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홍콩을 점령할 당시 150만의 인구 중 100만 명의 중국인을 대륙으로 강제 귀향 시켜
1945년 종전 당시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인구 50만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강제귀향 된 중국인이 모두 復界한다. 인구는 다시 150만 이상 급증된다.
그런데다가 중국 대륙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4년 내전이 시작되자
전쟁 피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유무역항인 홍콩으로, 홍콩으로 내려온다.
홍콩인구는 금새 3백만을 육박한다. 인구가 급증할수록 물 부족은 더욱 심각해 진다.
목욕은 말할 것도 없고 마실 물도 모자라서 물은 시간급수제가 되고
홍콩 변두리에는 물을 얻기 위한 양동이 장사진이 홍콩의 새로운 풍속도가 된다.
그리고 모두 물을 아낄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지 강구하였다고 전해진다.
물이 나오는 곳에는 반드시 물을 아끼자는 "珍惜用水, 惜用滴水"의 유명한 구호가 나붙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단다. 물.물.물 물을 구해야한다.
결국 중국 정부를 설득하여 비싼 달러를 주고 심천의 물을 사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매년 가격을 흥정해야하고 사회주의 국가와 안정적인 계약을 할 수 없는 어려움도 따랐다고 한다.
또한 서방과 적대관계에 있는 중국에 식수를 의존하고 있는 것은 홍콩 안보 차원에서도 치명적이었다.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놓고 실컷 물을 써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런던과 홍콩에 근무하는 식민지 관리들의 자나 깨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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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부족으로 말라죽음
담수화 기술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