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가 경주에서 동학을 개창한 이래로 동학의 본진은 경상도 북부 지방이었음.
최시형도 한동안은 경북 지방에서 지속적으로 포교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동학이 대대적으로 봉기를 일으켰을 때 경상도가 조용했느냐.
간단함. 봉기 이전에 작살 났거든.
안동대 다닐 적에 동학 관련으로 수업 중에 발표가 있었는데, 교수들 이야기에 따르면 동학이 봉기 때 잠잠했던 이유가 두 가지임.
1. 경북 북부 지방의 양반들 영향력이 다른 지방이랑 넘사벽으로 차이났다.
이 지방 양반들은 과거 시험에서 벼슬 못 먹는 대신, 지방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한 지 100년 훨씬 넘은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 경주, 영주, 예천, 진보, 예안 등 각지의 양반들이 혈연, 학연으로 제대로 뭉쳐있었음.
때문에 농민 통제력이 타 지역하고 비교하면 졸라 강했다.
2. 1871년 이필제의 난
1871년에 이필제랑 최시형이 공모해서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목표는 교조신원과 동학 포교의 자유.
그런데 각 지역의 동학 접주들이 양반이랑 관군들한테 각개격파 당하고, 이필제도 나중에 모가지가 뎅겅당함.
가장 대표적인게 예천인데, 여기서는 양반들이 민보군 결성해서 동비 때려잡는데 선봉이 된다.
최시형은 직전에 간신이 튀는 데 성공했고.
이 두 가지 이유, 특히 이필제의 난 당시 동학 기초조직이 뿌리 채 뽑혀버린 탓에,
정작 전라도, 충청도에서 대규모 봉기가 발생했을 때도 경상도 북부 지역은 조용했다.
참고로 이걸 말한 교수는 정진영(안동 양반문화 연구), 김희곤(경북 북부 독립운동사 연구)임
*저 당시 수업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골 때렸던 이야기.
경북 북부 양반들이 얼마나 꼴통이었냐면,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권유 오니까 쌍놈이랑 같이 못 하겠다고 대놓고 거절.
이에 혁신유림이었던 유인식, 김창숙 등이 따로 짐 챙겨서 서울 올라갔는데 이미 상황 다 끝났음.
당연히 민족대사에 참여를 못 했다고 엉엉 울었는데, 지나가던 쌍놈 왈
'너네 양반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했는데, 뭔 자격으로 울고 있냐?'
이 말 듣고 유인식이랑 김창숙이 문자 그대로 각성을 하게 된다.
최익현도 국왕의 군대랑은 못 싸운다고 의병 자진해산했고,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데 평민 출신 의병장이 자기한테 예를 표시 안한다고 참수한 적도 있지. 갑오개혁 때 신분제는 이미 끝났는데도.
우리 개혁했다 이제부터 신분제 끝! 이래봤자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신분제 사회가 바뀔리가
백정 형평운동 꼬라지 보고도 바로 바뀐다는 생각이 나오냐? 실질적으로 신분제 작살난건 6.25야
그거 유인석이지 실제론 깊게 파고들면 조금 복잡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경상도에서 공산주의세가 강했던 것은 저러한 기성 양반 계층에 대한 반동도 있었던 것인가
안동 의병은 또 유명인사들 많은편아니냐?
ㄴㅇㅇ. 재미있는게 안동 대표 공산주의자들 전부가 양반 자제들임
ㄴㄴ많음. 왕산 허위랑도 커넥션 얽혔고, 김동삼, 이상룡, 이육사, 김지섭에 광복단 등등등
경상도 지방의 지역 양반들은 타 지역 보다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나 그럼
정확히 말하자면, 퇴계학이라는 학문에 종가라는 혈연으로 뭉치는 게 다른 지방이랑 급이 틀림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 종가에 모든 힘을 몰아주는 대신 그 주위로 동성집단이 뭉쳐서 마을을 형성하는게 경북 북부 지방에서 매우 두드러짐.
강력한 향반세력의 기반이 집성촌이었다는 건가요?
아, 안동 지방 양반 계층이 그런 식으로 뭉치는 사례에 대한 연구가 있었던게 기억난다. 제사를 수행하는 것 부터 종가에 딸린 토지 문제까지. 특히 장남 세습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꽤 있었는데.
해방 전엔 이북에서 천도교 세가 강했다고 했는데 이북에서 안 들고 일어난 이유가 뭐임?
반란이라는게 성립되려면 일단 체계적인 조직체제, 자금원, 그리고 지도자가 필요한데 당시 이북지방에 홍경래의 난 이후로 저 세 가지에 해당되는 것중에 하나라도 있었음?
사회주의자 중에 상층자제 출신 많은건 동서고금 똑같자너
고향이 의성이라서 명절때마다 내려가는데, 이쪽 사람 아니면 아직도 대한민국에 이런 동네가 있나? 할 정도로 유교적 전통이나 학문적 유대감이 깊음. 수십년만에 내려와서 잠깐 일보다가 우연히 만난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잠깐 촌수 확인하면 금방 신원 확인되는 무서운 동네지. 아직도 이러한데, 그때는 더 했겠지.
ㄴㅇㅇ. 교수가 심플하게 말한게 '숫자=힘'. 몰락양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같은 혈연집단 중 높은 사람의 권위에 기대면 양반의 권위를 지킬 수 있음. 마찬가지로 동성촌 하나로는 수령한테 못 개기지만, 학맥이랑 혈연으로 연결된 동성촌 수십개가 뭉치면 관찰사한테도 개길 수 있음. 그거 때문에 경북 북부 지방에서 유행한게 문중서원 건립임. 동성촌에서 입향조나 중시조 기린다고 세우는 서원인데, 당시에 동성촌 몇 개끼리 협정 맺고 '내가 너 서원 세우는 거 도와줄테니, 다음에 우리가 서원 세울 때 도와달라'라고 쇼부까지 쳤음.
더불어 학문적인 이념싸움에서도 동성촌 인원이 집결하면 이견이 다른 쪽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는데도 쉬웠을테고.
씹 보면볼수록 흥선대원군 개쩌는 인간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놈들 항의 씹어먹고 다 폐철한거잖아
뿌리 올라가면 영조때의 이인좌의 난 까지 가지 았냐 그때 경상도 반역향 딱지 붙고 등용길 막혔다가 정조때야 되어서 열렸던걸로 아는데
정조 때에도 안 열림. 이벤트성 과거 한 번 열리고 끄읕
이런말은 좀 그렇지만 625안일어났으면 더 피곤했을거 같다 - dc App
하지만 정작 반일운동인사는 경북, 특히 안동에서 우수수 쏟아짐 - dc App
그 관련해서 안동 지역 독립 운동가 썰 몇 번 들은것 같기도 하고.... 안동 내려왔다가 걸려서 총 맞은 사람이라던가
동성촌 하니까 생각나는건데 우리 친가도 종친모임 같은거 가면 무슨 7촌 8촌 아재들이나 그정도 떨어진 친지들이 죄다 상주에 모여있는게 신기했었는데, 그래서 그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