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2월 25일, 다국적군은 걸프 전쟁에서 처음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라크군이 퇴각하면서 싸지른 불로 타오르는 유정에서 솟구치는 연기가 온 사방을 뒤덮자,
충분한 야시경을 갖추지 못한 미 해병대는 알 부르칸 유전 근처에서 진격을 잠시 멈추어야 했다.
그 틈을 타서 이라크군 2개 기갑여단이 미 해병대의 우측면을 노리고 집결했다.
마이크 와이어트 미 제1해병사단장은 지휘통제소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라크 기갑부대의 공격에 그의 지휘통제소가 괴멸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른 아침, 해병1사단의 지휘소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tow 1개 소대와 장갑차 1개 중대가 전부였다.
그들을 지휘하는 방어 책임자는 대학 미식축구선수 출신이었던 거구의 에디 레이 대위였다.
로스엔젤레스 중남부의 빈민가에서 험한 어린 시절을 보낸 레이 대위는, 부상으로 프로선수의 꿈을 접은 뒤
대부분의 흑인 해병들이 그랬듯, 적어도 군은 그의 인생에 좀 더 공평한 기회를 주리라고 기대하면서 해병대에 자원했다.
이제 그에게 해병대가 보여준 믿음에 보답할 기회가 왔다.
10시간 동안에 걸친 사투에서, 레이 대위는 위험에 노출된 채로 장갑차를 이리저리 거칠게 몰면서
몇 배나 많은 적군을 상대로 필사적인 방어 작전을 지휘했다.
코브라 공격헬기 2대의 지원을 받은 레이 대위는 지휘소를 무사히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적군에게 50대가 넘는 장갑차를 파괴하고 250명의 이라크군을 포로로 잡는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반면에 레이 대위의 장갑차 중대에는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이로서 레이 대위는 그의 "결정적인 리더쉽, 적의 맹렬한 공격에 맞선 무한한 용기, 의무에 대한 헌신"을 기리는
명예로운 해군십자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펄-럭
흑인이 장갑차를 타면 교도소지
미친 완장새끼 낄낄빠빠 모르고 참전용사한테 인종드립 치죠 씨발 - dc App
ㅡ근ㅡ - 딱송합니다
군첩 새키 불타오르네 ㅋㅋㅋㅋ
어디 뽕 완장 참 눈치-개념이 두루 읎네.
해병대도 훈장은 해군껄로 받나
흑인이 장갑차를 타면 흑표 - dc App
저 정도면 명예훈장감 아닌가 - dc App
50대 ㄷㄷ
깜둥이 주제에 좀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