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무려 약 십만 원정도 돈을 내고,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나는 이야기를 했지만, 저 양반을 돈 떼먹을 생각뿐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 저 양반까지 합치면 한 3명 정도를 만났다. 4년 전부터, 그러나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전역하고 나서 한 번도 편안을 느낀 적이 없다. 정신과의도 나 같은 부류에 많이 지친 것 같다.
조용히 한숨을 뱉으면서 처방을 주었다. 변한 것은 없다. 4년 전부터 말이다. 늘 같은 항우울제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좀 처진 움직임으로 문을 열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이를 알면 어떻게 생각을 할까? 내가 개인적으로 용돈을 아껴가며 병원비를 내고 있다. 지잡대 출신에 백수에 거기에 병신까지 추가되는 거니 참으로 자랑스러워하겠지,
아버지가 이를 알면 방문 앞으로 와서 고함을 지르며 잔소리를 하겠지.
아버지 마음에 대못을 박고 싶어 환장했냐고, 그렇게도 병신이 되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군대를 가고 나면 철이 들어서 열심히 살 줄 알았는데 왜 이리 한심하게 구냐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겠지. 그저 시계처럼 ‘네, 네’를 반복하며 고개를 숙인 체, 제풀에 지쳐 떨어지기를 기다리겠지.
방위 출신이 뭘 알겠어. 그것 해야. ‘배달의 기수’나 ‘돌아오지 해병’ 같은 거나 보며 전쟁에 대해 안다고 잘난 척을 떨겠지. 우리 세대가 나무껍질을 삶아서 먹던 때를 모르는 것처럼 말이야.
제대한 날, 집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자랑할 게 그것뿐이어서 그랬을까?
초라하지만 정성을 많이 들인 잔치였다. 주변에 살던 친인척들이, 금방 올 수 있던 사람들은 다 모였다. 나는 군복을 벗을 틈도 없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웃음이 피었다. 자랑할 만한 것이 생겨서였을까? 드디어 삼대독자에게? 아버지는 친척이 올 때마다 현관문 앞으로 불러서 훈장을 자랑했다.
“이 훈장, 아무나 받는 게 아니야. 그 유명한 평양 공성전에 참전한 병사들 중에서 제일 씩씩하고 용맹한 용사들에게 대통령이 주는 거야. 태극 훈장과 따위와 비교할 게 안 돼.” 나보다 아버지가 더 신났다. 나는 좀 당황스러워했다. 사실 내가 받은 훈장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기는 했지만, 사실 수여식도 대통령이 직접 와서 한 것이 아닌 중대장이 와서 매단 것이기 때문이다. 설명을 듣고 난 친척들은 놀란 척을 열심히 했다. 나는 제대로 무언가를 먹지도 못했고 친척들과 어머니만 신나게 먹었다. 이 잔치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인척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잔치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불판에는 삼겹살이 올라가고 술잔은 채워지고 비워졌다. 모두가 신변잡기를 하며 이야기를 했다. 가끔 식에 무공 담을 들려달라는 요청이 왔지만, 나는 웃으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겼다. 아버지는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반복될수록 점점 친척들의 얼굴에는 ‘뭐지?’ 하는 생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 준우야. 왜 이야기를 안 해? 응?”
물어뜯기 시작한 것은 이모부였다. 정치에 쓸모없을 정도로 관심을 지닌 그는 나에게 치근덕대기 시작했다.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말이죠...”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모부는 인터넷 정치 동호회에 나를 전시하고 싶어 했다.
“뭐, 생각할 게 그렇게 많아. 대충 말해. 너 원래 말 못 하잖아.”
“그래도, 좀 생각을 해야... 되지 않겠어요?”
“대학도 쓰레기 같은 데를 나온 주제에, 그 갓 가진 자랑거리도 제대로 소계를 못 해.”
무언가가 목구멍을 넘어오고 있었다. 참자. 참자.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거야. 사람이 좀 화가 나면 그렇잖아. 안 그래?
“역시 찌질이가 뭘 알겠어.” 이모부가 말했다.
“이모부, 제가 나중에...”
“나중이 어디 있어! 애국하는 데. 너 빨갱이지?” 이모부는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이모부는 어휘력이 상당히 부족한 사람이었다.
“빨갱이도 아니고 왜 그래?, 애국자라면 빨갱이 쳐 죽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응? 자랑거리도 그 정도밖에 없는 주제에”
나는 그저 분을 삼키고 있었다.
모두가 말리고 있었지만, 이모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멈추지 않고 나를 밀어 붙였다.
급기야는 이 빨갱이야, 매국노 새끼, 비겁한 새끼까지 나왔다.
뭘 그렇게 듣고 싶은 건가? 빨갱이 쳐 죽이는 이야기를 그런 것은 반공물에서 신나게 나오는 건데, 토치카에 수류탄을 던져 대대를 섬멸하고 그런 이야기?
이제 모두 지친 것 같았다.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거기에 고무됬는 지, 이모부는 신나서 욕을 했다. 뭐가 그렇게 화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지칠 때까지 참으려 했다.
그 말이 귓속에 들리기 전까지 "너, 군대 간 척하는 저지? 맞지?"
그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건 반사 작용을 한 것 같았다.
이모부는 나에게 깔린 채, 얼굴이 피와 멍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눈물과 가쁜 숨이 얼굴을 통해 나왔다. 그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모와 고모, 외삼촌 등등, 눈빛이 마치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술자리가 시작하자, 사촌 누나와 함께 나간 사촌 동생은 현관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사촌 누나는 동생을 위로하기 바빴다. 깨진 초록색과 갈색, 흘러가는 투명과 노랑...
구석에서 게임을 하던 동생은 두려운 눈으로, 처음으로 입을 움직였다.
"왜, 그렇게 변한 거야?" 울먹이며 찌그린 채로 말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덤덤히 평범한 일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대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변했다. 포탄과 포탄을 주고받지 않는다. 우리들은 수풀과 언덕에 풀을 밟을 뿐이다. 드넓은 북녘을 행해서,
모두 산개 대형으로 총을 든 체 말이다. 전쟁은 빠르게 바꾸었다.
서로서로 농담도 주고받지 않았다. 괭한 눈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분대장이 지시가 떨어지면 우리는 고개를 숙일 준비를 했다.
풀을 밟는 촉감도 콧속을 파고드는 공기도... 총성마저도... 모든 것이 꿈인 것 같다.
무척 이질적이고 그런 감각만이 우리를 지배했다. 풀잎은 무력하지만 억셌다.
하늘은 잿빛을 내뿜고 있다. 어디선가 경쾌한 총성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신경질적으로 총알을 쏟아 냈다. 반장이 전에는 눈에 보이는 적만 쏘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군이 있는 곳만을 피해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윤재운 일병이 쏜 유탄이 일으키는 가벼운 폭발음이 끝나자, 총성이 들렸던 곳으로 뛰어갔다.
총성이 들렸던 곳에는 앳된 소녀로 추정되는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와 무척 낡아 보이는 총만 있었다. 몇몇은 털털거리며 웃었다. 나는 누워있는 한 놈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민수 이 새끼, 총 든 미소녀 좋아하던 놈이... 그렇게 죽였어." 고장 난 엔진 같던 웃음은 점점 커졌다.
하지만 전혀 신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한 지 여섯 달이 지났다. 분대 정도 되는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바지 지퍼를 대다수가 열고 있었다.
날카로운 울먹거림이 꾸물거렸다. 하지만 병사들이 헐떡거리는 웃음이 이를 덮는다. 중대장은 막기 위해서 헌병대에서 엄중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병사 중에는 헌병도 있었다. 참 웃기게도,
그들은 행동대장인 병사가 말한다. 조용했지만 고함치는 듯이,
“야, 이 빨갱이 년아!” 늘 같은 시작을 했다.
“니 년 때문에 서울이 불바다로 변했어. 알어?” 하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우물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뭐가 즐거운 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들은 그랬다.
쓸모없는 일장 연설이 무슨 종교의 예식처럼 진행되었다. 전혀 경건하지는 않았다.
행동 대장이 말이 끝나자, 울먹거리던 목소리는 더욱 버둥거렸다. 병사들은 버둥거릴수록 힘을 주었다.
“가만히 있어! 있으란 말이야!” 꾸물거리던 소리는 점점 기괴하게 변해갔다. 바셀린을 바른 주먹으로 내려졌지만, 울음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경쾌한 총성이 울리는 것으로 멈추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플래시몹이라도 벌인 것처럼 사라졌다. 그들이 있었던 곳에는 갈색 군복을 입은 여성이 있다. 온몸이 누더기처럼 해저 있고, 축축했다.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다.
멍하니 보던 나는 이내 자리를 떠났다.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사람이었는지도,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깐. 나중에나 중요하지.
면접에서 떨어지고 집에 가는 중이다.
오후의 지하철은 아침의 지하철과 달랐다.
항상 새것처럼 보이는 양복을 입고 있다. 건너편에는 태극기와 군복으로 치장한 사내가 있었고, 내 맞은편 옆자리에는 처자가 있었다. 각각 스마트폰에 붙잡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다.
처자는 옆구리에 시위 전단을 끼고 있다. 사내도 마찬가지다.
처자는 이런 내용이다.
‘강간하는 한남에게는 세금이 아깝다!’
사내는 이런 내용이다.
‘빈둥거린 보지 말고, 우리에게’
나는 이를 보며 다음에는 인쇄소로 면접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하철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시때때로 변하였고, 철로와 바퀴가 부딪치는 소리는 유동적이었다. 안내 방송이 시작했다.
"아름다운 조국은 누가 지키나요? 우리들은 자식들은 누가 지키나요? 평화는 누가 지키나요? 바로 군인 아저씨들이 지킵니다."
처자는 터지는 비웃음을 참지를 못했고, 사내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질을 참지 못했다.
방송은 곧 다음 역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렸고 사내는 처자 앞으로 다가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등 뒤로 창밖으로 사내와 처자가 옥신각신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그 사내는 무척 젊었지만 주름이 쭈글쭈글 했다.
나는 가만히 벤치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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