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이순신 장군 이미지가 E순신이니 전사한 조선 수군보다 이순신 손에 처형된 수가 더 많느니 하는 식으로 이상하게 왜곡되면서 이순신 하면 꽉 막힌 고집불통에 좀만 잘못되도 모가지 날리는 귀신 정도로 굳혀져가더라. 근데 난중일기 한 번만 읽어봐도 이 충무공이 병사들한테 급료랑 휴가, 포상 챙겨주려고 열심히 애쓰고 필요한 경우는 유도리 있게 잘 대처했다는걸 알 수 있을거임. 난중일기가 업무일지는 아니라 기록이 드문드문 남아있긴 하지만 처형된 사례 보면 대부분 전시탈영, 이적죄, 군수물자 횡령, 근무지 무단이탈 등 현대 군형법으로도 엄벌받을 사안들 대상이지 뭔 활 못쐈다고 갈구고 쌀 몇섬 지고 몇보 못뛰었다고 휴가 자르는 미친 짓은 안했음.
날짜 불명의 계사년 기록을 보면 "지금 민심도 소란스러운데 윽박지르지 말고 작전 일자 늦춰서라도 애들 휴가 좀 다녀오게 해줍시다"하고 보고서 초안 작성한 흔적이 있음. 이게 여유있는 상황도 아니었던게 바로 그 전해가 임진년이었던데다가 조금 뒤에 보면 "아니 동원이 많이 됐다고 다 집에 보내면 전방 텅텅 비우시려고? 일단 조사한 다음 돌려 보낼 애들 보내도 늦지 않음" 하고 다른 보고서 초안을 준비했을 정도로 항상 사람이 부족한게 수군이었는데도 병사들 휴가는 챙겨준거임. 장수들도 휴가 신청서 써오면 가능한한 내보내줬는데, 지휘관급의 휴가 기록은 너무 많아서 따로 쓸 필요도 없음. 병사들 대상으로도 "병사들을 휴가 보냈다. 녹도 만호 송여종에게 죽은 병사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쌀 두 섬을 줬다"는 기록이 보임.
병영 생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줘야 한다는 걸 잘 아는 지휘관이었음. 흔히 나오는 기록들이 "오천명한테 밥을 먹였다, 날 어두워진 다음에 술과 음식을 베푸니 아랫사람들이 취해서 요란스러웠다, 나무 벨 작업 전에 특식 먹였다, 어두워지자 장수들은 뛰어넘기 놀이 하게 하고 병사들은 씨름으로 승부 벌이게 했다, 나한테 선물로 들어온 술과 음식을 장졸들에게 내려줬다" 등등. 포상도 잘 챙겨서 활 쏘게 해서 잘 쏜 사수들에게 왜군 장물을 포상으로 준다든가, 한창 전쟁하는 와중에도 사부, 격군들 급료 챙겨줬음. 난중일기에 직접 올라간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전해내려오는 전투 이후 장계 보면 한자 이름도 없는 일개 사졸들까지도 꼼꼼하게 보고 올려서 포상 받도록 해준 기록도 있음.
그리고 충무공이 생각보다 유도리도 있는 편이라 항왜들이 광대놀이 하는거 보면서 "지휘관으로 좌시할 일은 아니긴 한데, 너무 하고 싶어하니까 그냥 봐줬다ㅋ" 정도로 넘어가거나 관할 시찰 나가서 "생각보다 상황 안좋네. 일단 전선 수리 중단하고 군사랑 주민들 휴식을 줘야겠다" 고 쓰기도 하심.
7년간 최일선에서 전투부대 유지하면서 진중 반란 한 번 없이 버텨낸게 ㅈ으로 보이나 싶음. 풀어줄거 다 풀어주고 조일땐 조이고 당근 채찍 다 써가면서 전투력 기강 유지한 역대 최고 지휘관을 병사들 조진 다음 "우리도 전시 아님? ㅎㅎ" 하고 핑계대는게 지휘의 전부인 줄 아는 작자하고 비교를 하면 쓰냐.
사실 이순신의 진중 장악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는 다른 장점들하고 똑같이 그냥 후임자 겸 전임자랑 비교하면 됨. 충무공이 임진년 이래 4년 동안 전투, 돌림병 겪고 최전방 대치 해가면서 유지해온게 한산도 통제영인데, 정유년 2월 말에 잡혀가서 4월에 석방된 다음 5월 초, 딱 3개월 만에 들은 소식이 이거였음.
"(원균 휘하 통제영) 진중의 장졸들이 이탈하여 반역하니 그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모르겠음"
겐킨보소
그런놈들은 걍 엄격이랑 꼰대짓을 구분 못하는 것들임
쉴드 친답시고 충무공 건드는거 ㄹㅇ 웃기지도 않음.
ㄹㅇ
유교 FM이라 아들 셋 있는데도 조카들 거두어 들이고 장가 먼저 보내고 전시중에도 어머니 삼년상 치루다가 어명 떨어저서 상복 벗고 고기 먹고 개좆같은 선조도 유교 FM에 따라 절대충성한 분임 ㅠㅠ
좆튜브 + 따봉충 +비틱 + 급식충 + 일뽕 + 야갤 엠생의 개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이순신 이미지 병신되는 중임
ㄹㅇ..... 딴 사람도 아니고 충무공을 그런 작자랑 비비는건 뭔 짓거린지. - dc App
내가알기론 일본 포로에도 어느정도 대우 해준걸로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