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뫄 종가끕 아니면 족보 종이쪼가리는 위조 가능한거 다 알자너.
뫄 굳이 족보를 판다면 국립중앙도서관 가면 ㄹㅇ루 실록같은거 뒤져서 가문 혈통 쭉 따라가는 전문가 아재들한테 맡기는 방법도 있음.
그런데 그 양반들은 너무 몸값이 비싸고... 하니 흥부조무사 급으로 가난한 잔반가문의 군붕이들이 간단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헌데 그게 생각보다 간단함.
다들 친가 고향에 뭐 뒷산같은거 다들 있지? 거기서 느그 증조부 고조부 묏자리 함 찾아뵙고 와라.
일단 족보에서 몇대 위 조상이신 양반 묏자리에 묘비가 떡하니 박혀있는데 막 각도 쫙쫙 잡혀있고 한자로 이것저것 간지나게 적혀있으면 sucksex.
비석이 깔쌈하고 묏자리 관리도 잘 되어있다 = 이런데 쓸 돈이 있었고 윾교탈레반들 답게 꼬박꼬박 찾아뵙기도 했다 이거지.
갓직히 사람 관련해서 못해도 1, 200년씩 남는게 묏자리다 보니 이게 제일 효과 직빵이고 정직한 방법이기도 함.
우덜 집안 케이스도 대충 비슷함. 우리 가문은 조선중기때 우의정인가 한분 딱 배출하고 이후 쭉 내리막길이어서 조선조 후기에는 그냥 흔한 잔반 집구석이었음.
헌데 이후에 고조할배가 집안을 좀 일으키셔서 흉년에 곡식 풀어서 근처 농민들 구휼한걸로 고종한테 작위도 받고 그러셨다더라.
뫄 그 이후 왜정때 고조할배 증조할매 등등 다 돌아가시고 도로 잔반으로 맨땅에 다이빙 하긴 했지만 덕분에 묘비만큼은 좆간지가 풀풀 넘치는데...
아무튼 느그 종가 바깥 잔반조무사들도 조상님 전투력 측정 함 제대로 해보고 싶으면 묘비나 찾아봐라
아, 그거 아니면 종가랑 친하냐 안 친하냐로 구분할수도 있음.
우리 외가쪽도 종가랑 좀 친해서 70년대에도 명절때마다 같은 가문 사람이 굴리는 크라운제과 버스 타고 제사다녔다더라.
뫄 그래도 이쪽도 잔반은 잔반이라 땅 좀 더 있는거 빼면 근처 동네 농군들이랑 다를거 별로 없었음
하... 시발. 기껏 글 써오니까 떡밥 죽었네
근디 그런거 볼때마다 느끼는건디 양반출신이고 상놈출신이고가 뭔 상관인가 싶으요 지금 잘사냐 못사냐가 중허지
그치. 근데 양반중에서도 ㄹㅇ 종갓집 사람들은 냅두면 자연도태될 병신들도 어찌저찌 먹여살려주긴 하더라 ㅋㅋㅋ 요즘도 그럴줄은 몰라서 신기했음
종친회 있으면 찐이냐??좆도 상관없긴한데 궁금하긴 하네
ㅇㅇ 금마들은 일제시대때도 가문 원한 가지고 머리끄댕이 잡던 놈들이라 ㄹㅇ 찐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좋은 조상님 두면 선산에 도로나면서 조상님들도 외각이지만 더 좋은 곳으로 이장하시고 후손들도 보상금 남은걸로 해피하고 서로 좋다.
뫄 그러면 좋긴 할텐데 우덜 집안은 즌라도 구석진데라 도로 안 날걸 ㅋㅋㅋ
그러면 좋겟지만 그 보상금 독점할려고 후손끼리 법원에서 악다구니 쓰는게 대부분임 어엌
우리성씨 파 한개밖에없고 재단까지있는데 찐인가
작은데 이것저것 많이 굴리는 가문들은 사칭할 양반조무사들이 들러붙기 힘들테니 찐일 확률은 꽤 높을거임
아까 쓴놈인데, 종가랑은 친하다기엔 애매한데 일단 종가말고 우덜쪽에 따로 선산 있고 거기에 고조부 대까지 묘지랑 한자로 비석 박혀있고 거기는 우리쪽이 관리함. 그리고 아버지 어릴때는 종가 제사도 한두번 간 모양이고 근처 팡역시에 있는 문중 관련 문화재 얘기 꺼내니까 아버지가 어 거기 뭐 있을거라면서 아는체하던데 그럼 맞겠지 아마..
ㅇㅇ 선산 따로 관리하는것도 사실상 종가가 맡겨놓은거나 다름없는데 찐 아니면 애초에 종가에서 제사도 안 끼워주지 ㅋㅋㅋ
워메 근디 그짝도 라도여? 허벌라게 반갑구마잉
묘비가지고 알아보는거도 사실 정확하지는 않은게, 진짜 양반에 굶주렸던 사람들은 호적사서 제사도 지내고 묘 관리도 해주고 그랬나보더라고. 그럼 진짜 양반들은 아니꼬워도 지들은 돈이 없어서 제사도 못지내고 하니까 어색하지만 같은 집안 사람으로 대우해주고 그런 사례도 있음.
근데 사실 이 시대에 양반 상놈이 뭔 상관인가 싶겠냐마는 뭐... 걍 그렇단 얘기
아몰랑 돈으로 지른 호적도 일단은 호적이랑게요. 선상님 양반전 못봤수?
진짜 그런 케이스면 알건 모르건 그러려니 해야지
선산가면 장군묘도 몇개 있던데 맞는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