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조할배는 1926년생이시고 원래 원산에서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땅을 가지고 있던 지주가문의 장남이셨음. 어린시절에는 평범하게 학교도 다니고 농삿일도 돕던 평범한 청년이셨음.


그랬는데 1945년 어느날 일본 헌병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장정들을 징병하는바람에 할아버지도 부득이하게 일본군으로 끌려가게됨


할아버지는 관동군으로 만주방면에 배치되셨고, 그렇다 할 전투 없이 19살 어린나이에 세상물정 모르고 입대한 터라 어리숙하기도 했고 조선인이라서군 내에서 일본인 선임들한테 갈굼만 받던 도중 소련군의 만주 작전이 시작됐음


일본군 지휘관은 할아버지가 있던 방어진지를 절대로 결사옹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방어 준비를 마친지 하루도 안되어 소련군이 대포,전차는 물론이고 전투기까지 수백대를 이끌고 공격해왔음.


할아버지는 두려웠지만 평소에 관동군은 일본 최정예라는 말을 선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터라 어찌어찌 버텨낼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계셨는데 그건 망상이였을뿐 할아버지 부대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와해되기 시작함


사기가 꺾인 할아버지는 "여기 있다간 일본놈에게 죽든 소련군에게 죽든 고향 땅을 못밟고 죽는다, 도망가자" 생각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는데, 다행히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서 살아남음


정처없이 떠돌던 중 바로 앞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보였는데, 소련군들이였음. 적인걸 눈치챈 할아버지는 곧바로 도망갔지만 말을 타고 쫒아오는 소련군에게 도망갈순 없었고 붙잡히게 됨.


소련군들은 할아버지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마구 때린 다음 어디론가 데려감, 데려간 곳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였는데 일본어를 할줄아는 소련군 통역사 다리를 붙잡고 "나는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왔소, 나는 일본인이 아니니 제발 날 살려주고 고향으로 보내주시오." 애원하던 할아버지를 측은하게 보던 간수가 "당신을 어떻게 믿지?" 물어봐서 어찌어찌 신원조회를 하고 풀려나심.


말이 신원조회지 사실상 감금해놓은것에 가까워서 근 1년간을 그 수용소에서 있으셨는데, 풀려나고 고향 원산으로 돌아가 다시 농민으로써의 삶을 다시 사나 싶었던 할아버지는 돌아와보니 농사짓던 땅도 흔히 아는 북한 토지개혁으로 모조리 뺏긴 상태였고 할아버지 가족은 공산당 간부를 찾아가 이 땅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우리 가문 땅이였는데 어찌 이럴수 있느냐, 항의했으나 되려 부르죠아지 적대계층이라며 구타당하고 쫓겨남.


구타의 영향으로 골병이 나고 경제창출수단의 모든것이였던 땅을 모든 뺏긴 충격을 받은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후 시름시름 앑다가 돌아가시고, 땅이 없어 돈도 벌지 못해 잘 먹지도 못하고 맨날 통곡하던 할아버지의 어머니도 돌아가심.


그 후 공산당에게 격렬한 증오와 분노를 품은 할아버지는 1948년 내 사지가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공산당 치하에서는 못산다. 라며 남동생 두명과 함께 월남하심.


건장한 장정 세명이 38선을 넘는 모습을 본 군인은 할아버지와 형제들을 간첩으로 오인하고 모조리 잡아다가 "이 빨갱이새끼들! 너희들 간첩이지?" 라며 심문함.


약식재판이 열리고 총살당한 위기에 처한 할아버지는 하나의 묘수가 떠올라서 국군 장교를 향해 소리침.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공산당 놈들이 죽였소, 복수를 하고자 하니 입대시켜주시요."

물론 이미 일본군 복무 전적이 있던 할아버지는 군대가 얼마나 좆같은 곳인지 알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고 이렇게 소리친거였음.


하지만 군대가 아니라 경찰, 그것도 전투경찰에(정확히는 북한 출신 청년들로 이루어진 청년방위대라는 자경단) 들어가게됨 

그 이유는 당시에는 전시상황도 아니였고 국내에서 빨치산이 준동하던 시대라 공비를 때려잡는게 더 이득이였기 때문임.

참고로 둘째는 그냥 국군에 입대, 셋째는 17살로 어리다는 이유로 그냥 풀려남.


복수심과 증오심에 불타던 할아버지는 동료들과 함께 빨치산 포로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자에게 온갖 만행을 하셨다는데, 이때를 회상하시며 할아버지는 이때 내가 했던 짓을 떠오르면 나는 지옥에 떨어질것이라고 하셨음.


어땠냐면 빨치산 토벌을 할때 빨치산 가족들을 모조리 납치해서 빨치산이 있던 야산 앞에 이들을 매달아놓고 "자수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가족을 몽땅 죽이겠다." 협박하는 식이였음. 빨치산이 자수하면 바로 쏴죽이고, 자수하지 않으면 그 가족을 죽였다고 함.


청년방위대란 집단이 원래 가족을 모두 잃거나 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으로도 생각하지 않았음.


그러나 이후 전쟁이 터짐.


둘째를 걱정할 틈도 없이 북한군은 엄청난 속도로 밀고들어왔고 제때 도망가지 못한 할아버지와 동료들은 야산에서 빨치산이 했던것처럼 유격전을 해가며 남쪽으로 후퇴하는 국군 부대와 합류하셨고, 이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으심


이후 다시 서울을 수복하고 이런저런 일로 청년방위대는 해산되고 새로이 도경비국이라는 경찰 기구에 소속되어 빨치산이 가장 많다던 호남에 배치된 할아버지는 원래 사용하던 구 일본군이 쓰던 구구총을(99식 보총)버리고 개런드를 받았고 피나는 전투를 계속 하심.


전쟁이 나자 빨치산들은 더 기승이였고 그 유명한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말처럼 밤에 몰래 경찰서를 야습하여 경관의 목을 참수하던 일도 더럭 많았다고 함.


상관을 잃어 분노한 전경들은 똑같이 빨치산을 사살하면 목을 잘랐다고 하는데, 빨치산 토벌 막바지로 갈수록 빨치산을 사살하면 목을 잘라 수급을 가지고 자신의 전과를 상부에 보고하는게 당연한 수순이 되버렸다고 함.


치고 빠지는 싸움 끝에 1953년이 되었고, 빨치산 토벌은 막바지에 접어듬. 전경 무장 상태도 좋아져서 원래 쓰던 개런드총에서 연사 가능한 칼빈총으로 새로 보급받고, 빨치산 토벌 초반처럼 아군에 기습을 하고 그대로 도망가던 빨치산을 추격하던 전투양상이 아예 산속 깊숙히 숨은 빨치산을 찾는 탐색전으로 변함.


치열했던 한국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있던 둘째,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입대하여 후방을 지키던 셋째와도 편지를 나누며 이제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것을 깨달은 할아버지는 휴전한지 넉달 뒤에 사표를 쓰고 경찰에서 나가심.


경찰 간부는 계속하면 경찰에서 한 자리 할수 있는데 왜 나가냐고 뭐라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건 내 주관이다, 미안하다 라며 나감


이후 제대한 형제들과 만나 이러쿵 저러쿵 살던 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낳았고, 할아버지는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는 나를 낳으심.

증조할아버지는 4년전에 이 모든 이야기를 회상하듯이 가족들 앞에서 하셨고, "너들은 전쟁없는 세상에서 살으라" 라는 말로 이 이야기를 끝내심.


그 뒤에 반년쯤 지났나 갑자기 쓰러지신 증조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 두달 뒤에 돌아가심.


증조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울지 마라, 다들 행복해라."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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