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은 흔히 무기로 악용되었다. 굶주림은 구타보다도 먼저 동원되는 처벌 수단이었다.
루이장 현의 여러 생산대대를 면밀히 살펴본 조사관들은 굶어 죽은 사람의 80%는
처벌로서 식량을 받지 못해 죽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공동 식당에서 식량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종종 공식적 배급량보다도 적은 양을 받았다.
한 농민이 설명했듯이 "솥에서 죽을 푸는 국자는 사람들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현상,
즉 공동 식당에서 음식을 퍼주는 사람이 "반동분자"라고 간주된 이들을 고의적으로 차별하던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훌륭한 노동자들에게 퍼줄 때는 국자가 솥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간 반면,
"반동분자"들에게 퍼줄 때는 국자가 표면을 살짝 떠낼 뿐이라 묽은 죽 물만을 받았다.
농민은 계속 회고했다. "그 물 같은 죽은 푸르스름했고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우슈비츠의 그 카포를 도와 주고 받는 혜택으로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 작업반에서 수프를 나누어줄 때면
그는 국자를 수프통 밑바닥까지 집어 넣어 콩알 몇 개를 내 수프에 넣어 주곤 했다.
- 빅터 프랭클 저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아우슈비츠에서는 하루에 한 번 무 이파리 수프를 배식했었단다.
줄 맨 앞쪽은 좋지 않았어. 순 물뿐이었거든.
줄 끝 근처가 좋았지. 바닥의 건더기가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맨 뒤는 최악이었단다...국물도 없었거든.
- 아트 슈피겔만 "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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