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카병이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건 2차 세계 대전이다.
1차 대전이나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별다른 사진 자료나 취재 기록이 없었던 거랑 다르게 2차 대전에서는 상당한 자료와 취재가 이뤄졌기 때문.
북아프리카에서는 독일 국방군을 상대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 장병들의 증언에는 이들이 밤마다 독일군의 진지를 기습해 장병들의 목이나 귀를 베어가는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고,
실제로 이들의 전과를 의심하여 참호 구축이나 화장실 청소나 하라고 비아냥된 영국 육군 장교 앞에 적군에게서 따온(?) 귀를 한바구니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 육군은 정글전에 능해서 영국 육군 지휘관들이 정글에서 싸우기를 꺼려 했는데,
그러자 구르카족은 이 정글에서 일본 육군을 쿠크리 칼로 사냥하고 다녔다.
Agansing Rai라는 제5왕실구르카소총연대 2대대 소속 상병(Naik는 영국군 계급으로 Corporal 상병이다.)인데,
임팔 전투 중인 1944년 6월 경 적군에게 2개 벙커가 점령당한 상태에서 화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분대원들과 적 기관총 진지로 돌격하여 일본군 3명을 사살하고,
1번째 벙커를 탈환한 후 정글로 돌진하여 엄폐한 상태로 기관총을 쏘던 일본군 3명을 사살하고 나머지를 분대원에 맡긴 후
2번째 벙커에 뛰어들어 4명을 총과 쿠크리로 사살하여 나머지 적군이 모랄빵 나서 도망치게 만들어 결국 2개 벙커 모두를 되찾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사실 10명을 혼자 죽인 것도 어마무시한거다...
다른 사례를 들자면 Lachhiman Gurung이라는 제8구르카소총연대 4대대 소속 하사(Havildar는 영국군 계급상 Sergeant, 하사이다)이 있는데,
이 하사는 1945년 5월 버마에서 소대 최전방 전초기지에서 자신 포함 3명과 같이 주둔하다가 200명, 즉 1개 중대 규모나 되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참호에 들어온 수류탄 3개 중 2개는 되던졌으나 마지막 한발이 그의 오른손 바로 위에서 폭발해 동료 2명이 중상을 입어 전투 불능 상태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도 오른손이 절단되고 안면과 오른 다리에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왼손으로 소총을 들고 31명을 사살하며 무려 4시간 동안이나 버텼다.
(참고로 이 때 소대 전체 일본군 사살 수는 87명이었다...)
그의 참호가 점령되었으면 소대는 전멸했겠지만, 그가 버틴 덕분에 결국 소대는 방어에 성공했고, 그도 살아남았다.
일본군의 막나가는 전술 반자이 돌격에도 구르카들은 코웃음치면서 무쌍을 찍기도 했다.
사실 영국군의 화력에 반자이 돌격을 하던 일본군은 마구 털리던 와중에 가까스로 영국군 진지에 일본도나 총칼 들고 와봐야
쿠크리 들고 기다리던 구르카를 만나면 안 봐도 뻔했다. 그야말로 일본군 피바다 풍경...
월간 지오 한글판에서 1997년에 이들에 관하여 취재한 적이 있는데, 2차대전 당시 이들은 쿠크리 하나로 일본 육군들을 대적한 기록이 나와있으며
일본도를 단숨에 동강내고 쿠크리 하나로 일본 육군 15명을 베어죽인 구르카병 이야기도 나온 바 있다.
이 사람은 당시 취재에서도 나와 인터뷰했는데 수수한 옷차림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고 있었다.
당사자는 매우 자랑했고 마을 사람들도 전설의 용병으로 알아준다고 인터뷰했다.
그리고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영국에게 두둑한 연금을 받으며 매우 부유층이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48527&exception_mode=recommend&page=1
반자이는 구르카로... - dc App
훈장주렁주렁이 수수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