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씨발 하...


긴글읽기싫다는 놈들 위해서 먼저 간단하게 적는다.



1. 쓸거면 제대로 쓰던가

2. 작중에서 나온 설정 대부분이 기능도 제대로 못하는데

3. 그럼 씨발 이야기라도 재밌던가 집중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


결론//이게 소설이냐? 걍 일기장이지.



솔직히 요약을 적어야 할 정도로 이걸 보는 대부분이 빡대갈인가 싶기도 하다만, 닥눈삼(닥치고 눈팅 3년 ㅎ) 하면서 본 결과, 긴 글 읽기 싫어하는 난독증 환자가 너무나도 많아서 먼저 써놓는다. 이 아래로는 편하게 쓸거임. 이의없지?







//서론

내가 윤민혁을 알게된 건 학교 도서관 한가운데에 좋지 않은 상태로 꽂혀져 있던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갔는지 페이지 가장자리마다 때가 타 있었고, 종이는 싯누렇게 변색되어 무슨 문화유산을 떠올리게 했으며, 페이지 구석구석엔 학교에서 나름 밀따쿠라고 으스대는 좀 그런 친구들의 필적으로 가득했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내용이다만, 인터넷에서 떠드는 내용들을 주워보자면 대강 통일된 한국이 중국과 영혼의 한타를 벌인 뒤, 일본과 또다시 영혼의 한타를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에서야 여러 토론과 교류, 당시 독자였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불편한 핵심을 꼬집는 비판까지 형성될 수 있었지만, 내가 그 책─데프콘 : 한일전쟁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여러 미신들과 루머, 와전된 이야기들이 국내의 한 줌 정도 되는 밀리터리계에 흐르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수적으로 우위였던 소련에게 언제나 승리했지만 결국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패배했다, 라거나 당시 미 육군의 주력 전차였던 셔먼의 론슨라이터 이야기, 선한 국방군 전설까지. 부끄러운 이야기이다만, 당시의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그것을 진리인 것마냥 믿고 있었다.


이런 본인에게 윤민혁이 쓴 데프콘은 정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민족의 가치,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하는 내용은 충동적이였던 나를 흥분시켰고, 소설을 그저 창작이라는 영역으로만 수용하게 만드는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는 이 책을 한 때 거의 성서나 마찬가지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외국의 군사서적이 번역되어 들어오고 있으며, 그것이 아니더라도 틈틈히 블로그, 커뮤니티의 게시글에 업로드하는 국내외 아마추어 필진분#들의 열정과 노력 덕분에 또다른 미신과 루머에 사로잡히는 대신 합리적인 이유와 논증을 가지고 비판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적 성장으로 인하여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전쟁이란 수단은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문제 등 여러가지가 한 데 뭉쳐 절제된, 혹은 절제되지 않는 폭력이란 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아마추어'라는 표현이 불쾌한다면 사과드립니다. 집필에 요구되는 각 분의 열정과 노력을 비하할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양질의 글을 올려주시는 것에 개인적으로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만을 뜻하고자 사용하였으나, 만일 지적하신다면 다른 단어로 수정하겠습니다.



지금은 누구라도 데프콘 시리즈에 대하여 민족주의적, 극우적인 색채가 가득하며, 동시에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쓴 이야기라고 비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책의 존재이유에 대해 부정에 가까운 말이다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러하다. 일본에서 쓰여진 극우소설과도 비견될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제대로 된 반론조차 나오지 못하는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국내의 굵직굵직한 군사문학 대부분이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정말로 개인적인 이야기이다만, 요즘 들어 근근히 나오는 아마추어 군사문학 대부분이 씁쓸하고 텁텁한 맛을 함유하는 건 이러한 주류 군사문학에 대한 반발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자아비판에 가까운 지루한 서론이였다. 여기까지 읽고, 앞으로 본문을 읽으려 하는 분들에게는 감사를 표한다. 나는 여기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데프콘 시리즈의 저자인 윤민혁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워졌는가? 그는 작품의 집필에 있어 성장을 이루었는가? 과거에 만들어졌고 지금에 들어와 라노벨판으로 다듬어진 윤민혁의 작품인 '강철의 누이'는 국내 군사문학계에서 계속해서 지적받아온 것들을 떨쳐내었는가.




정말로, 정말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본론에 앞서 전제하는 것들

본인은 군사학, 문학에 있어 그리 정통하지 못하다. 아마추어라는 이름조차 붙이기 아까운 그런 사람이다. 만약 여기에서 틀린 것이나 논리적 오류가 있다면 나의 짧은 식견과 글솜씨 때문이며,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럼에도 만일 누가 되지 않는다면 본인은 군사적인 영역과 문학적인 영역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영역이 혼합되어 서술될 수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아마추어라는 이름조차 아까운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군가가 생산적인 비평으로 읽어 준다면 나는 그분에게 감히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탄환조차 존재하지 않는 벽난로 위의 저격총,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슈뢰딩거, 전차를 가장한 세단

강철의 누이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먼 옛날의 사고로 인해 국민 대부분을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미테란트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국가가 주변의 가상적국과 예방전쟁을 벌이는 이야기이며, 주된 시점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진 '김한얼'이라는 이세계인─우리 입장에선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1인칭 시점이다. 김한얼은 자기 아버지의 피를 이은 수많은 혈연들과 뭉쳐 전쟁을 이겨나가려 하고, 동시에 그녀들과 사랑을 나눈다. 주변의 가상적국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지만, 미테란트 공화국은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과연 미테란트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여기서 구구절절 늘여놓진 않겠다만, '주연 입장에서 보는 줄거리'를 밑에서 지탱하기 위한 설정 역시 '너무나도 치밀하게 잘' 준비되어 있다. 외적으로는 그럭저럭 긴장감 있는 전개, 내적으로는 금단의 영역을 왔다 갔다 하는 전개 역시 흥미진진할 것 같다.



하나 앞서 소개할 문구가 있다. "1막에 권총을 소개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 된다. 안 쏠 거면 없애버려라." 러시아의 소설가였던 안톤 체호프의 말이다. 스티븐 킹도 이러한 논조와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극중에 설정을 제시하였다면 그걸 반드시 써먹으라는 말이다. 만일 쓰지도 않는 설정이라면 진행에 방해가 될 뿐더러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소제목을 보고 오라. 탄환조차 존재하지 않는 벽난로 위의 저격총. 내 입장에선 작중 주연측에 제시되는 설정들을 대표하기에 가장 알맞은 말이다. 수많은 미세가공의 끝에 태어난 저격소총엔 정작 들어가 발사될 탄환이 없다. 저격총은 오로지 벽난로 위에 걸려 먼지만을 두를 뿐이다. 가끔 가다 나는 손자국은 주인이 혼자서 고양감을 느끼며 매만지거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들려 나올때 찍히는 것이다.


작가의 자아도취, 욕망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내리쓴 설정은 극중에 별다른 편집 없이 그대로 제시되어 보는 사람의 눈을 찌부리게 만들거나 최악의 경우 피하게 만든다. 설정의 정밀함과 예리함은 정작 작중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설정에서 가장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테란트 공화국 인물은 여성이 대부분이며, 근친이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시작된 지독하면서 문학적 절제를 거치지 않은 욕망은 독자들을 나쁜쪽으로 놀라게 만든다.


좀 많이 속된 이야기이긴 하다만, 이야기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작가의 자위질이다. 그것에다가 어떠한 미사여구를 덧붙여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허나 다 같은 질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한 자위질로 톨킨은 거대하면서도 신화적인 세계를 만들어 냈으며, 톰 클랜시는 작중 내내 치덕치덕한 긴장감이 흐르는 다른 세계를 보여줬으며, 김훈은 특유의 조용함과 먹먹함으로 충무공을 되살려 냈다.


언급된 작가들 정도로 잘 쓰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들은 모두 '고민'을 하며 글을 썼으며, 그 고민을 한 흔적이 이야기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기에 쓰고, 저것은 이 뒤에 쓰고, 그러한 흐름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며 쓴 것이다.


그러한 고민이 존재하는가. 고민이 단 한톨이라도 존재하는가. 설정이 작중에 잘 스며들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제공해 주는가. 작가에겐 정말로 미안한 말이다만, 나는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웃긴 이야기다만, 주연측에서 벗어나면 설정은 한없이 얄팍해진다. 독자들에게 무대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줄 지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며, 미테란트 공화국이 상대하게 되는 가상적국들 역시 나라 1, 2, 3, 4로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오히려 우리의 역사에서 대놓고 베껴왔다는걸 자랑하듯이 주인공, 김한얼의 입으로 현실의 역사와 대치하는 생각이 몇 페이지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독창성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미약한 도움을 주거나 혹은 미약한 위험밖에 되지 않는, 설정마저도 미약한 '조연'들이다. 주체적인 역할은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그들이 움직이는건 작품 외적으로 설치된 반강제적인 궤도 내에서다.


그리고 그 나라 1, 2, 3, 4를 우리 주인공인 미테란트 공화국과 공화국군 소속 김한얼은 신나게 유린한다. 그 어디에 깊이가 있단 말인가. 작중 인물들의 입으로 제시된 각 국의 설정은 작중의 김한얼에게 유효할 정도로 큰 존재감을 보이지 않는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들의 설정은 그런 식이다. 있음 있고 없음 말고라는 식의 태도는 뻔뻔한 걸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설정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빗대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혹시 전차의 전차장석에 앉아 세단처럼 부드러이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가. 당연히 말도 안 될 거라며 질색할 것이다. 전쟁 중 전차 승무원의 삶은 고달프다. 그들을 현생에 붙잡고 있는 건 적들의 포탄과 포탄 파편에게서 보호해 주는 강철의 판이요, 그들을 깨우는 건 적습을 의미하는 무전이나 사이렌이다.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건 포탄이 발사된 후 열린 포미에서 슬그머니 튀어나오는 지독한 냄새의 포연과 시끄럽게 털털거리는 엔진음이다. 그들 사이에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가득하며, 그렇기에 전차의 전면, 측면, 심지어 후면에도 불안한 눈을 부라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강철의 관이 되어버릴테니. 끝없이 계속되는 고난과 긴장감 끝에서 찾아올 생(生)의 보람을 위해 작 중 인물이나 독자 모두 가릴 것 없이 숨을 죽이며 손을 움직인다. 나는 이 광경을 오토 카리우스 저의 진흙 속의 호랑이를 탐독하며 떠올렸다.


정말로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강철의 누이에는 이러한 긴장감도, 묘사도 없다. 없다시피한 것이 아니다. '없다.' 김한얼의 앞에 있는 것들은 오로지 터져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생각도, 주체적인 감정도 없다. 읽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존재감도 없다. 실패하고, 좌절하게 할만한 장애물도 없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게 할 내적 장애물 역시 없다. 그저 뻔히 예상되는 길을 전차를 가장한 세단을 움직이며 따라갈 뿐이다. 독자는 이놈이 또 얼마나 킬수를 쌓으려나 하고 지루하게 책장을 넘긴다.


적수가 없으니 긴장감이 없다. 긴장감이 없으니 극한상황에서 빛나는 매력 역시 없다. 뇌리에 콱 박히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긴장감 없는 상황 속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이름보다는 설명하는 사람 1, 2, 3, 4. 히로인 1, 2, 3, 4가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렇다보니 비릿한 근친 설정을 덮고 남을 매력적인 히로인조차도 없다. 다 제각기 할말만 하고 사라진다. 교류도, 상호간의 대립도 없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1인칭인 김한얼을 제외하면 병풍이나 다름없다. 섹시한 병풍, 좀 어린 병풍, 예쁜 병풍, 아빠 병풍.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다만, 나는 이쯤 되서 도대체 뭘 믿고 이걸 계속 봐야 하나 싶었다. 매력적인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요,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땅찮은 적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있는 거라곤 전차를 가장한 세단을 타고 근친을 벌이면서 지구를 꼭 닮은 판타지 세계 여행기를 찍는 것 뿐이다. 꾸역꾸역 읽어도 매한가지였다. 도저히 뒷이야기가 기대되지 않았다.



이걸 소설로 읽겠다고 하면 글쎄올시다. 자아도취성이 다분한 일기장을 보고 싶다면야 나는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군사학적, 설정으로는 어떤가. 그래도 윤민혁인데.─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군사학에 대해선 아마추어 미만이다. 만일 내가 틀린 것이 있다면 그건 내 책임이다. 이하는 내 개인적인 사견일 뿐이다.




//오직 전체주의만 존재하는 세계.

위에서 말했다시피, 전쟁이란 수단은 정치적, 사회적, 민족적 문제 등 여러가지가 한 데 뭉쳐 절제된, 혹은 절제되지 않는 폭력이다. 그런 만큼 정말로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되는 것이며, 군의 통수권을 가진 정치인들에겐 최대한 피하고 싶은 수단이다.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은 정치인들의 노력이 쓸모없었다는 것, 혹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국민의 반발이 있을 것이며, 만일 정치인, 국민들까지 전쟁에 동조한다면 그것은 실체도 없는 장밋빛 미래에 심취해 있다는 것이며, 나는 감히 단언컨데 이러한 나라를 전체주의라고 평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가 작중에 두 개나 존재한다. 미테란트 공화국과 나라 2─라스니아 공화국. 작중 설정대로라면 라스니아는 제한전 수준의 분쟁을 벌이다가 갑자기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박쥐가 되어버리고, 미테란트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이상적인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놀랍지도 않겠지만 이러한 전개를 뒷받침할 논리적인 뒷이야기는 없다시피하다. 만일 작중에서 언급되는 이유들을 전부 인정해버리면 미테란트는 피해망상증 환자이고, 라스니아는 분노조절장애 환자이며, 나라 3─소련 비스무리한 나라는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갑자기 회까닥 돌아버리는 북한 저리가라할 왕정 국가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내가 느낀 것들이니만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근데 사실 이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나라 2─라스니아 집단저지능설

이 아래로는 결국 라노벨판으로는 나오지 못한 뒤의 부분들이다.


라스니아군의 여단화. 솔직히 작중에선 한번 나오고 써먹지도 않는 설정이다. 도대체 왜 설정했냐 싶은 놈이다. 여단화 언급 다음에 나오는 라스니아 제대들은 죄다 사단 편제이다. 작중에서 언급하길, '군 인원 부족으로 인해 여단으로의 재편을 했다.' 라는데, 그러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대가 충분히 확보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허나 작중 미테란트군의 포위망이 형성되는 도중 여단급 제대가 역습을 했다는 표현은커녕 언급 한 줄조차 없다. 작가는 일부러 라스니아군 총참모본부를 빡대가리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설명할 수 있을 만한, 하지만 언급되지 않은 설정이 있는가?


이걸 제치고 넘어가서라도, 2차 세계대전 수준에서 여단화를 한다는 것은 내 수준에선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단화를 할 정도로 화력이 충분한가? 그러한 이야기는 어딜 봐도 없다. 제대로 된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군 인원 부족 단 하나뿐이다. 작중 표현으로 보자면 여단 수준에서 모자란 화력을 보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군이 화력지원을 제대로 해 줄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 육군같이 군단 사령부에다가 포병부대를 미친 듯이 쌓아놓았다는 이야기도 없다. 애초에 편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니 깜깜이로 손 짚어가며 지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비판을 우회하고자 두루뭉실하게 넘어갔다면 작가는 이런거 쓰지 말고 추리소설이나 써라.


만일 라스니아 총참모본부, 나아가 국방부가 빠가라는게 맞다면 이것도 설명이 된다. 라스니아 A집단군과 B집단군의 수적 차이. A 집단군엔 야전군급 3개, 군단급 4개가 쌓여 있는데, B집단군엔 딸랑 군단 4개만 쌓아놨다는 설정은 어떻게 봐도 윗대가리가 생각이 없다는 반증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전투부대를 쌓아 놓고선 50km도 채 전진하지 못하는 것인가. 작중 인물의 입을 빌리자면 '기계화 역시 잘 되 있어 무시 못할 전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럼 결국 라스니아 중간급 장교진이 현실의 소련 장교진마냥 반병신이던가, 아니면 미테란트군이 독일군 신화마냥 미친듯이 잘 싸웠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 이야기도 없다. 그저 재미도 없는 전황을 줄줄 읊는게 다이다.


이건 그렇다 넘어가도, 현실의 룩셈부르크 역할을 맡은 에네데 공국, 아르덴 삼림 지역을 맡은 에네데 고원은 작중에 언급된 바로는 '생각보다' 넓어 보인다. 자그마치 기갑군 2개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넓이인 듯 하다. 그런데 이걸 라스니아쪽에선 대규모 기동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말이 기갑군이지, 그 뒤에 따르는 보급부대와 지원부대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말인데, 라스니아에선 대규모 기동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틀림없다. 이건 작가가 저지능으로 설정한 것이다. 장교진들, 참모들, 국방부, 심지어 정치인들 모두 전부 저지능이라는 설정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 치기에는 또 말이 안되는게, 라스니아의 B 집단군은 극심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A집단군이 붕괴된 직후까지도 미테란트의 북부집단군을 막아냈다. 물론 가정─예컨데 미테란트가 북부집단군에서 전력을 빼내지 않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하지만, 역시 작중에서 그럴듯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군단 4개로 집단군을 막아냈다는 라스니아 B집단군 소속 장교들은 전부 다 발터 모델인가? 아니면 미테란트의 북부집단군이 이탈리아군인 건가.



군사학에 문외한인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해하기도 싫다. 그나마 진지하게 읽은 건 라스니아 전역까지다. 이 다음은 기억도 안난다.






정신적으로 지치니 이제 결론을 이야기해보자. 열 마디 쌍욕보다는 이 말이 더 가치있으리라. '똑같이 허접한 설정, 지겹도록 넘쳐나는 모순, 국수주의, 민족주의같은 극우 감정에 기댔지만, 데프콘은 쾌감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완결이라도 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