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초, 지난해 베르됭 대전투의 여파로 서부전선에서 방어태세를 고수할 수밖에 없게 된 독일 제2제국군은

기존의 전선에서 35km뒤에 새로 건설된 강력한 방어선, 힌덴부르크 라인으로 전략적 철수를 결정했다.

독불장군에 호전광 루덴도르프는 철수가 독일인들의 사기를 깎아먹을 거라고 생각해 탐탁치 않아했지만

바이에른의 루프레히트 왕세자와 그의 유능한 참모장 폰 쿨 장군의, 지금 독일군 장병들은 방어에 부적절한 현 위치에서는

도저히 작년의 솜 전투와 같은 격전을 버텨낼 수 없다는 끈질긴 설득에 결국 굴복했다.


2월 4일에 내려진 철수작전은 "알베리히"라는 암호명이 붙었는데, 루덴도르프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세 게르만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 등장하는 교활하고 비열한 난쟁이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이름은 작전명으로 참 기막히게 어울렸다.

이 철수작전에서 자행될 무지막지한 초토화 계획을 알고 경악한 루프레히트 왕세자가 자기 지휘관직까지 내걸고 반대하려다

사임할 경우 "바이에른이 독일 제국 중앙정부에 거역하겠다는 분리주의로 간주될 수 있다"는 반협박에 굴복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2월 9일, 알베리히 작전이 시작되었다.

독일군은 철도와 도로를 폭파하고, 전선들을 끊고, 마을과 논밭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풀고,

공장들은 기계를 뜯어낸 다음 불도저로 밀어버렸으며, 폐허에 무수한 지뢰와 부비트랩만을 남겼다.

그나마 점령지의 어린이와 부녀자, 노약자들에게는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수준의 최소한의 식량과 함께 남겨두었지만

젊고 건강한 프랑스 남자들은 12만 5천 명 이상을 납치해 독일 본국에 노예노동자로 끌고 갔다.


3월 20일에 철수작전이 완료되자 독일군은 전선을 35km 이상 단축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 14개 사단을 예비대로 확보하여 연합군의 춘계 공세 - 니벨 대공세에 중대한 문제를 안겨 주게 된다.




- kodef 세계 전쟁사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中






남서아프리카 대학살도 그렇고, 알베리히 작전도 그렇고

프로이세ㄴ징 새끼들은 방화랑 우물에 독타기가 아주 종특이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