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관장이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1924년 4월2일 도쿄 지방재판소 제8회 신문조서 내용으로, 박열 선생이 당시 "피고(박열)는 의열단에 가입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의열단과 관계는 있다"고 답한 부분이 기록돼 있다.(위 사진 참고)
이어 "의열단의 주의(主義)는 뭔가"라는 물음이 나오자 박열 선생은 "의열단은 일본 자본주의적 제국에 대해 폭력으로써 대항하는 단체다"라고 의열단의 성격을 명확히 설명했다.
또 박열 선생은 "허무사상의 피고가 어째서 의열단과 제휴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공통의 문제 때문"이라면서 "의열단이 일본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점에서 내 사상 감정에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전 관장은 재판기록에 대해 "일본에서 재판을 받으면 누구든지 가급적 자기를 숨기려고 하고 축소하려고 했다"며 "그것은 박열 선생도 마찬가지였다"고 당시 시대 상황을 먼저 상기시켰다.
이어 "당시 의열단이라고 하면 일제가 최고의 악종(惡種)으로 봤다"면서 "가급적이면 (일제에게) 누구한테 지시를 받았다거나, 무슨 계열이라거나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열 선생은 '의열단원이냐'고 물으니까 오히려 의열단과 '관계'하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시인을 했다"며, 당시 일왕 부자의 처단을 계획한 국사범(國事犯)으로 몰리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이를 인정한 것은 박열 선생이 의열단원으로 활동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박열 선생은 1922년 일본 왕세자의 결혼식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왕과 왕세자를 폭살하기 위해 의열단원 김한 등을 통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의열단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김 관장은 "비록 일본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박열 선생이 일왕 부자를 처단하기 위해 의열단 계열을 통해서 폭탄을 가져오려고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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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의열단 아님
상남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