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강해이 어쩌고 얘기 나오니까 본인 군시절 생각나서 하나 풀어봄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은 왠만하면 TV건 뭐건 대충 자정까지는 풀어주는 분위기였거든

카드로 놀고 있는데 당직부관인 중사가 갑자기 들어와서 기강해이라고 도박 어쩌고 하면서 난리치는거임

근데 딱히 꿀릴게 없어서 같이 놀던 전원이 이뭐병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음

왜냐하면 일단 그 카드는 진급쑈 용으로 주임원사 허락을 받아서 사온 트럼프였고

실제로 마술 연습 하던 새끼도 있어서 문 열리는 순간 마술 시연으로 바꿨거든

도박? 돈이 있어야 도박이지 손목 줘패기나 하고 있었구만

근데 주임원사한테 보고하겠다기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말았지


원래 부사관이랑 병이 당직서면 주임원사실에 보고하고 하번하게 되어 있는데

내가 그 다음날 아침에 주임원사가 문서 정리 시킨거 때문에 아침에 올라갔는데 누가 안에 있는거임

그래서 문 밖에서 대기타는데 목소리가 그 중사인거임 솔까 보고를 진짜 할거라고도 생각 못했음


귀 기울여 보니까 이새끼가 존나 악의적으로 보고하는거임 이건 도박아니냐고 발광하면서

실제로는 원카드 치다가 훌라 가르쳐 주는 상황이었고 못하면 손목 존나 패기 하고 있었구만

근데 그새끼는 사실 그것도 모르자너 걍 트럼프가지고 뭔가를 했다고 지랄한거고

주임원사가 그새끼한테 당직 고생 많았다고 내가 뭔 일인지 잘 살펴보고 처리하겠다고 하더라고


그 중사 나가고 한 30초 있다가 들어가는데 주임원사가 당직보고 읽으면서 욕 존나 하고 있는거임

바빠 죽겠는데 뭐 이따위걸 가져와서 염병한다고

주임원사가 욕을 그정도로 하는거 처음 봤음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야 니가 거기 최선임이었으니까 경위서 하나 써와 해서

예? 하니까 어제 카드 알자나 임마 해서 아 예 하고 문서 작성 존나 하면서 길고 길었던 경위서도 썼지 씨발

쓰면서 당직보고를 참고했는데 존나 길게도 썼더라

우리 부대가 진급 코스라고 알려져 있기는 했는데 이런걸로 잘보여서 진급하겠나 싶기도 했다


계급 성명 쓰고 상기 본인은 으로 시작했는데 특정 단어와 상황을 설명하기가 존나게 힘들었다

존나 말도 안되는 주문을 받았는데

'상황이 눈앞에 그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상세히 쓸 것'


그래서 까라면 까야하는 불쌍한 군인은 여러가지 수작을 부리기 시작함

진급쇼를 '진급 축하할 때 관례적으로 행해진 장기자랑'으로 쓴게 시작임

'곧 있을 진급축하연 때 선보일 장기자랑을 연습하고 있었고 이를 목격한 당직부관 중사 ㅇㅇㅇ이 몇가지 사항에 대해 지적함'

'당직부관이 지적한 부분은 트럼프 카드를 소지한 것과 다룬 것에 대한 것이며 이는 엄정한 군기 유지에 방해가 된다는 것임'

'당직부관의 엄정한 군기 유지에 대한 지적에 완전히 동의하며 다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기에 이에 대해 경위서를 제출함'

'(부대명)은 오랜 기간 동안 선임, 동기, 후임의 진급 시점이 되면 모여서 축하해주고 진급자는 장기자랑을 하는 관례가 있었음'

'2주 뒤에 진급하는 일병 ㅇㅇㅇ은 장기자랑으로 마술을 선보이기를 원했고 이에 대해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선임병들과 상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본인임'

'본인은 해군홍보단에서는 2005년도부터 마술병을 선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군에서 마술을 선보이는 것은 특별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음'

'군 특성상 소도구 마술 이상은 선보이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 카드를 선택했음'

'최초로 나온 아이디어는 화투패였으나 해당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도박을 연상시킨다는 복수의 선임병들의 지적이 있어서 트럼프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음'

'이와 같은 논의를 거친 후에 마술도구의 반입에 대해 주임원사에게 설명했으며 반입은 양해 하에 이루어졌음'

'진급 축하연 때 의례적으로 행해진 장기자랑은 후임에 대한 강요와는 관련이 없음'

'참모총장께서 훈시하신 군기확립은 ㅇㅇㅇ과 주임원사의 지도 하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행되고 있으며 이는 올해 전반기의 병의 군기위반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증명되고 있음'

'단적인 예로 3주 전에 있었던 장기자랑은 ㅇ월 ㅇ일 당직을 수행하던 중위 ㅇㅇㅇ과 상사 ㅇㅇㅇ 의 관리감독하에 일석점호 시간 후에 이루어졌음'

'각 생활관 별로 생겨난 경쟁심리로 인해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소품인 트럼프 카드를 선택했던 것으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 선임병으로서 책임을 통감함'


대충 이렇게 초안을 짜두고 정식 보고서를 써본 후임 두명 잡아와서 나머지는 니들이 쓰라고 던져줬고

걔네는 한시간 뒤에 저걸 A4 용지 폰트 12로 4페이지로 만들어왔음

문단 수정과 단어 몇가지 수정하고 제출함

주임원사가 '허락'이라는 단어를 바꾸라고 해서 '양해'로 바꿨고 그거 말고도 몇몇 단어를 좀 더 군인냄새 나게 바꿨음

제출하면서 한부를 더 출력해와서 같이 원카드 치던 나머지 5명에게 토시 하나 빼먹지 말고 외우라고 시켰고 별 탈 없이 지나감

내가 주말에 저거 쓴다고 황금같은 두시간을 아무 의미없이 날려먹은 것만 빼고 말이지




근데 저 보고서 중에 사실인건

생활관끼리 경쟁 붙어서 상병들이 진급쇼에서 애들이 경쟁적으로 지랄발광한다는 점 뿐임

일병들은 쭈뼛쭈뼛거려서 왠만하면 재미가 없었음


저기서 언급된 '3주 전' 진급쇼에서는

여군 정복과 가발을 빌려오고 정복 치맛단을 접어서 손바느질로 꼬매고 다리털 밀고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를 춘 트리오도 있었음

뭐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