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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그다드는 굉장히 치안이 좋은 곳이었다. 10시까지 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고 레스토랑들은 자정까지 영업했으며 불야성의 파티도 이어졌다. 새벽에 귀가하는 것은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당신이 후세인에게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물론 이것의 이면에는 사소한 법률 위반에도 아부 그라이브로 끌려가서 갖은 고문을 하는 후세인의 공포정치가 있었다. 후세인은 국민들이 자신에게 대들지 못하게 총과 교수대와 몽둥이로 국민들을 두들겨팼다. 어쨌거나 후세인을 몰아낸 미국의 임무 중 하나는 후세인이 공포정치로나마 유지했던 치안을 회복하여 미국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전쟁 전부터 법무부에 이라크 경찰 관리 계획을 부탁했다. 이 임무는 발칸 반도와 아이티에서 경찰력 재건 업무를 맡은 바가 있는 국제양성프로그램 부관리자 리처드 마이어가 맡았다. 리처드 마이어는 이라크 경찰들이 얼마나 일을 할지 회의적으로 바라보았고 이 때문에 이라크에 5천명의 국제 법집행 자문관들을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차관급위원회는 이라크 경찰관들의 실력이 충분하다는 CIA의 보고와 이라크 경찰관들이 전후에도 일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주장에 마이어의 계획을 기각했다. 차관급위원회는 이렇게 많은 경찰관들을 보내는 것은 미국을 점령군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을 첨부했다. 하지만 2003년 5월 법무부가 확인한 이라크의 치안은 해가 지고 나면 차를 몰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고, 곳곳에 인질극과 강도들이 들끓었다. 이라크 경찰들은 모두 달아난 후였다. 일부 경찰들은 폭도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법무부가 파견한 전문가들은 경악하여 6600명의 국제 경찰 고문의 파견이 시급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부시는 한명만 보내줬다. 바로 버니 케릭이란 망나니였다.

버니 케릭은 9.11 당시의 뉴욕시 경찰국 국장이었는데 덕분에 그는 미국의 영웅이 되어 있었고 그가 이라크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다. 그는 인터뷰에 매우 능했고 이미지 메이킹에 집착했다. 그가 구축한 카리스마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이라크 경찰력을 재건하는 데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 의심치 않았다. 물론 케릭이 입만 산 사람은 아니었고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경호원으로 일한 적도 있으며 비밀 마약탐지반과 뉴욕시 교정국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수상쩍은 전력이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바이의 공립병원 보안 담당으로 파견되었다가 추방당한 일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그는 의료직원들을 감시하다가 적발되었다 한다. 버니 케릭은 안정된 상황 속에서의 치안 활동을 맡는다면 어쩔지 모르지만 전후 처리에 대한 경험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백악관은 전후 처리에 알맞는 중동 전문가들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쓸데없이 진보적인 인물이란 인물로 다 기각해버렸고 인기 좋은 버니 케릭은 공화당에 매우 충성스러운 인물이었다. 부시가 케릭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라크에 재앙이 찾아왔다.

버니 케릭이 이라크에 도착하자 국무부 국제 법집행 전문가 로버트 기포드가 그를 맞아주었다. 기포드는 CPA에서 경찰을 관리하는 내무부 수석고문으로 버니 케릭의 선임자였다. 버니 케릭은 기포드가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분명 사람들이 생가각하는 것만큼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테니, 경찰이 잘하고 있는 일에 언론이 더 관심을 갖게 하지요."란 말을 함으로 기포드에게 당혹감을 주었다. 케릭은 기포드에게 그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6개월 이상 이라크에 있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때마침 그는 줄리아니의 컨설팅 회사의 공동경영자 자리를 제안받은 터라 원래 이라크에 오기 싫었는데 줄리아니 부부의 강권으로 여기에 온 것이라고 불평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줄리아니에게 많은 돈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기포드는 케릭을 후세인궁 내무부 사무실로 안내하여 그에게 브리핑을 해주었지만 케릭은 기포드의 브리핑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이메일만 읽었다. 그는 이라크 경찰 재교육을 비롯하여 이라크 경찰력을 재건해야 하는 모든 임무를 기포드에게 팽개치고 자신은 브리머와 언론에게 아부하기만 했다. 그는 자신이 정한 몇가지 일을 할때만 밖으로 나갔다.

케릭은 도착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AP통신에 상황이 나쁘지 않으며 통제불능은 결코 아니고 치안이 나아지고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NBC의 투데이쇼에서도 그는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다, 상점들은 다시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자신감을 찾았다' 고 주장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 치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경호팀을 거느리고 중무장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뭔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케릭이 인터뷰에만 집중하였고, 그가 했어야 할일, 가령 와해된 이라크 경찰들의 소집, 신규 인원 보충, 재교육, 독재정권의 범죄행위에 가담한 경찰의 숙청, 지휘체계의 확립, 재무장 등의 일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케릭은 딱 두번 직원회의를 열었다. 


한편 권력의 공백이 된 이라크에선 새로운 권력을 쥐기 위해 미국인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꼬이고 있었다. 케릭 주변에도 그럼 사람들이 꼬였는데 그 중에서 케릭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흐메드 카딤 이브라힘이란 자였다. 그는 반후세인 행위로 감옥에 간 적이 있었고 바트당 입당을 거부로 중간급 관료에서 승진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미국인들이 이상적으로 여길만한 이력을 가졌는데 무엇보다 그는 서투르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게다가 그는 브리머를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기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고 케릭은 즉각 그를 내무부 장관 대리 겸 조사국 국장에 임명했다. 중간급 관료가 장관으로 영전한 것이다. 이브라힘은 케릭의 허락을 받고 100명의 준군사조직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이라크 보안군 출신이란 의혹이 있었으나 이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 무기로 무장한 이들을 보고 CPA 내무부에선 이들의 존재가 이라크 경찰들의 힘을 약화한다고 비판했으나 케릭의 또 다른 부하 중 하나인 제임스 스틸이란 자는 이브라힘의 준군사조직을 지지했다.

스틸은 마른 체격에 언론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케릭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는데 그는 모험광이었다. 이미 그는 엘살바도르에서 맑시즘 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한 고문단을 이끌었고 콘트라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 그는 이라크 전기전력부 수석고문에 임명되었으나 곧 경찰 훈련을 맡게 되었다. 제임스 스틸은 직원들과 함꼐 일하지 않고 언제나 그린존 바깥의 경찰임무만 했다. 언듯 보기에 그는 성실한 경찰관으로 보였지만 법무부 상황평가팀은 그가 무슨 짓을 하는 지 확인하고 아연실색했다. 스틸은 이라크 운전자의 차를 갑자기 길가에 세웠다.

"당신 도대체 뭐요?"

갑자기 총기를 휘두르며 위협하는 미국인을 보고 공포에 질린 운전자가 외치자 스틸의 부하인 이라크계 미국인 경찰관이 그에게 총기를 겨누며 스틸이 질러대는 소리를 통역해주었다.

"내가 곧 법이다! 그러니 그 망할 차를 어서 세우란 말이야!"


한편 케릭은 이브라힘 특별부대라 불리던 준군사조직과 함께 유괴조직과 차량 절도 조직 몇개를 소탕하여 브리머를 기쁘게 했지만 대신에 그는 낮시간에 하라는 일은 안하고 낮잠만 잤다. 이 이브리함 특별부대는 각종 중화기를 수집했다. 또한 그들은 위조지폐 기계도 모았고 매춘부들을 납치해서 전기 고문을 하며 놀았다. 이들은 차를 타고 도시 곳곳에서 재미로 건물들을 때려부쉈고 자신들의 행선지를 보고도 하지 않는 일도 있어 미군들도 그들을 진압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이들이 어찌나 날뛰었던지 미군들은 이들이 이라크 반군인줄 알고 쏴죽일뻔하기도 했다. 스페인군은 이들이 그냥 카우보이처럼 노는 것 말고 뭘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CPA 내부팀은 케릭에게 경고 좀 해주라고 상부에 요청했지만 CPA 상층부는 케릭을 보물단지처럼 아꼈다. 

버팔로 출신 소방관 짐 오트웰이 케릭이 만들어낸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경찰국 산하에 속한 소방국을 독립된 기관으로 만들어서 기존의 뇌물만 받는 부패한 집단에서 재건하려고 애썼다. 이를 위해 그는 케릭과 회의를 하려 했지만 케릭은 오트웰을 3일이나 무시했다. 기다리다 못한 오트웰이 케릭을 찾아가자 그는 내가 누굴 만날진 내가 결정한다고 욕설을 퍼부으며 바닥을 마구 발로 찼다. 결국 오트웰은 브리머를 직접 찾아가서 일을 논의해야 했다. 케릭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CPA 내무부팀이 겨우 재건한 이라크 사법부 소속 판사들이 왜 내무부 회의에 있냐고 마구 욕을 퍼부었다. 그가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지 3개월이 지난 어느날 케릭은 컨벤션 센터의 현지 경찰 관료 회의에 참석하여 갑자기 떠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은 그의 부하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절차도 밟지 않고 다짜고짜 떠나겠다고 통보한 후 몇시간만에 이라크를 떠났다.

"저는 저만의 세계가 있었고 저만의 방식대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dk0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