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떨어졌다.

눈을 낮추어서 다른 회사에 서류를 넣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대로,

그래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세수로 정신을 깨운 다음 휴대폰을 보지만 문자에는 오로지 이런 글만 남아 있다.

아쉽다고, 좋은 인재지만 우리 회사의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고, 다음을 기대하라고... 나를 신경을 써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 온 문자는 낮다. 떨어졌다고, 탈락했다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가 거울을 보았다.

번번하지 않은 몸이다. 근육은 지방에 가렸고 팔뚝은 가느다라며 뚱뚱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랐다고 할 수 없는 몸이다. 이제 좀만 있으면 배가 나올 것이다. 찬물로 간단히 헹구고 화장실을 나왔다. 철에 도금한 금색 훈장은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파이고 떨어져 나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구석에 있는 훈장을 보며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생각했다. 나는 다리를 절며 문밖으로 나갔다.

내가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모를 때, 나는 평화를 위해서 싸웠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 청춘을 바친 나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울분은 쌓일 때로 쌓였지만, 이제는 모두 타버리고... 다 새까맣게 재가 돼 버렸다. 이제는 지칠 때로 지쳐서 누더기가 된 마음과 상처만 남은 기억을 잊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몇은 광화문에서 식히고 썩혀, 울분 그 자체가 된 마음에 이끌려 광기와 증오, 그것도 방향을 잃어버린 감정을 주체 없이 토해내고 있고

몇몇은 죽었다. 하나는 공기총으로 머리를 쏘아서, 네 명은 차로 가드레일을 받음으로 서, 군대에 남은 열 명 중 두 명은 목을 매어서, 한 명은 바다에 뛰어들어서, 세 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총을 쥔 채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다양하고 상상력을 총동원해 죽었다.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우리가 훈장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청춘을 바친 우리를 받들어 줄 것 같았다. 지만 싸구려, 삼류조차 되지 못한 배우가 무대에 내려오면 오직 절망만이 남아버린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 나오면 비웃으며 금방 잊어버리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6년쯤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이병 중 하나였다. 일과 시간이 끝나자 농떙이를 피우는, 친구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내 옆에 귄민수라는 놈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소녀전선인지 뭔지를 하고 있었다. 늘어질 때로 늘어지고 해는 저물 때로 저문, 내일이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곧 찾아올 점호를 마치면 우리도 그래야만 했다.

사방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이다. 그 뒤에 찾아온 방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두 군장을 차고 준비를 하라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어안이 벙벙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방송사에서 장난을 친 거라고 이 시국에 이럴 줄 알았다고, 수많은 의문과 공포가 내무반은 덮쳤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중사의 고함이 들리고 나서야 우리는 주섬주섬 무기를 찼다.

덜덜거리는 진동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신병들은 덜덜 떨어 대고 말년들은 한탄을 수없이 내뱉었다. 트럭은 컴컴한 암흑 속에 잠기고 있다.

소대장은 우리에게 침착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소대장조차도,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은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순간 잠들었고, 곧 있으면 다른 애들이 날 깨우겠지. 이상한 꿈같은 것은 여러 번 꾸었잖아? 어디선가 훌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뭐라고 웅얼거리며, 긴장한 체 있는 소대장은 그만하라고 했지만,

긴장한 소리로 그래 봐야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훌적거리는 병사는 나와 별다른 인연이 없던 양반이었다. 그에 반해 권민수는 소리 없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차량은 어느샌가 멈추었다. 여전히 병사들은 구시렁거렸다. 트럭이 멈춘 도로에는 수많은 병사가 행군하고 있었다. 요란히 발을 구르고 있었다. 병사들이 향하는 곳에는 섬광탄이 여기저기서 날아오르고 있었고, 포성과 총성이 들려왔다.

전장이 다가왔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섬광탄을 빛을 쏘았지만, 여전히 그림자는 진하게 남아있다. 사방에서 불빛이 사정없이 따귀를 갈기어댔다. 불그스름한 빛이 사방에서 요란히 터졌다.

머리가 멍해진다. 모든 것이 이유 없이 느려진다. 하얀색에 맞은 것 같다. 열심히 달리고 그랬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역시나 권민수의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서 같이 달리고 있던 놈이 사라졌다.

“몰라, 씨발!” 소대장은 목소리로 포성과 맞서 싸웠다.

의미는 없었다. 스쳐 가는 소리 사이에 있는, 참호에 무사히 들어갔다. 조그만 모래알은 들썩거리며 흔들렸다. 차량에 있을 때 훌쩍거리던 병사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도 여전히 북한군 병사들은 돌격을 감행했다. 머릿속으로는 씨발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내가 씨발로 싸우는 것 같았다. 광음과 함께 포탄이 떨어졌다. 흙이 눈에 박힌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포격으로 생긴 구덩이가 어둠과 주황, 하양으로 맹렬히 타오르는 듯하다. 평소에도 짜증을 많이 내던 분대장-이제 곧 말년인 연 병장은 고함을 뱉었다.

“전진해 전진, 구덩이로 숨어서”

겨우겨우 알아들었다. 나는 잽싸게 튀어서 구덩이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임 상병이 있었다.

“군 생활 편하게 하기 힘들어” 총열을 갈아 끼우며 말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돕지 않고” 고작 몇 달 가지고 짬 많은 티를 냈다. 당황함이 침착함 사이로 흐른다. 나는 옆에서 탄띠를 잡고 쏘는 것을 도왔다. 탄약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알게 뭐람. 이질적인 쇳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전차 기는 소리다.

“상병님, 전차가 있습니다.”

“적 전차?”,“K2요.”,“알겠다.”

전차가 구덩이 옆을 지나자 우리는 전차 뒤로 들어갔다. 우리까지 포함해 4명이 있었다.

총탄과 흙먼지를 튕겨내던 전차는 우렁찬 화염을 뿜었다.

저 멀리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탄약수 없어?” 임 상병이 말했다. 사실 질문보다는 포구 화염에 가까웠지만,

“개념을 어디에 팔아먹은 거야!” 그 중 한 명이 말했다. 신경질적이다. 연 병장이다.

다른 한명은 뚝심이 있다고 해야 하는 지, 띨띨이라고 해야 건지 모르겠다.

혼자서 중얼거렸다. 권민수였다. “그만 중얼거려, 시끄러!” 연 병장이었다.

우리는 전차를 따라서 적 참호에 도달하고 있다.

북한군은 뭐라 뭐라 욕을 하고 있다. 소총을 열심히 쏘아 대고 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여전히 철조망을 으깨고 있다. 우리는 전차가 으깨버린 곳을 따라 진격을 했다.

“간나 새끼들” 오른쪽에서 군바리 두세 명이 기어 나오자,

“버러지 같은 놈들”연 병장은 대꾸하며 총을 쏘았다.

여기저기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 왔다. 불은 시체를 비추며 자라났다.

“피해!” 권민수였다. 고개를 숙였다. 임 상병과 나도 덩달아서 그랬다. 전차 왼쪽 측면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권민수는 울먹거렸다. 임 상병은 몸을 팔꿈치와 무릎으로 지탱하고 있다. 위를 요란히 비워내고 있다. 내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느껴졌다. 전차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포탑을 돌렸다.

좀 더 침착했다면 로켓포를 쏜 북한군의 얼굴을 보고 싶겠지만 오로지 주마등만 흘러갔다.

그런데 연 병장이 안 보인다. 뒤를 돌려보면 돌격하는 아군만 보였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불길을 통과하고 있었다. 전차는 무심한 듯 돌격을 감행했다. 적의 참호가 전차 뒤로 나오자 “돌격!”임 상병은 외쳤다. 열심히 만든 우렁참을 자랑하듯,

일어나 발작과 가깝게 총알을 퍼부었다.

총구 화염에서 나오는 빛은 그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글썽거리는 눈을 하고 손을 들었다.

차량을 탔던 인원 중 30명 중 12명, 그 중에는 훌쩍거리던 이름 모를 병사, 로스쿨 들어간다고 고함치며 공부를 했던 연제훈 병장, 우연히 만나 얘기를 하다가 고향이 같은 걸 알고 친구가 된 임중한 상병, 그렇게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매장되었다. 참호와 참호를 사이를 두며 돌격과 매복을 반복하던 전투는 동튼 다음에 끝났다.

그렇게 우리들은 지옥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