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몽원정후 사로잡힌 고려군, 몽골군 포로들을 통해서 입수하기도 했었고 당나라랑 교역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했음
실제로 운용한곳도 있었는데 키슈번(현재 와카야마 지역)임
이곳에 고려 출신 임이만(林李満)이라는 가신이 있었는데, 그 이름에서 따온 리만류라는 궁술유파가 있었음
리만류에서 쓴 활을 반궁 또는 리만궁이라고 불렀는데, 물소뿔과 고래수염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함
강궁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닥 안퍼진거 보면 인기는 없었나봄
아니 근데 진지하게 기술 없어서 못만들었다는 애들은
서양에서 판갑, 범선, 총포 기술자 데려와서 찍어내는 마당에 예전부터 만든 옆동네 활을 교류가 없어서 못만들었다고 생각하는거냐...
아 그리고 열도에서 쇠뇌 안썼다고 쇠뇌 기술 없다고 하는 말도 봤는데 기원전부터 들여와서 썼습니다
하와와 주력이 아니라고 기술력이 없는게 아닌것이야요
습기때문에 안썼다고 하는애들은 뭐임?
조선에서도 습기때매 활 구워대고 다른종류 활이랑 같이 썻는데 그거보고 그런거 아님?
이성계도 말했듯이 습기 때문에 안썼을 수도 있음. 그거 빡쎄게 관리해주면서 감수하고 쓰느냐 안쓰느냐는 운용측 판단이지 뭐
해외에서 초석을 수입해가면서 조총 쓰려고 난리친거보면 그 쪽에 우선순위가 갔을 수도 있고
그 복합궁이 인기 없어 안퍼진 이유가 습기로 인한 관리 문제 아님?
습기탓하기에는 일본활도 어차피 아교로 만들고 영국 장궁도 습기에 약한 건 대부분 비슷함
결론적으로 좋은 기술 도입해서 제품까지 완성해놓고 마음에 안드니까 그냥 버린 셈이네. 딱 최악의 테크 탄 것임. 차라리 기술력이 부족했다던지, 재료가 없다던지 했던게 더 나았겠네.
비슷한 예로 에도시대에 기껏 플린트락총 개발해놓고 인기가 없어서 라이터만 찍어낸 케이스가 있음
그저 힙스터 감성이 문제였다 이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