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된 지, 이제 일곱 달이 지났다. ###중대는 북한의 어느 한 조용한 마을에 있다.
부드럽게 굴곡진 언덕은 눈으로 덮어져 있다.
아이들은 저 멀리서 포댓자루 썰매를 타며 누가 빨리 달리는지를 대결하고 있고, 논밭에는 하얀색에 검은색이 섞인 차가운 대리석이 놓여 있었다. 거기서도 아이들은 양팔을 흔들며 열심히 얼음 썰매를 타고 있거나, 쭈그려 않아 팽이를 치고 그랬다.
언덕과 눈밭 사이에는 마을이 있었다. 건물은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투박한 콘크리트 특유의 구수하면서 퀴퀴한 냄새가 멀리에서도 보일 것 같았다.
시내에 있는 사람들은 지쳐 보였다. 많이,
어린이도 늙은이의 얼굴을 하고 곳이다. 될 때로 되라가 밴 얼굴, 잘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런 것이 얼굴에서 배어들었다.
우리는 총기를 차고 정해진 루트를 돌고 돌았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임무를 맡았을 때는 깃발을 흔들며 남조선 만세를 외치던 노인도, 일을 맡기던 부인도, 초콜릿을 달라며 쫓아오는 아이가 있었다.
그들이 보이면 우리는 같이 만세를 외치거나, 허드렛일을 도우며 부인이 준 미숫가루를 마시거나, 초콜릿을 -규정대로- 차에 타고 있으면 내려서 아이 앞에서 두 손으로 주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없다.
군화 밑장에 모래알은 깨지고 부스러졌다. 그렇게 부스러진 모래알은 공기 속을 흩날리다가 얼룩덜룩한 군복의 일부분이 된다. 옆에서 나와 순찰을 돌고 있는 병사는 신병이다. 그러나 나이는 3살 정도 많았다. 논산에서 훈련이 끝나자마자 여기로 배속됐다고 한다. 아마도 시골 출신인 것 같았다. 자꾸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자꾸 회상했다.
“제가 5살 때는 친구들과 모여서 눈썰매를 타고 그랬습니다. 한바탕하느라 몸이 젖는 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만 보면 피하는 슬금슬금 피하는 아이들에게 뭐 어쩌겠다는 말인가? 썰매를 좀 더 빠르게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인가?
“아마도 이 일병님은 그런 추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재수 없는 놈, 그게 뭐가 잘났다고,
“정말 신났을 것 같네요.” 아마도 이러는 나를 비웃고 있겠지. 여기에는 NGO도 있고 선교사도 있어 잘못했다가는 내리갈굼 당할지 몰라. 요즘은 80년대가 아니잖아.
나는 그저 터벅터벅 걸었다.
장마당에 도착했다. 여러 뭐로 부실해 보였지만 꽤 활기가 돌았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한산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밀반출된 것 같은 전투 식량을 두고 흥정하는 아줌마들도 있고 열심히 두부밥을 파는 여린 청년도 있었다.
“저, 이병님?” 옆에 있던 일병이 물었다.
“왜죠?”, “두부밥 좀 사가면 안 됩니까? 분대원들과 같이 먹고 싶습니다.”
“최 일병은 훈련할 때, 이야기 못 들었어요?”
“들었지만 그래도...”
“규정은 규정이에요.”
최 일병은 약간 토라졌다. 저 나이에 무슨 짓거린지,
그래도 한동안은 입을 다물었다. 나이도 적은 놈이 냉정한 척이나 한다고 욕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애들과 썰매를 같이 타며 놀고 싶고 상인에게 두부밥을 사 먹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저 터벅터벅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만 보면 두려운 표정을 했고 아이들은 골목으로 사라졌고 어른들은 차를 보듯, 외벽에 붙은 채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특히 여편네들은 젖을 먹이던 아기를 품속으로 숨기려 했다.
그렇게 한 동안 걸었다. 장마당의 모퉁이였다. 최 일병은 기분이 상했는지 거리를 멀찍이 좀 두고 걷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귀찮았다. 거의 막바지기도 하고,
병영으로 들어가면 다른 애와 교대를 하고 편하게 쉬는 거야.
어디선가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김정은 동지 만세!” 논두렁에서 무언가가 날라 왔다. 최 일병 발끝에 닿았다.
“이게 뭐...” 지축을 울리는 소리. 최 일병이 있던 자리에는 피투성이가 있었다.
“이준우 이병님...” 붉게,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동안 고개를 숙인 체 벌벌 떨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다음은 총성인가?
다행히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쳤다.
“위급상황. 위급상황, 부상자 발생, 부상자 발생.” 빠르고 흥분한 목소리였다. 나는 거기서 좀 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과 같았다.
“뭐에요...”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도 가까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어디인가?”
“초소 앞 직진으로 약 300m 안에 있다. 수류탄에 당했다.”
“지혈을 계속하라. 지혈을 계속하라.” 무전기에서 답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해야지 어디부터 해야 하는 거야
“미제 앞잡이들 꼴좋다.” 옆에 있던 학생이 우릴 비웃었다.
어디서 지혈을 해야 하는 지 생각을 했다.
“살려주세요...”나도 그러고 싶다.
“수류탄에 맥없이 당하니 너무 좋다. 그래.”
관심을 원하는 것인지 그 애는 계속 비웃었다.
나는 파편이 박힌 채로 죽어가는 최 이병을 뒤로 한 체. 아이에게 다가갔다.
학생은 웃으면서 “ 한번 죽여 봐. 죽여 봐.” 나는 K2 소총을 안전에서 연사로 바꿨다.
“이 미제 앞잡이야. 나는 장군님이 총포탄이다. 죽음을 각오한다.”
표정은 죽음을 각오한다고 보다는 비웃는 투였다.
나는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 총을 막 그에게 겨눌 때였다.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울상을 지었다.
뒤를 보니 k-151이 오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소위는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나에게 큰 소리를 못 하니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빨리 쓰러진 최 일병을 차에 안에 실었다.
행보관실, 컨테이너여서 그런지 초라하다. 그러나 필요한 것 다 있다.
나는 행보관 앞에 서 있다.
“제정신인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어디서 민간인을 갖다 대고 말이야. 그것도 어린아이를...”
참았던 회를 폭발시켰다. “죽이려고 해!” 얼마나 크게 고함을 쳤는지, 머리가 멍했다. 화조차도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체, 서 있었을 뿐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좀만 참으면 된다.
“우리가 사람을 죽이려고 왔나?”
답변을 기다린다는 듯이 뜸을 드리다가,
“통일하려고 왔나?” 여전히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묵묵히 서 있었다. 그 학생이 무죄 혐의로 풀려날 줄 몰랐다.
“어, 왜 답을 안 해? 말 못해?” 행보관이 말했다.
“통일을 하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왜 그런 거야?”
“너무 흥분한 상황이어서 그랬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에 깔린 눈이 몇인 줄 알아?”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거 잘못했다간 큰일이 난단 말이야.”
마치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내 처지에 공감하고 있다는 표시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한동안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나는 행보관실을 나왔다.
비가 쏟아져 내린다. 방수포를 두드린다. 편하게 잠자기는 그른 것 같다.
최 이병은 결국 죽고 말았다. 사람들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님은 그러지 않겠지.
반짝이는 별빛은 물방울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전역을 하고 오랜만에 서울로 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거리에는 믹서트럭이 도로 위를 달렸다. 시꺼먼 건물들은 비계와 초록색 망을 두르고 있었다.
여전히 빠끼를 돌리는 사람이 있었고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 거치게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버스.
고작 30km 떨어져 있는 데, 세상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놀라웠다.
익숙하고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크게 숨을 쉬며 평온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전쟁과는 상관이 없는 거야. 좆같은 일은 더 이상은 없단 말이야.
운동화로 보도블록에 두드리며 꿈에 잠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는 가지 말고 보챘지만, 아랑 곧 하지 않았다. 한 10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경찰들은 열을 지은 체, 그들로 부터 그렇게 가깝지 않은 곳에서 모여 있었다.
조그만 단상위에서는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고 있고 전단과 플랜 카드를 든 사람들은 구호에 맞췄다.
“동포에 대한 침략행위를 멈추어라!” “앞잡이는 물러나라!”
자리에 앉은 채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다양했다. 엣 되 보이는 대학생, 피부가 약간 탄 중년, 군복을 입은 청년 등등.
멍하니 서있는 내가 거기에 관심이 있어 보여서 그랬던지, 어깨띠를 두른 아줌마가 A4용지만한 코팅된 전단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진이 있었다.
사람을 총살하는 우드 랜드를 입은 사내, 헐벗은 체 내팽개친 여인, 시체를 부여잡고 무표정한 아이.
그 전단을 한 동안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거리를 가다가 갑자기 주저 않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
그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어느 한 사람이 어깨에 손을 올려 잡은 채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지 않아 보인 것 같았다.
이제 시작된 지 일 년이 지나간다. 두 달만 있으면,
트럭은 덜컹거렸다. 모두들 가만히 앉았다. 익숙했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신병들도 많이 들어 왔다. 똥을 씹거나 시한부 같은 얼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곽 이병은 덜컹거리는 소리에 맞추어서 조정간을 한손으로 계속 움직였다. 운도 없지. 나는 윤재운 병장과 내기를 했다. 이번 전투에서 곽 이병이 살아남을까? 최 이병이 살아남을까? 나는 최 이병에, 윤 병장은 곽 이병에 걸었다. 50000원 내기였다. 행보관 귀에 들어가면 어떨지 모르겠다. 욕을 할까? 웃으면서 넘어갈까? 둘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관심병사 기질이 있던 최 이병은 조용하다. 뭐 시키면 지랄하며 발광하던 그도, 똥죽이 맛없다며 버리던 그도, 항상 시끄럽게 웅얼거리며 그랬던 그도, 혼이 나간 상태에 있다. 나는 걱정이 좀 되었다. 말 한번 잘못했다고 이런 짓이라니...
윤 병장은 미소를 지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방 상병이 물었다.
“괜찮아?” 조용히 말했다.
어떤 의미로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답했다. “문재 없어. 그럴 거야.”
K-511로 이루어진 행렬은 흙길로 이어졌다. 전쟁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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