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뜨마 간디는 1940년 이후 여러 차례 영국이 우리와는 친구이니 떠나는 친구를 잘 보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 한 바 있다. 이 한마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일 것이다.인도는 약 200년 동안 영국의 직간접 식민 통치를 받았다. 1757년부터 1856년까지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나라의 대부분이 시나브로 영국의 지배권 아래로 들어갔고, 그 이후로는 영국 여왕의 직속 지배 아래 들어갔다.1857년 북부 인도를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봉기가 일어나 2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나 결국 처참하게 진압되었고, 이 때 대부분의 지식인들이나 돈 있는 사람들은 그 봉기에 가담한 자들을 무식하고 역사 발전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 자로 생각했다. 그들은 영국의 존재를 ‘비록 수탈을 하긴 하나, 나라의 미래를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근대화를 시켜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다.영국이 근대화를 들고 인도 땅에 들어왔을 때 인도는, 나중에 중국이 그랬듯이 엄청난 자기 충격에 빠졌다. 인도의 전통과 문화는 모조리 구태로 내몰렸고, 인도가 나아가야 할 미래는 영국의 처분에 달려 있었다.많은 젊은이들이 영국이 가지고 온 근대화를 찬양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오피니언 리더들을 규합하도록 했다. 주로 영국 유학파 출신들이 그 대상이었다. 영국 정부는 그들에게 정당을 하나 만들라고 했다. 아무래도 영국에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서 ‘무식한 백성들’과 ‘그들을 개화시키려 애쓰고 있는 영국인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좀 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소위 가스 레인지에 달려 있는 안전밸브론이다. 안전밸브가 있어야 가스 폭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만들어진 게 현재 인도의 거대 양당 가운데 하나인 회의당(I) Congress Party(I)의 전신인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다. 인도국민회의는 철저하게 영국 정부에게 건의하고, 정책 시정을 요구하는 그런 성격의 정당이었다.그러나 20년 정도가 지난 1905년까지 정국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영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영국에게 식민 지배를 끝내고 떠나라, 라는 종류의 요구는 일언반구 한 적이 없다. 대다수 국민들로부터도 외면당해 그야말로 소수파였다. 영국에 대해 심한 소리를 하면 당내에서 바로 엄청난 비판을 당하고 국민들 대부분에게도 외면을 당했다. 영국은 이 나라 이 백성을 살리려고 애를 써주는 사람들이니 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이 나라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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