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니히그레츠에서 결전이 임박하자, 몰트케는 직접 현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1866년 6월 30일,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와 몰트케는 베를린에서 6량의 전용열차를 타고

일찌기 2세기 전 발렌슈타인의 본부가 있던 보헤미아의 마을, 이친에 있는 제1야전군에 합류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몰트케는 병사들이 피곤에 지치고, 보급 상태는 개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참모본부의 온갖 계획에도 불구하고, 병참 업무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프로이센군 참모진들은 쾰른의 빵집들에서 빵을 철도로 보헤미아까지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빵이 열차에 실려 그 먼 거리를 가는 동안 몽땅 굳고 쉬어버릴 거라는 그 뻔한 사실은 떠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군이 철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막장이 된 빵조차도 제대로 수송할 수 없었다.

프로이센군이 산맥을 넘어가기 시작할 때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종착역에서 도보나 말로 진군하는 군대에게 보급품을 수송할 마차가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참모진들은 병사들이 어떻게든 산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해 어떻게든 적당히 때울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군대 규모가 너무 크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17세기에 발렌슈타인이 이끌던 3만 명 정도의 용병대라면 어떻게든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는 1866년이었고, 25만 프로이센군에겐 명백히 무리였다.


몰트케는 병력을 수백km에 걸쳐 분산시킴으로서 이 문제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프리드리히 카를 왕자와 제 1야전군 참모들조차도 감자와 샴페인 몇 병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쾨니히그레츠 전투가 있던 날에, 몰트케는 그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늘도 초콜릿 두 조각과 작은 빵조각 외에는 먹을 게 없소" 라고 썼다.

프로이센군에게 천만다행이었던 사실은, 오스트리아군의 병참 사정도 못했으면 못했지 나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 맥스 부트 저 "전쟁이 낳은 신세계" 中








무다구치 장군님 : 일단은 소를 끌고 산을 넘어가면서 잡아먹자. 소고기가 떨어지면 일본인은 초식인종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프로이센 참모 : 그냥 산을 넘자. 프로이세ㄴ징은 뭐든지 잘 먹으니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