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백제와 가야 갑옷임. 백제와 가야는 손기술이 발달해서 판금 갑옷에 화려한 칠이나 무늬를 그려 넣고 활동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문화가 일본에 그대로 전수되어 한국의 판금 갑옷과 갑옷의 화려함이 중시되는 "무인"의 사회가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갑옷에다가 황칠을 하여서 적에게 공포를 주려 했던 예술은 "명광개"라고 불리는 특유의 방식 이었는데 이게 일본 사무라이 갑옷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돼. 이 명광개 판금은 아직도 유물로써 부분부분 남아있으니까 검색하면 쉽게 찾을수 있음.
출토된 백제 갑옷들. 판금 형식이 보인다.
가야의 복식 형태.
일본은 4세기까지 철을 다루는 능력이 없어서 나무를 이용한 목판갑옷을 즐겨 사용했는데 백제와 가야와의 교류와 상국대우 이후 적극적으로 판금 갑옷을 받아들였다고 보면된다. 삼국시대 한국은 판금갑옷의 한계를 파악 중국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찰갑을 받아 들였고 그 이후에는 방어력이 더욱 강화된 두정갑을 받아 들였고 중앙 집권화가 가속화 되면서 무인들의 가문을 뽐내는 갑주 문화는 사라졌지만 봉건화가 지속되고 중앙집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덴노를 세워놓고도 힘싸움을 무지하게 벌이던 쇼군들은 백제시대 판금 갑옷의 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즐겼다는것을 알수 있다.
신체 노출 부위가 많고 방어력 보장이 되질 않았던 이 판금갑옷은 일본에선 여러 바리에이션이 나왔지만 19세기까지 이 판금갑옷을 즐겨 입었다는것은 조금 아이러니 하다. 나중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두정갑 형태를 보이긴 하지만 내란과 전쟁이 수없이 많았던 일본이 중국의 두정갑을 받아들인 시기가 매우 늦고 또한 보급화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의 성격이 조금 보수적이라고도 볼수 있다. 한국이야 진작에 벌이고 철갑 혹은 두정갑으로 전신을 보호했지만 일본은 그러지 못했지.
사기를 보면 조선 장수들이 일본의 판금을 가지고 비웃는 부분도 몇 있다. 하지만 17~18세기부터 1세기 이후 지금까지 쭉 자신들을 상국대우하던 일본이 한국보다 잘나갈줄은 꿈에도 몰랐지.
맨 윗짤 간지나는데 왜 후기로 갈수록 배불뚝이에 기왓장 붙인 형상이 되냐 ㅋㅋ
찰갑 말하는 거냐? 왜냐하면 판금보다 낫거든ㅋㅋ
그니깐 판금 자체는 좋은데 배불뚝이 형상이 웃긴다 이거지
아 판금 말하는거야? 저게 실제로 입으면 그리 배불뚝이 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찰갑이 더 그래보여
명광개는 당나라양식인데
명광개가 당나라 갑옷 형태가 아니고 갑옷에 붉은 칠과 황칠을 했던 방식을 "명광개"라고 하던데 아마 동음 이거나 전수를 받고 와전된거거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800144&page=1
명광개에 대해서 더 찾아봤다.
명광개는 원래 유목민족이 갑옷에 청동거울 붙인것에서 유래된 것임. 유목민에게는 토속신앙의 의미가 있지만 이들과 전쟁을 하면서 전장에서 심리적 위압효과같은걸 노리는.
백제도 황칠한 명광개같은 찰갑옷을 만드는 기술이 유명해서 중국으로 수출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렇게만 이해했었는데 조금더 깊이 알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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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일본사극에서 저런복장 입고있는거 봤는데 뭐더라? 제목이 뭐시기태자인데 정확하게 모르겠다
백제 무사 무덤에서 출토된 백제계 판금 갑옷의 일부 미비부주 말하는 거지? 맞아 그 투구는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도 나온적이 있어.
쇼토쿠 태자일껄
저거 왜계 계열 갑옷인디 가야랑 백제 일부 지억에서 출토되서 왜국 갑옷이 우리나라가 근원이라는 이야기있는데 출토되는 유물량은 일본 본토가 압도적임 저 판급갑옷 양식도 흉부보면 완전히 다르고
미비부주 투구형의 백제 판금 갑옷 형태는 한국이 일본것보다 훨씬 빠른 유물이 백제 무사 고분에서 출토된지 오래임. 유물량은 일본이 당연히 압도적인게 백제식 판금갑옷을 받아들이고 꾸준히 개량하면서 유지해 왔고 한국은 찰갑을 빠르게 도입하고 판금은 도퇴시켰기 때문에 남은 유물량이 많이 없지. 물론 오리진은 백제지만 독자 발전시킨 일본식 갑옷이 모두 백제것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일본이 목판갑옷을 애용한 시절에 한반도 국가들은 이미 판금을 입고다녔음으로 시기상 한반도가 왜국으로 철제기술을 전수한 당시 갑옷도 함께 전수된거라 보면 알맞다.
출토되는 유물량이 무슨상관.. 일본이 이후로도 쭉 많이 썼으니깐 많은거지 먼저썼다고 많은건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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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금갑이 아니라 판갑 아니냐. 판금갑은 플레이트 아머고 제작공법도 훨씬 진보된거고
기원전 3세기부터 한반도에 철기 유입이 되었지만 이건 한반도 남부 뿐만아니라 일본까지 유입됨. 게다가 한반도의 철기 발전은 한사군의 영향이 컸음. 재지 세력의 철기기술이 있었으나 매우 소량이고 중부지역에서 발견되는 철기 유물 다수가 한사군 이후임. 반면에 마한지역의 철기는 한사군 설치 즉 기원전 1세기 이후에 어느정도 발전하다 정체되고 이후 한반도 철기는 대체로 2세기 중엽에 발전기를 이루고 제대로된 철기대량생산 보급은 한사군 멸망 후인 3세기 전반임. 실제로 2세기 중엽까지는 일부 유구에서만 철제유물이 다수 집중된 반면 최소한 2세기 후반기로 가야 생활유적 등지에도 철기유물들이 대량으로 나옴
나는 일본 고고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4세기에 대량보급체계는 아니었어도 다루는 능력은 있다고 봄. 한반도랑 고작 100년 차이니. 근데 그전 까지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일본이나 한반도나 연계 혹은 한계 철기유입 시기는 비슷함. 한반도가 한사군이 있어 발전에 유리했다고 처도 한사군-변한-왜 로 이어지는 교역에 적극적이었음. 오히려 기리영 전투 따위나 벌이는 마한보다는. 백제 조차 처음 사신 보낼때 가야를 통해 교류했고, 이후에 근초고왕때 실시한 남정 역시 마한이 아닌 마한지역에서 왜와 직접 교류하기 위해서임. 정작 마한은 무령왕때도 멀정히 남아있으니까. 그럼 백제와 왜가 직접교류한건 4세기 중후반에 가서이고 최초로 한 통교는 3세기 중반인데 변한지역 국가들은 이미 왜와 오래전 부터 통교하고 있었다는 거지.
한국고고학회지, 호서고고학회지 각각 하나씩 찾아봤는데 한국고고학계는 일본의 제철기술의 본격적인 시작을 4세기 혹은 6세기로 봄. 그러니까 철기가 수입된지 900년 만에 있었다는 건데 일본학회는 모르겠음. 제철 기술이 없었지 철을 다루는 기술이 없었다건 다른데. 그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대규모로 철정을 수입해서 이를 다뤄서 각종 농기구를 제작했다고 함. 실제로 철정 유물 자체는 5세기 까지 신라든 백제든 가야계든 대량으로 나온다고함. 제철 기술로 철을 다룬다고 판단하면, 신라 역시 철을 다루는 기술이 3~4세기 이전 까지 없었다는 거지. 다만 이것도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거고 고고학자들도 사료를 근거로 이전부터 제철기술이 있다고 보니까 아마 일본 학계에서도 4세기나 6세기 이전에도 제철 기술이 있다고 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