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초기부터 철광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울산 달천에서 조선시대 철광석을 캤던 채굴지, 즉 채광갱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됐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은 2일 울산 천곡동 구릉(해발 122m)에 있는 달천철장(광산)을 조사한 결과, 지름 30m 정도의 범위에서 집중적으로 광석을 캔 것으로 보이는 폭 1.2~1.5m, 최고 깊이 4m의 채광갱이 10여곳 확인됐다고 밝혔다. 확인된 채광갱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달천광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철근 1만2500근을 생산했다”는 기록을 보일 정도로 유명하다.

유적을 본 손명조 국립제주박물관장은 “삼국시대 초기 유적인 경주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품과 이곳의 철광석에 모두 비소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면서 “이는 삼국시대 초부터 이곳 달천에서 경주로 철광석을 공급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손 관장은 “유적에서는 또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한시대 주거지 등이 확인돼 철광산이 BC 1세기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토양에서 다량의 비소 성분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마을주민들은 2년 전부터 이미 토양에서 흘러나오는 비소 성분을 없애달라고 문화재청에 건의해왔다. 이번 발굴도 문화재청이 주민들의 건의를 수용, 토양복원-유적정리의 사전단계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것인데 조사결과 완전한 채굴유적이 확인된 것이다. 손 관장은 “유적의 보전과 함께 주민들의 건강도 챙기는 윈윈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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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806030103375#csidxfcad3a31e3e7f109f4e34769d1130b8


학자들은 한 발 더 거슬러 이곳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나 〈후한서〉에 나오는 변진의 철산지로 해석하고 있다. 철 생산 시기 또한 기원전 4~5세기부터라고 보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달천철장은 북으로는 예맥에서 남으로는 왜(倭)에까지 철을 수출한 철의 명산지였으니 울산은 가히 철의 고을이라고 하겠다. 

특히, 울산이 속한 신라의 나라이름과 금성이라는 수도이름, 박혁거세나 석탈해 같은 왕호까지 쇠를 의미하므로 달천의 쇠는 신라를 신라답게 하는 밑바탕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삼국통일의 원천이라 평가 받는 경주 황성동 서천강변 제철유적에서 달천의 것과 성분이 유사한 쇠가 발견되고 있다. 


달천철장은 지난 2000년 동안 한반도 철의 명산지였다. 아직은 달천유적에서 제련과 제철 유구가 발견되지는 않고 있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울산 일대에서 발견된 쇠부리터만도 100개소가 넘으니 이것만으로도 달내쇠곳은 한국 공업사의 중심이 되고도 남는다. 달내쇠곳의 역사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16/20070916006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