맛에 제일 잘 맞는 아흐메드 찰라비에게만 권력을 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명령하면 이라크 내부 인사들 사이에서 이라크를 대표하는 그룹이 형성될때까지 미국이 이라크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국무부가 반발할테니 가너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하게 함으로 자연스럽게 망명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국무부가 몰락하는 결과를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무부는 권력 이양 이전에 최소한 헌법을 작성하고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망명자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을 국방부와 체니는 찬성했지만 부시와 라이스는 뚜렷한 방침이 없었고 국방부는 대통령이 국무부 손을 들어줄까봐 전전긍긍했다.
한편 가너는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어주겠다고 전쟁을 일으켰으니 9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의 분노를 샀다. 가너는 국방부와 국무부의 계획을 절충하여 총선을 실시하는 한편 과도기 정부 역시 세우려 했는데 가너가 자신의 지인들인 쿠르드족 지도자들을 만나 이라크 과도정부 수립을 구상하기 시작하자 국무부의 콜린 파월과 리처드 아미티지가 반발했다. 한편 이라크 망명자들도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라크 망명자들은 이라크 내부 인사들을 포함시켜 다양성을 표방하려 했는데 그 '내부 인사'를 누구로 할지가 문제였다. 알라위는 이라크군이나 후세인 정부 출신도 넣자고 했으나 찰라비와 시아파 지도자들이 반발했다. 무엇보다 찰라비는 내부 인사들이 망명자들의 권력을 뺏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이라크가 아니라 자신이 통치하는 이라크였다. 결국 그 '내부인사' 선발을 위해 ORHA는 2003년 4월 28일 컨벤션센터에 이라크인 300명을 초청하여 회의를 열었다. 신이라크에 대해서 300명의 이라크인들은 저마다 의견을 쏟아냈다. 중구난방의 의견들이 쏟아져나온 회의였지만 이라크인들이 이라크인 망명자들을 원치 않는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하지만 다른 형태의 정부에 대해선 어떠한 논의도 합의도 없었다. 이라크인들은 과도정부 수립을 미국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 여겼지만 미국은 이라크인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백악관은 이라크 정권교체의 계획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개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백악관은 '능력을 갖춘 적절한 사람'을 보내 '책임을 지게 하자'고 했는데 그 '책임'이 뭔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과도정부를 지원하는 역할? 아니면 이라크에 신정부가 세워질 과도기를 대신할 통치자? 그것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백악관은 바그다드에 보낼 '책임자'를 물색했다. 제일 먼저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가 거론되었으나 그는 막 창업을 한 상태라서 시간이 없었다.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 윌리엄 웰드와 전 상원의원 윌리엄 코헨은 국방부와 부통령이 '제대로 된 공화당원 같지 않다'라고 물려버렸다. 전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3세와 전 대통령후보 밥 돌은 나이가 많아서 탈락되었다. 그때 체니가 제롬 브리머라는 자를 추천했다. 공화당 내부에 강력한 연줄을 가진 베테랑 외교관 출신으로 키신저와 헤이그 국무장관을 위해 일했다. 2000년에는 미국 국회에서 테러담당임무를 맡았고 9.11 이후에는 대통령자문위원회 소속 안보담당이었다. 4월 27일 럼즈펠드는 가너에게 ORHA를 대신하여 연합군임시행정처가 세워질 것이며 브리머를 그 수장으로 삼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가너는 자신이 곧 대체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주변에서 그의 통제가 먹히지 않을까봐 1주일간 비밀로 부쳤으나 워싱턴에서 정보를 흘리자 결국 자신이 한달 안에 이라크를 떠날 것임을 공표할 수밖에 없었다. 가너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자책하지 마세요. 어차피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출저: https://blog.naver.com/dk01337
"저기 자네 건물 나온다!" "저기 내 건물 나온다!" 진짜 개노답이네 ㅋㅋㅋㅋ
책 그린존 내용인가? 가뜩이나 서로 쳐죽이려고 안달난 사람들을 '그나마' 통제하던게 후세인과 그 체제였는데 그걸 한 번에 없애버리니...
가관일세
이야....이건 뭐 X 맨이 넘쳐나는구만. 미국은 저때 대체 왜 저랬대요? 윗물 아랫물 싹다 뭘 잘못처먹은것도 아니고 상식이 결여된 짓거리를 태연히..;;
네오콘으로 검색해보시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실겁니다. 인원자체를 전문성이 아니라 공화당 충성심으로 뽑았죠. 책에 의하면 파견간 민주당원 직원들이 눈치볼 정도였답니다. 두번째로 윗대가리들 ㅂㅅ인거 맡습니다. 럼스펠드는 아프간이랑 이라크, 빈라덴 라후세인도 구분 못했습니다. 대량살상 무기도 un감시단이 없다고 판단 했음에도 못믿고 침공한거라 명분도 부족했고요.
2편이 념글을 못왔네요;
https://gall.dcinside.com/war/677396
좀 경우가 달라보이겠지만 군대해산은 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