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동안 낙동강에서 북괴군의 남하를 막아낸 미 제 8군의 분전은 월튼 워커 장군의 훌륭한 업적으로 역사에 남았다.

1950년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그는 모든 돌발상황에 빈틈없이 대처하는 용맹스럽고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쿄의 사령부와 워싱턴의 백악관에게 무시당하고, 전차전에 불리한 지역에서, 그가 일찌기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끌었던 부대에 비해

전투력이 비교도 안 되게 형편없는 부대를 이끌면서도 말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전쟁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기도 했지만, 특히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그 뒤에 일어난 더 큰 전투들에 가려

미국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힘든 기간에 월튼 워커는 훌륭한 장교로서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무장도 엉망이고 병력도 턱없이 부족한 군대를 이끌고 잘 무장한 사나운 공산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그가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의 조국은 아주 늦게나마 뭔가 도움을 보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워커는 부하들에게 절대 비굴하게 달아나지 말고 군인답게 싸우다 죽으라고 명령했고

자신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필요하다면 부산을 점령하려는 북괴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저지한 군인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9월 초, 언제나 함께하던 정찰기 파일럿 마이크 린치와 함께 대구로 간 워커는 린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와 나는 이 대구의 길목에서 적이 더 밀고 내려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네.

내 계획은 인민군이 이곳을 뚫고 들어와도 자네와 나는 끝까지 여기 남는 걸세.

우리 둘만이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야 하네."


워커는 조그만 정찰기를 타고 다니면서도 겁을 먹거나 피곤해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상공 몇백 미터 고도로 비행하면서 적의 기관총에 맞아 추락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지상에 있는 부하들이 겁을 먹거나 후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어김없이 워커가 창가에 몸을 기대고 확성기로 전선에 돌아가 끝까지 싸우라고 소리쳤다.

정찰기가 저공비행을 할 때가 하도 많다 보니, 린치는 중장이 타고 있음을 알리는 기체의 3성 마크를 아예 지워버렸다.


워커는 대대 하나를 빌려다가 다른 연대를 지원해주고, 해병대와 제27 울프하운드 대대를 기동예비로 활용하여

북괴군에게 뚫릴 가능성이 높은 취약점들을 재빨리 보완하는 등 훌륭한 지휘력을 보였다.

또 철도와 도로를 선점하고 있어서 적보다 기동성이 뛰어난 아군의 장점도 최대한 활용했기에

미군이 일시적으로 헛점을 드러내도 북괴군은 그 헛점을 찌르려 들 만큼 부대를 빨리 이동시키지 못했다.


워커가 늘 인민군의 다음 공격 장소를 정확히 예측했기에, 8군의 장교들은 사령관을 마술사처럼 경외의 시선으로 우러러보았다.

인민군의 무전 코드가 지극히 원시적인 수준이기에 이들의 연락망을 아주 쉽게 도청할 수 있었으나,

워커에게는 한 가지 비법이 더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그는 린치와 함께 정찰기를 타고서 위험을 무릅쓰고 전선의 북괴군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육안으로 적의 배치 상태와 변한 점을 관찰하기를 매일 같이 반복했던 것이다.



- 데이비드 핼버스탬 저 "콜디스트 윈터" 中







장군님...당신께서 지켜내신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