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A에서 언론에 관련된 부문은 홍보실이었는데 32세의 다니엘 세노르가 책임자였다. 엉망진창인 상황을 변호하기 위해서 세노르는 거짓말밖에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연합군을 증오하기 시작한 이라크인들의 민심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이 정제소를 방치하지 않아 생긴 유류 공급의 중단 문제는 이라크인들이 새로 차를 수입했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했다. 물론 그가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었고 그의 임무를 생각한다면 그가 발표대 위에서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직결되는 진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순 없었을테니 어쩔 수 없긴 했다.
CPA와 이라크인들간의 소통은 참으로 더디기 그지없었는데 세노르는 아랍어를 전혀 못했고 그의 통역에 의존하여 느리게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다. 통역이 가끔 실수하는 바람에 그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도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일이 있었다. 그나마 그가 주로 떠드는 내용은 미국 정치에 관한 내용들이었고 이라크인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
한편 당시 이라크엔 전국에 방송되는 채널이라곤 알이라키야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는 이라크에선 위성방송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후세인이 쫓겨난 후에 사람들은 후세인 찬양말곤 내놓지 않던 알이라키야 대신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다른 아랍국가의 뉴스를 앞다투어 시청했다. 하지만 이라크인들은 머지 않아 다시 알이라키야를 찾았다. 당연하지만 이라크인들은 현재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이라키야는 이라크 상황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바그다드의 유엔 본부가 폭탄 테러로 날아가버린 순간에도 알이라키야는 속보를 내보내지 않았고 이집트 요리쇼만 내보냈다. 결국 사람들의 대안은 알자지라 방송이었는데 알자지라의 뉴스 자체는 객관적이었지만 알자지라에 등장하는 논평가들은 반군을 지지하면서 미군을 비난했다. 이라크인들은 이쯤되면 궁금해졌다. 미국은 사실 이라크인들 전부가 지하드 투사가 되기라도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어째서 이들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뉴스는 하나도 내놓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 미국인들이 이런 것에 손놓고 있진 않았다. 미군은 이라크 침공 전부터 국방업체인 SAIC를 통해 이라크에 독립 TV 방송국을 만들려고 했다. 프로듀서로 카이로 지국장, 사우디아라비아 군사령관 언론고문 등을 지낸 캐나다인 돈 노스가 고용되었다. 노스는 이제 전쟁이고 중동이고 지긋지긋했으나 이라크의 상황이 매우 그의 흥미를 자극했으므로 제안을 수락하여 이라크로 달려왔다. SAIC는 이라크 미디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계약을 미국 정부와 체결하였는데 그들은 국방부와 정보기관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던 업체라서 언론업무를 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그런데도 더글라스 페이스는 입찰도 없이 그들을 선정했다. 이유가 간단했다. 더글라스 페이스의 대리인인 크리스토퍼 라이언 헨리가 SAIC 부사장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돈 노스는 먼저 워싱턴에서 후세인 정권의 범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다 만든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물었고 상부는 그에게 이라크로 가서 만들고싶은대로 방송을 만들라고 했다. 새로운 TV와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는데 족히 몇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던 노스는 상부에 현재 구상 중인 계획을 가르쳐달라고 했으나 상부에선 계획같은 건 전혀 없고 기기를 구입할 사람들만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바그다드에 뭐가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쿠웨이트에 도착한 노스는 SAIC가 구입한 기기들을 살펴보았다. 13개의 카메라 삼각대에는 카메라 받침판이 없었고 위성방송 신호를 받는 수신기는 전원 코드도 없었다. 사용안내서가 있는 제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스는 이것들이 무슨 런던 벼룩시장에서 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기기들을 이라크 정보부 건물에서 시험해보려 했지만 미군이 크루즈 미사일로 정보부 건물을 날려버리면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바그다드에 도착한 노스는 두명의 이라크 망명자와 함께 라디오 송신기를 가진 부대와 연합하여 하루만에 아랍어 뉴스와 공공방송을 시작했다. 초기 뉴스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BBC 방송국의 보도를 정리한 다음에 그것을 편집하여 내보내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중 제이 가너의 첫 기자회견이 열리자 노스는 그의 기자회견을 보도하려 했다. 그는 테이프 녹음기를 요청했는데 SAIC는 녹음기가 없다고 했다. 국방부는 자신들이 주기로 한 물품들을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방송, 신문까지 망라해야 하는 그의 방송에 지원금은 겨우 1500만 달러였다. 바로 옆의 알아라비야도 1년 예산이 6천만 달러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예산 사용 내역도 엉망이었다. 가령 텔레비전과 라디오 스튜디오 기기 구입을 위해 120만 달러가 들었는데 그 120만 달러엔 직원들이 타고 다닐 고급 자동차 구입과 그 자동차를 운반하기 위한 수송기 임대 비용이 끼어있었다. 이러한 고급 자동차들은 국방부에선 필요없다고 평가한 차들이었건만 그린존에서 굴러다니며 CPA 소속 서버번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노스는 더 많은 예산을 요구하는 한편 이라크 미디어 네트워크,, 즉 IMN을 위해 기술자, 편집자 기자를 고용하고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카메라와 편집 기기들도 확보했다. 노스는 망명자 출신인 유명 앵커를 데려왔으나 세노르는 망명자를 앵커로 쓸 수 없으며 뉴스 내용을 이라크 정치가인 쿠르드족 출신의 잘랄 탈라바니의 아내에게 검열받으라고 요구했다. 노스는 여성 앵커를 추가하는 걸로 앵커 문제는 합의를 보았지만 검열 문제는 완강히 거부했다. 노스는 뉴스를 아랍식으로 짧은 기도문으로 시작했는데 세노르는 기도를 빼라고 했다.
"누구 명령으로요?"
"워싱턴에서부터 온 명령이네. 우리는 앞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교적인 면은 배제할 걸세."
"워싱턴에서부터 온 명령이네. 우리는 앞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종교적인 면은 배제할 걸세."
"잠시만요. 전 아랍국가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기도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랍의 전통이라고요."
"안되네. 이건 명령이네."
노스는 알았다고 해놓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는 혹시나 해서 이라크 직원들에게 이에 대해 말하자 그들은 기도문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확인해주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엉망진창인 초보적인 첫 뉴스가 방송되었다. 노스와 이라크인들은 IMN이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은 받지만 독립적인 방송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CPA는 IMN을 정치선전도구로만 여겼다. 그들은 돈을 대고 있다는 이유로 방송 내용도 좌지우지하려 들었다. SAIC는 CPA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면서 발을 뺐다. 이러한 그들의 생각이 충돌한 것이 브리머 인터뷰 사건이었다. 노스는 브리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30분 정도의 인터뷰를 얻어냈는데 브리머의 발언들은 가히 공산주의 국가의 선전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만약 이것들이 방송된다면 IMN은 노골적으로 미국인들의 선전도구로 보일 것이 분명했고 노스는 브리머가 IMN을 이라크의 소리라고 칭찬한 것을 빼곤 인터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알게 된 CPA는 크게 화를 냈고 모든 기자회견과 사진촬영 시간을 방송할 것을 강요했다. 덕분에 이라크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뉴스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다시 미국인들의 선전만이 판을 쳤다. 생방송이 가능해지자 CPA는 생방송만 강요했다. 덕분에 방송은 미국과 영국의 정치가들의 자화자찬과 선동을 가득 찬 것이 되었다. 방송국의 독립성을 떨어뜨리는 방송만 내보내야 할 상황이 되자 IMN 직원 다섯명이 SAIC에 이 방송에 누구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지 가르쳐달라는 항의문을 전달했다.
"저희가 만든 뉴스 프로그램을 내보낼 시간을 빼앗아서 해외에서 만든 엉터리 정치 선전물을 내보내는 것은 당연히 방송심의규정에 위반되는 행동입니다. 자유를 향하여 같은 진 빠지는 프로그램을 한시간이나 보고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저희 뉴스를 볼 얼간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IMN 직원들은 대학교 방송국에서도 쓰지 않는 기기들로 어렵게 방송을 이어나갔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노스는 SAIC에 더 많은 예산을 요구했지만 SAIC는 노스의 각종 요구를 거부했다. 위성 안테나도 아랍어 교육자료 인쇄비용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노스가 요청한 카메라 배터리는 주지 않았지만 브리머가 연설을 위해 텔레프롬터를 요구하자 그것은 즉각 가져다주었다. 전후 6개월이 지났을때 이라크인들의 63%는 알자지라나 알아라비야를 보았다. 오로지 12%의 이라크인들만이 IMN을 시청했다. 이라크인들은 IMN을 정치선전과 조작된 뉴스로 가득찬 2류 프로그램으로 보았고 부시 대통령이 심리전에 착수했다고 떠들자 노스는 1라운드에서 패배했다고 씁쓸하게 읊조렸다. 이후 SAIC와 국방부의 계약이 만료되자 국방부는 이들이 경험이 없단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원거리 통신 기기를 생산하는 해리스 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는데 이들도 방송 운영 경험이 없었다.
출처:https://cafe.naver.com/booheong
라지브찬드라세카란 저 그린존
[출처] 이라크 점령사 (10) 답없는 언론정책 (【부흥】네이버 대표 역사 카페) |작성자 마술사왕
도대체 미국놈들은 제대로 한게 뭐임...? 보면 볼수록 가관인데
코쟁이들 전후처리 하는게 그렇지 뭐..
옘병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참패 아니냐ㅋㅋㅋㅋㅋㅋ
미국의 민사 수준
아니;;; 의도적으로 해도 저따구로 하는 건 힘들다.
애초에 민사할 생각이 없었다는게 합리적 추론 아니겠누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정권에 심리문화적으로 이미 동일화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얘기냐?
심리적으로 대다수는 아니었던 상태에서 대다수로 만들어버린거 아닐까 그리고 보통 문화는 정권 따위보다 더 근본적이라 중공이나 산유국 수준으로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정권이랑 결부시켜서 생각하는건 쵸큼
이건 뭐...병신도 아니고... 소리만 절로 나오네
???: 미군이 민사작전 못하는건 다 이유가 있다 (개추 수십개)
그글 ㅈ나 이상해서 이글을 가져온거임. 민사작전의 원인은 현장보다는 윗대가리들 정책이 주된 원인이고 군사적인것만 있는게 아니니까.
사실 미군이 못하는것 보다는 부시행정부에 문제가 있다는게 더 맞말임.
그냥 때려 부수는 것만 생각하고 그 똥 치우는거는 너무 낙관적으로 본건가
세계 1등국가라면서 일처리가 무슨 돈만 주면 들어갈수있는 지잡대생들이 레포트 귀찮다고 네이버 블로그랑 꺼라위키 복붙해서 만드는 수준이네
군붕이들 데려다가 민사작전 시켜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니X
민사작전을 할 생각이 없었구만.
해외지역 연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네 ㅋㅋㅋㄱㅋㄱ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