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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이후 신무기 제작의 흐름.


예전에 올린

병인양요로

흥선대원군이 집권중이던 조선의 정치판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하기위해 절치부심을해.



마치 현대의 국가가

무슨 재난을 겪으면 부랴부랴 대책을 짜는것 처럼

당시 조선도 뒤숭숭한 서양괴물들을 막으려 대책에 골몰했지.


그래서 나온게 저

'훈국신조기계도설'과 '훈국신조군기도설' 이라는 책이야.

'신헌'이라는 조선의 관료가 훈련대장으로 (훈련도감의 총책임자)있으면서

청나라의 해국도지를 참고해서 만든 책이야.

이 신헌이라는 사람은 1876년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조약을 맺으려고 온 이노우에 가오루랑 만나서 담판을 짓기도해.



아무튼. 그당시 조선의 위기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나온 마반차, 수뢰포, 철모를 이용한 품질높은 대포제조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라면 누구나 알거야.

당시 조선인 정치인들은 그정도면 충분히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군제개편이 이루어 지지도않았고.

그렇다고 개별적으로 무기를 좋게 개선해주지도 않았지.



그리고 나서 1871년 신미양요가 닥치니까.

주력무기 불랑기와 19세기의 산업혁명의 빠워가 잔뜩들어간

USS Colorado (1856)
  • 2 × 100–Pounder rifles
  • 1 × 11 in (280 mm) smoothbore guns
  • 42 × 9 in (230 mm) smoothbore guns
  • 2 × 20–Pounder howitzers
  • 6 × 12–Pounder howitzers



이런 배 5척이랑


그야말로 16~17세기식 청동 주물포와 맞짱을 깠지.


좁은 수로에서의 육상포대 vs 해상함포


의 밸런스가 맞아서인지


어느쪽도 상대를 박살은 못냈어.


사실 16~17세기식 청동주물포를 가지고


저런 맞다이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꼈어.


썩어도 화약무기는 화약무기구나.....


대응방어정도는 했구나.....




위기의식 속에서 훈국신조군기,기계 도설로 뭐 대응을 해보려고했지만.


이거 자체가 이미 해국도지라는


서양세력에 앞마당 뒷마당 2차 아편전쟁에서 자금성 버리고 도망한


청나라에서 나온 서적을 참고로 한건데. 뭐 대단한 결말이 나왔겠어?....


결국 중앙에서 파견한 300명이 싹다 박살나는 결말이 나왔지.



조선 중앙 정치도 당혹감을 느껴.


아 안되는구나.



그리고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체급도 낮고(청나라는 정치는 개병신이니만 체급빨로 여러번 실패를 겪어도 버팀)

중앙정치도 거진 박살나있고(세도정치)

위기의식도 늦게 깨닯은 상태에서(청나라는 일찍쳐맞았지만 거기서 교훈을 못얻었고, 1본은.....말안해도 알지?)


밀려오는


서세동점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거지.



진지충으로써


두가지를 느꼈어.


하나는. 변화라는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는구나.....


19세기 초까지만해도


강철의 대량생산. 총알을 여러번 장전해서 분당 수십발을 사격하는 개인화기 같은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없었단 말이야.


근데 19세기 중반부터 순식간에 달라지지.


그 변화를 캐치할 수 없었던 체제들은 순식간에 밀려버리더라.....



또 하나는.


우리것이 최고라는 자부심은 필요하지만.


거기에 파묻혀서 변화에 둔감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좀 졸렬해보여도. 눈치를 잘보면서 변화를 인식하는게. 속좁고 등신같아보여도 자기 목숨은 더 잘 지킬거같다는 생각이 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