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DMZ 근무는 양쪽 군인들이 (그 당시 적군은 중공군이었음) 순찰 중 휴전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지내던 시기였었다. 1954년의 후반기가 되니, 선임자와 약간의 후임자들이 제대를 하며 부대를 떠나고 있었다. 나도 멀지 않아 제대할 것이란 희망에, 그날만을 학수고대하며 근무하고 있었다. 고참병들이 제대해 부대를 떠나니, 내가 고참병이 돼 선임자가 별로 없었다.
1955년 봄, 부대는 이동면 국망봉 밑에 있는 연곡리로 이동을 해서 훈련하게 됐다. 국망봉 인근 산에는 잣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이것을 베어다가 막사를 건설했다. 이를 건축 자재를 구하고 만들었다. 차 타이어에 제재(製材)를 피대로 연결해 건축에 쓸 자재로 삼았다. 이를 위해 마치 자재 공장처럼 작업을 했다. 또 후생 사업으로 송판을 만들어 내다판다고 해, 이 작업도 병행했다. 막사 건설 작업에 교육 훈련까지 하다 보니, 항상 쉴 틈도 없이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중대 일보계원이 연대에 다녀왔는데, 술이 잔뜩 취한 채로 내게 왔다. 그는 내게 "교육계님은 제대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고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무슨 소리냐며 이유를 묻자, 그는 연대에서 들은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중대장이 유능한 핵심 인원의 전역을 일시 보류하도록 해놓고 극비에 붙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보계는 그 명단에 교육계인 나도 끼어있다고 한다는 말을 하고는,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눈 앞이 캄캄했다.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 아마 경력이 많고 당장 실무를 노련히 해낼 인원이 줄줄이 제대하고 나가니, 군 전력도 약해지고 일이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남아있는 병력 중에 핵심적인 인원을 일시적일지 영구적일지 모를 전역 보류를 걸어놓은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일보계가 잠에서 깨어난 뒤에 더 자세한 내력을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 중대 취사반장의 친구가 되는 사람이 사단장실에서 근무했다. 사단 사령부가 가까이 있어서 우리중대에 자주 왔다. 때문에 나도 그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그 친구가 우리 중대에 들렸다.
"우리 술 한 잔 합시다". 내 제안에 그는 흔쾌히 "좋지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내 하소연이 시작됐다. 군복무 연한을 따지면, 나는 벌써 제대를 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전역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술김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신이 상급 부대의 실력자니, 당신 덕택에 제대 좀 합시다"라고 말했다.
제대 문제가 인사 대외비로 보류됐다는 지난 번 이야기에, 울분이 복받쳐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도 군대 밥을 먹을 만큼 먹었고 할 만큼 했으니 제대를 해야 되지 않겠냐고 넋두리를 했다. 그는 한번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소속과 군번, 계급과 성명을 적어달라는 말에 얼른 챙겨줬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알아보니 제대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제대명령이 내려왔다. 내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일보계가 받아온 전역자 명단을 중대 선임하사로부터 보고 받은 중대장은 나를 호출했다. 중대장은 매우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너.. 제대 명령이 나왔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큰 말이 없으면, 작은 말이 큰 말 행세를 하겠지?"라고 말했다. 중대장은 조수에게 인수인계를 잘 하고 가라고 당부했다. 또한 사회에 일찍 나가니, 자리를 잘 잡아서 좋은 일이 있으면 자신도 끼어달라고 농담도 곁들였다.
- 소년병 김인환 회고록 중 -
이 전쟁에 나는 17세의 중학생으로 참전해, 너무나 쓰라린 고통을 받았고 꿈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때문에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체험담을 기록하게 됐다.
낙동강 방어전투 당시, 대한민국 국토 10%에 불과한 곳만이 남아있었다. 이 방어전에 소년병이 10,100명을 긴급히 투입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년들이 전선에 투입돼, 그 수가 29,600명까지 이르렀다. 그 중 3,260명이 전사했다. UN군 참전으로 전선이 안정되자, 대통령이 1951년 2월 28일부터 3월 16일까지 종군 학생들의 귀가 및 복교 조치를 지시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소년병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했다. 나는 5년 간 군복무를 마치고 성년에 이르러, 학교에 돌아갈 수 없었다.
- 소년병 김인환 회고록 중 -
추가설명 및 요약
1. 이 참전용사는 17세 나이로 대구로 피난왔다가 징집연령 미달인데 군으로 잡혀감
2. 다부동전투 영천전투 기계전투 용문산전투 저격능선 등등에서 살아남았고 정식 계급 받아서 55년까지 근무 중 계원이 됨
3. 중대장이 핵심 계원 몰래 전역보류걸고 전역을 안시켜준다고 해서 개빡쳐서 아는사람한테 이야기하고서야 제대함
조용히 올라가는 추천수
ㅁㅊ
근데 저분은 군인이 천직으로 보인다. 제대를 안시켜주는 인재
옛날엔 저런게 가능했구나
요즘으로 치면 당사자 몰래 전문하사 지원서 박아넣은건가
고딩 군붕이 강제징집되고 북진통일 이룩하고 중강진에서 제대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집에 안보내줌
칠팔십년대만 해도 그런게 있었다니 뭐
전문하사라도 박으면 다행이지 저건 그냥 병신분 그대로 잡고있는거 아님?
저렇게 연장하면 병장진급 시킨후에 하사 임관시켜줄걸
다부동ㆍ영천이면 낙동강 방어선 주요 전투에 다 참여하셨네... ㅎㄷㄷ...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