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랑스는 당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병사들을 유럽 전선에 대규모로 파견했음. 거의 500,000명 정도의 병사들이 "징집" - 사실상 마을마다 쿼타를 정해두고 대려가는 식이라서 반발도 상당했음- 해서 유럽 전선에서 싸웠는데, 전선 뒤에서 노동력으로 사용되었던 베트남 출신 병사들과 다르게 서아프리카, 북아프리카 병사들은 최전선에서 싸웠고 특히 흑인은 고통을 잘 느끼지 않고 잘 싸운다는 인종주의적 발상으로 최전선에서 돌격대 역할로 자주 사용됨. 그렇게 200,000 정도의 서아프리카 출신 병사들이 전선에서 싸웠고 전사자는 30,000 정도에 달함.
여러모로 프랑스가 이 배테랑들을 잘 대해줬느냐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니지만 자기들은 스스로 프로파간다로 쓰고 했음. "유럽출신 프랑스 병사들과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병사들이 삼색기 아래서 공화국 수호를 위해서 함께 싸운다!" 이런 식으로 ㅇㅇ
뭐 이런식으로.
그런데 이에 반대로 독일은 이걸 상당히 열심히 자기들 프로파간다로 써먹었는데 이건 프랑스의 "야만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 ㅇㅇ. 유럽인들이 싸우는 전장에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을 투입시켜서 온갖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프랑스 군은 이를 묵인한다! 정도가 주요한 프로파간다 주제였음. 근데 또 영국, 특히 미국도 이러한 프랑스의 "특이한 전략"에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았고. 제1머대전 미군에서 흑인 병사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여기저기 썰에서 많이 나오니까 참고하면 될 듯.
독일 프로파간다는 이런식으로 ㅇㅇ
그나저나 전쟁은 끝나고 전간기에 열린 수많은 군축 회담들에서 바이마르 독일이 프랑스에게 요구한 주요한 조건중 하나는 "식민지 병사"의 군축이었음. 거대한 식민 제국을 통해서 가지고 있는 맨파워 풀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교해서 부적절하게 큰 이익이고 식민지에서 징집한 군사들의 숫자 제한과 유럽 전선에서 사용 거부를 천명하라는거. 물론 여기에 프랑스 정부는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음. 애초에 독일의 거대한 인구와 프랑스의 차이를 유의미하게 매꿀수 있는 긴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당장 대전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고. 그래서 나치시기 반-프랑스 프로파간다의 주제중 눈에 띄는게 "프랑스의 아프리카화"를 주제로 담은 프로파간다가 상당하다는 거임. 전간기의 재즈 음악이 유행하는 파리와 미국보다 많은 이민을 받아들여서 다양한 문화의 용광로가 된 프랑스를 "깜둥이화" 라는 식으로 열심히 선동했지.
"100년 후의 프랑스"
그렇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