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만주에 주둔해 있던 관동군은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본격 참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응디를 찌르겠다는 야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특히 대소작전의 핵심이 될 전차 부대는 대부분 관동군이 가지고 있었음. 그리고 1942년 6월에는 기존의 여단급 전차부대 보다 규모가 큰 3개 전차 사단을 창설하게 됨.
이들 3개 전차 사단은 신규 편성이 아닌 기존의 부대를 재편성한 것이었는데, 제1, 2 전차 사단은 원래 여단급 전차 부대였던 제1, 2 전차단에 연대 하나씩을 붙여 사단급 편제로 만든 것이었고, 제3전차사단은 내몽골에 주둔하던 기병 부대를 전차 사단으로 개편한 것이었음. 이 전차 사단들은 원 소속군에 따라 1,2 전차사단은 관동군에, 제3 전차 사단은 북지나방면군에 배치됨.
그리고 1942년 7월 4일에 기갑군이 창설되는데, 이 기갑군은 제1, 2 전차 사단과 교도 전차대로 구성되었음. 이 중 전투부대는 제1, 2 전차사단이었고, 교도 전차대는 후방에서 전차 부대원들의 교육과 전술 연구 등을 맡는 부대였음. 소속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갑'군'이라고는 해도 타국의 군 편제가 아닌 군단급 편제였음.
이 기갑군의 전력은 좆본이 없는 전력 있는 전력 다 끌어모은 탓인지 꽤 많았는데, 각 전차 사단은 4개 전차 연대와 1개 기동 보병연대, 1개 기동 포병연대로 구성되었고 교도 전차대는 2개 전차 연대를 보유하고 있었음. 1개 전차 사단이 대략 300여 대의 전차와 13,000~14,000명의 병력, 75mm급 야포 12문과 105mm급 포 24문, 장갑차를 포함한 차량 2,400여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좆본의 빈약한 생산능력치고는 꽤 대규모의 기계화 부대였었음.
이 기갑군은 나름의 기대를 받고 만주 동부를 맡는 제1방면군에 소속되어 관동군이 소련과 전쟁을 벌이게 되면 작전의 선봉이 될 것....이었으나 태평양 전선이 악화되자 전차를 만주에 탱자탱자 놀려둘 수 없게 되었고, 기갑군은 결국 창설된지 2년도 안 된 1943년 10월 30일 부대 해체 크리를 맞게 됨.
기갑군의 해체 이후로 좆본은 더 이상 대규모 기갑 제대를 편성해 작전에 투입시키는 일은 없었고, 한 전차 사단들의 연대가 서로 다른 전선에 투입되는 일도 허다 했었음.
전차 1사단을 예로 들면 제 3 전차연대는 중국에서 작전했고, 제 9 전차 연대는 사이판과 괌에서 작전했었음.
참고 문헌 - 후지이 히사시, 일본육군사단변천사
카도가와 코타로, 제국육군 기갑부대
모아놓으니 규모면에선 썩 봐줄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