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50년대부터 역사와 전통의 시위 문화를 가지고 있음

이러한 시위 문화는 운동권이 주류였던 당시 학교의 비밀 동아리를 통해 전술과 전략이 전수되었었음


우선 전술의 기본이 될 무기들을 제작하는 방법도 비밀 동아리를 통해 전수되었고

칵테일 화염병 제조 방법은 각 학교마다 다른 방법을 체득하였고 비밀 동아리를 두번 거친 후에 은밀히 전수되었음


무기를 만든 이후에는 병력 동원을 준비해야지


당시 1960 70 80 년대에는 알다시피 전화라는게 엄청 귀한 물건이었음. 그래서 전화를 통한 연락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인편을 통해 학생회간 연락을 가졌음


이 연락책은 철저한 신원을 검증한 후에, 즉 경찰의 앞잡이가 아니란 걸 검증 후에 운용하였으며, 경찰이 학교 정문에 배치되었고 학생회 주요인물들에게 마킹 미행이 자행되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러한 전령 운용 방식도 이중 삼중에 암호를 통해 이루어졌음


병력 동원 연계가 확정되고 날짜를 잡은 후에는 경찰과 맞짱을 뜨는 전략적 방안을 토론하는데

흔히 말하는 사수대가 전열보병의 척탄병 역할을 하여 경찰의 돌격을 저지하고, 후퇴 시 안전한 퇴각을 유도했음

또한 한번의 시위 시 여러 학교가 연계하는데, 이 때 학교별로 담당을 나눔

모 학교는 모루를 담당하여 전면의 전선 유지를 담당하고, 모 학교는 사수대를 편성하여 우회기동, 모 학교는 일반 시위대를 동원한 양동작전, 모 학교는 균열된 전선을 돌파하여 시위 목표에 도달 등등으로 나누어짐. 


이렇게 입체적인 시위 루트를 계획 후에, 작전을 개시함


물론 경찰도 당하기만 하진 않아서, 양익 포위를 실시하는데, 이 때 백골단과 사수대가 붙어서 밀고 당기는 전선이 형성되고, 주 전선에는 전경과 일반 시위대의 질량싸움이 이어짐

그리고 양익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전선의 변화가 갈리는데, 백골단이 저지되면 전경은 후퇴하고, 백골단이 사수대를 뚫으면 사수대는 후퇴 작업을 펼치고 일반 시위대는 후퇴, 사수대는 화염병으로 불의 저지선을 형성함 


백골단이 저지되었을 때 전경이 즉시 후퇴하는 이유는 주 전선 외 별동대가 시위의 목표에 접근할 경우가 상승하기 때문에다가 전경대가 포위당할 우려가 있었음


어쨌든 한번 싸우면 학생회는 디브리핑을 가져서 다음 시위의 약점을 보강함


경찰과 학생회의 정보전 같은 경우도 유명한데 

경찰은 학생회에 지속적으로 쁘락치를 투입하려 했고, 이 쁘락치를 잡아내려는 학생회와 경찰의 정보전도 치열했음. 자본론 외우기에서부터 신원 조회, 학생회 동아리 입단예정자 미행 등등... 


어쨌든 쁘락치 전술로 와해된 학생회는 적어도 서울에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서울 대학 학생회의 보안은 출중했다. 


근데 여기서 어떻게 본 시위에 전술이 들어갔는지 논하려면 필연적으로 6월 항쟁을 다루어야 해서 정떡의 여지가 있어서 여기까지는 다음 기회에 써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