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방이나 폴암 창에 비해 실용성이 낮아보이던데
[일반] 중세시대 투핸드소드(그레이트소드)는 무슨용도임?
무지개여섯(x2zzang)
2019-08-2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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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꼭 양손으로 잡아야하는 조따 큰 칼들은 중세말 근대초 파이크 접전때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휘젓는 자살특공대용임
강하게 베어버리는 용도임. 초기 양손검이니까 그레이트소드라고 특별히 큰건 없고(얘가 나중에 트루투핸더/투핸드소드로 진화) 말그대로 보다 강하게 상대를 베려고 만듬.
찌르기가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던 시대의 초창기 물건이기 때문에 더 잘 베라고 칼끝이 송곳처럼 뾰죡하진 않고 끝까지 넓은게 특징임
기사가 그 시절에도 나름 3겹 사슬갑 입고 쩌는 방어력을 자랑했는기라. 지가 검방으로 싸워보니까 방패 좆도 필요없고 걍 양손으로 조따큰칼 들고 베버리자 뭐 이런 생각을 한 기사들이 있었단 말이지. 폴암은 또 쓸데없이 무거운데다 초근접전을 수행할수 없음. 파고들기 당하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그레이트소드가 탄생함.
갑옷이 풀플레이트 등으로 발전하면서 찌르기가 더 많이 사용되게 되는데 이럴 때 더 유용할걸
갑옷이 발전하면서 그레이트소드도 트루투핸더 혹은 롱소드로 바뀌어가면서 끝이 송곳처럼 뾰죡해지지 ㅇㅇ 말기 물건쯤 가면 이리 가늘은 칼끝가지고 베려하면 칼 동강나지 않겠나 의심갈 정도로.
투핸디드 소드들은 그 자체가 일종의 폴암임. 체급부터가 할버드랑 비슷한데 뭘
일종의 폴암이지만 폴암과는 확실히 구별해서 분류함. 일단 '장대'무기가 아니니까.
산 위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수만 명이 되니, 모든 군사들이 보고는 겁을 냈으나,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제독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서애집』 벽제관 전투
중군(中軍)에서 백고초기(白高招旗)를 세우면 각 도수(刀手)는 모여서 대기하는데, 모두 갑옷을 입는다. 북 소리가 들리면 몸을 날려 왜도(倭刀)의 용법대로 머리를 낮추어 말의 다리를 베고, 몸을 일으켜 말의 머리를 베는 두 가지 도법(刀法) 뿐이다. 『무비지』, 比長刀
"고교보(高橋堡)에 이르러 우리 나라에서 잡혀간 사람을 만났는데, 교하(交河)의 사노(私奴) 응상(應祥)이었습니다. 저들의 사정을 자세히 물었더니, 그가 갑군(甲軍)으로서 지난해에 남방의 싸움터에 따라갔는데 남군이 패한 체하고 북군을 유인하여 협격해서 북군이 전멸하고 왕자(王子) 한 사람이 죽었으며, 남군은 태반이 보졸(步卒)인데 철갑으로 머리와 몸을 싸고 손에는 큰 칼을 들고 몸을 굽히고 곧바로 달려가 말의 다리만을 찍으며 선봉에는 코끼리를 탄 자가 많이 있었다 합니다." 『효종실록』 1655년 6월 17일, 재자관 황연이 연경에서 돌아와 의주에 이르러 청국과 명의 전쟁 상황을 치계하다
“신이 경기 지역의 병력을 처음 정비할 때에 선봉(先鋒)을 만들 목적으로 고을마다 2백 근을 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를 뽑아 아병(牙兵)이라고 부르면서 항상 보살펴 주었고, 또 지갑(紙甲)과 대검(大劍)을 만들어 돌격할 때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신이 명을 받고 전장에 나가게 되었으니, 그 중에서 1백여 명을 뽑아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인조실록』 1630년 4월 26일, 총융사 이서가 전쟁터에 나아가매 아병(牙兵) 중 1백여 명을 뽑아 데리고 갈 것을 아뢰다
검의 기동력+유연성+폴암의 공격력이 필요한 상황에 썼고 실용성 충분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