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은 케렌스키 공세 당시 동부전선의 위치입니다. 러시아는 러시아령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남부전선에서 케렌스키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공세는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이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임시정부와 케렌스키는 공세를 통해 사기를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러시아군은 일명 민주화를 통해 작살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좌측은 10월 혁명 이후, 협정이 지연되면서 독일군이 공세를 감행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벨로루시 일부, 우크라이나 거의 전부를 상실하고, 이를 인정하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이루어졌을때의 영토상실분입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상실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뭐, 그럴수도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수백년간 러시아가 통치하고, 여전히 러시아 내에 다수의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는건 문제가 없진 않겠습니다만...
하지만 그 이후의 영토상실은 순전히 볼셰비키의 군대해산 때문이었습니다. 기존 러시아군을 대책없이 해산시킴으로서 전선이 붕괴했고, 독일군은 큰 문제 없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단지 10월 혁명 이전의 민주화란 미명하에 막장이 된 러시아군만 존재했어도 이런 사태를 맞이하진 않았겠지만, 볼셰비키 입장에서는 독일군의 위협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군대가 없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란 것도 군사경험이 없는 볼셰비키 입장에서는 판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를 상실했으며, 기존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를 모스크바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곡창이자 잉여곡물의 주 공급처였던 우크라이나를 병신같은 결정으로 날려먹게 된 건 큰 타격이었고, 특히 이것은 역으로 당시 소수로 쫗겨다니는 중이었던 데니킨과 코르닐로프의 백군에게는 희소식이었고, 돈 코사크가 봉기해서 독일군과 협력 단숨에 남러시아에서 백군은 대규모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전쟁을 지속했던 것도 이해가 안가는건 아닌게, 이미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선언을 한 상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국의 승리가 확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문제는 사회혁명당과 볼셰비키가 러시아군에 만연시킨 민주화의 암덩이가 러시아군을 병신을 만들어놓은 상태인데다가, 이걸 통제하고 장교단과의 타협을 적절히 조정해야할 전쟁상, 그리고 이후에는 정부수반인 케렌스키는 이런 상황을 방조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군의 민주화, 그리고 이걸 반대하는 장교단의 숙청이 군을 강화시켜줄 거라 믿었습니다.
게다가 볼셰비키는 후방에서 반전여론을 부추기고 있었고, 후방에 대기중인 한번도 참전하지 않은 예비병력이나 보충병들은 시위와 민주화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전선이동을 거부하고 탈영하고, 항명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일명 볼셰비키의 무력인 적위대들은 케렌스키가 해방시킨 일명 케렌스키의 새끼새들, 정치범과 함께 풀려난 수만명의 범범죄자들이 포함되었고, 위의 항명한 병사들이나 적위대는 곳곳의 지방정부에서 일명 병사 소비에트를 구성하고 지방정부를 장악하거나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10월 혁명은 지방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만, 독일의 전선은 막장이고, 후방에서는 적위대가 여기저기서 체포, 처형, 약탈도 즐겁게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전쟁지속은 납득할만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볼셰비키도 안믿지만 반동으로 보이는 장교집단도 안믿는 사회혁명당과 임시정부, 그리고 볼셰비키는 합작해서 군대를 막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임시정부와 케렌스키는 전쟁을 할거면 군대를 건드리지 말고, 군대를 건드릴거면 전쟁을 하질 말아야 했지만 어정쩡하게 했다가 망했습니다.
볼셰비키의 휴전협상은 초반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군대를 해산시키고 장교들을 몽땅 해고하고 탄압하는 병신짓거리로 간단히 국토를 대량 추가 상실한 것 빼도박도 못할 병신짓이고, 거기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외에도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더 밀접하고 중요한 지역들을 모두 넘겨준 것은 확실하게 매국노짓이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건 그러고서 나중에 외세의 침입에 부역하는 백군 어쩌고 한 것을 생각하면 파렴치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회혁명당의 임시정부와,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모두, 나름의 명분은 있겠지만, 말아먹은 것은 차르나 차르의 내각보다 훨씬 더 무능하면서 용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 독일이 서부전선에 집중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지, 만약 반대였다면 독일은 간단히 유럽방면의 러시아를 모두 장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이르는 기간동안 사회혁명당과 볼셰비키 둘 다 이전의 러시아 정부보다 단 하나도 유능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단지 승자를 가른 것은 사회혁명당은 너무 나이브하고 너무 무능해서 실패한 반면에, 볼셰비키는 좀 더 냉혹하고, 악랄하면서, 실패를 한 이후 수정 보완할 정도의 유연성은 보유했다는 차이였습니다.
빨갱이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독일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고 혁명 터지면 라인강까지 우리 땅이니까 상관없다 생각한건가
ㄴㄴ 그 정도 생각이라도 있었으면 빨갱이들이 독일에 붙어서 차르를 배신했다는 명목으로 연합군이 아르항겔스크를 장악하는 사건은 없었을걸... 그리고 실제로도 독일이 못 버틴 다음에도 독일 따까리였던 폴란드가 독립해서 모스크바까지 밀고들아간 꼬라지 보면 빨갱이들은 그냥 병신임
ㄴㄴ실제로 당시 볼셰비키들이 독일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건 사실임 그래서 그런 기대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반영 안 되었다고도 할 수 없음. 이 조약 때문에 볼셰비키들이 각계각층에서 비난 받은 건 사실인데 백군이 간섭군이라는 더 큰 걸 터뜨리면서 덮힘.
그 누구 회고록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고... 여튼 책이었는데 주전파와 주화파가 계속 대립하면서 주전파가 '협상 조건이 너무 가혹하다, 최소한 싸워서 어느 정도의 한도를 마련해야한다 '하니까 주화파가 '그럼 당장 독일군이 기차에 기관총 하나 싣고 와서 지방 지도자 하나만 잡아가도 아무것도 못하는 판국에 어떻게 싸울 거냐'고 서로 막 투닥대는 이야기가 있었읍니다. 문득 생각나네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도 그렇고 조금뒤 폴란드전도 그렇고 소비에트의 군에 대한 삽질 엄청남
글쎄 너무 당시 러시아 내부상황의 혼란을 무시하는 해석같은데 그리 제정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혁명이 터졌겠나 망할 만한 정권은 망할 만해서 망한 거지 혁명 이후 러시아군 약화에는 혁명세력도 한몫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당시 러시아 자체의 상황이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무리인 상황이었지 않나?
1. 임시정부의 전쟁지속결정에는 나름 명분이 있다. 하지만 전쟁지속을 할거면 군대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군대를 건드릴거면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건 전쟁지속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 볼셰비키가 협상을 한건 나름의 명분이 있다. 근데 협상 완료 전에 군대 해산한 덕에 주요 국토를 대거 상실한건 순수하게 볼셰비키의 병신짓이다. 이건 전쟁을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말은 제정 러시아의 자업자득적 측면을 무시하고 너무 임시정부나 볼셰비키 같은 혁명세력한테 책임을 돌리는 것 아니냐 이 말
니콜라이 2세가 무능한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케렌스키를 비롯한 사회혁명당이나 볼셰비키보다 심각하냐라고 하면, 적어도 통치능력에서 더 떨어진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확실한건 니콜라이 2세 시대의 내각은 케렌스키나 볼셰비키보다는 압도적으로 우수했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는 농업상이었던 크리보셰인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크리보셰인이 브랑겔의 요청에 의해 귀국해서 크리미아 일대에서 수행한 토지개혁은 한국의 농지개혁과 유사한 부분이 있고,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보수내각이 생각보다 그다지 무능하거나 병신같은게 아니란걸 알려줍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소련에 대해 취하는 입장은 이와 같다
https://m.dcinside.com/board/war/560972
참고
그게 재평가될 수 있는 요소는 되겠지만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다고 본다 너무 지엽적인 면만 보면 왜 망했는지 원인을 무시하는 처사가 나오게 돼
미국 참전이라는 희망적인 요소가 생겨도 당장 오늘내일 하는 인민들에게 여러분 조금만 더 참으면 승리가 다가옵니다!라는 말은 안 들렸을 거 같은데. 그리고 볼셰비키가 그렇게 독일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어 땅을 넘긴 것도 미국 참전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서 독일 패망해서 되찾을 수 있을 거니까 지금 당장은 휴전하고 숨 돌리자라는셈법이 작용한 걸로도 볼 수 있지 않나
이 글 보면 제정러시아가 병신이 아니라는것은 아니고 병신같은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이후 그 자리 꿰찬 볼세비키나 사회혁명당은 더 병신같았다 이거같은데 그리고 위에 나오잖아 군대 개혁하려면 전쟁을 하지말던가 전쟁을 계속할거면 군대 건들지 말던가 둘중 하나만 해야하는데 어정쩡하게 하다 둘다 망했다고
반대로 러시아 내전기는 1차대전시기보다 훨씬 더 심한 식량위기와 전염병, 실업,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탄압, 체카에 의한 체포와 처형이 난무했습니다만 그 이전에 대해서는 평가가 굉장히 가혹한데 볼셰비키에게는 더 호의적으로 해석해줄 요소가 있을까요? 앞의 기준으로 보면 볼셰비키는 내전의 중지를 위해 혁명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타협적으로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외세에 굴복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나오기에는 그 이전에 독일에게 넘겨준 것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볼셰비키의 결정은 오로지 혁명의 성공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만, 심지어 민중의 피, 생명, 행복보다도 말이죠.
볼셰비키나 임정이나 과오가 없는 건 아닌데 병신이라는 추상적인 가치판단으로 누가 더 병신이나 덜 병신이네 하는 것은 결국 과거 정권이 더 나았다로 귀결된 가능성이 있어서 말이지. 원래 혁명 직후 혼란기에는 국론이 분열되니 이전 정권에 비해 국력이 약해지기 마련임. 이는 프랑스 혁명에서도 나타난 현상이었고.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 정부를 이전 프랑스 절대왕정
보다 병신이라고 단정짓지는 아니하지 않나?
lemiel/뭐 니 관점이 더 그리 공고하다면 내가 더 할말은 없다만 볼셰비키 집권 후 소련 역사동안 성취들을 보면 제정 러시아보다 더 낮게 평가할 요소는 없어보이는데 너무 단기간적인 사건들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1905년부터 1913년까지 러시아는 비트와 스톨리핀을 비롯한 내각 주도로 농업, 산업 측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스탈린이 집산화를 통해 억지로 산업화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의 전근대적인 농업공동체를 평화적으로 사적 소유 농민으로 변경시키기 위해 기여했고, 그 이전부터 러시아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니콜라이 2세 통치시기에 교육지출도 6배 이상 증가하고, 1908년 초등의무교육 제정법이 채택되어 8~11세까지 1915년에 51%가 초등교육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대학생의 37%가 여학생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었죠. 대학생의 70%가 교육비지출 없이 기업가들의 자금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스톨리핀은 20년만 안정적인 시간이 주어지면 러시아가 몰라보게 변할 거라고 주장했었죠.
그 제정 러시아가 일궜다는 산업화가 부피만 큰 풍선이었다는 건 이미 애저녁에 Wayfarer였나 하는 고닉이 설명했었을 텐데
그 전에 러일전쟁때 쪽박차고 피의 일요일 학살로 이미 민심은 다 떠났는데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뭔소용임... 그리고 그 개혁이란것도 실상 중부, 서부유럽 경쟁자들은 이전세기에 다한것들ㅇㅇ
러시아의 산업화 기반이 마련되려면, 가장 기본적인건 농업개혁입니다. 괜히 스탈린이 집산화한게 아닙니다. 먼저 러시아의 농업발달과 농민공동체, 자영농과 농지개혁의 과정들을 먼저 공부해야 이해하실수 있습니다.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1917년 혁명까지는 12년의 시간이 있고, 이 기간 러시아가 놀고 있었던게 아닙니다. 러시아의 경제발전의 기반은 농업에 있고, 그 기반의 발전에 의거해서 산업화가 고도화되기 시작했던 시점입니다. 왜 서구유럽과 러시아의 차이가 발생했는지 관련 논문만 해도 엄청나게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길..
농업 잉여생산이 있어야 내수경제로 공산품 구매가 가능해지고, 농업에 기반한 노동력이 산업쪽으로 옮겨갈 동인도 마련되어야 하는 등 제반 요소들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러시아 농민공동체 오브리쉬나의 토지공유와 이로 인한 생산성 양상등에 대한 내용들, 그리고 스톨리핀이나 비트의 개혁과 관련된 내용은 공개된 연구들이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아 예예- 제정 루씨아가 그렇게 대-단했는데 왜 망했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볼셰비키 이 나쁜놈들!
1차대전 때문에 망했지 그럼
지금도 1머전때 끝까지만 버텼으면 하는 러시아인들 있다던데. - dc App
러시아 모든 군대의 해제에 동의하는 조약 아닌가요? 그래서 왠만한 사람은 서명도 안한거로 알고 있는데
걍 제정 러시아는 피의 일요일 이후 망한거나 다름없음. 오히려 2월 혁명 터질때까지 참아준 신민들이 대단한거지
러시아는 1905년 1차 혁명으로 두마가 만들어지고, 1차 대전 이전 시점까지 굉장히 많은 변화와 개혁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차르 전제정--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하는건 그냥 관심이 없어서라고 봅니다. 이건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저도 얼마 전까지 그랬거든요. 관심을 가지고 파고들다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단편적으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이면을 파보는 건 좋은데 요즘 핫한 이 모 교수처럼 그러다가 흑화하지는 말아야지. 단편적으로 생각해선 안 되는 건 맞는데 그러다가 반대쪽으로 가서 단편적으로 생각하게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이면을 파보는게 아닙니다. 이건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나와 있고, 많은 책들도 출판되어 있습니다. 아니, 피의 일요일 이후 러시아가 그냥 망했다고 하면 대체 10년동안 러시아는 망해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 기간이 러시아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간입니다. 현재 주요 러시아 국영 기업들도 해당 시기에 생겨난 기업들이에요.
아니;; 말이 안 통하네. 내가 이면을 파본다고 한 의미는 제정 러시아가 무능했다는 통념과 달리 재평가를 해보는 시도를 말한 거임. 니가 말하는 연구결과들이 그런 이면을 파보는 것들이고. 그런데 그런 이면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무작정 이 모 교수처럼 훼까닥 돌아버리면 안 된다고요;;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때 방데학살이나 여기저기서 반달리즘 터지고 학살 터지고 단두대 올리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서 대불동맹에 얻어터졌다고 대혁명의 의의를 부정하는사람은 없잖슴.. 설령 실패한 혁명들도 역사발전의 사건들로 인정받는뎁
그런 학살 없이 점진적으로 나아간 국가들도 많기 때문에 저는 폭력혁명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이긴 합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피의 일요일 때문에 러시아는 혁명했어야만 한다고 한다면, 볼셰비키는 학살, 테러, 기근, 정책실패등을 고려하면 바로 혁명일어나야 마땅한데도 이상하게 다들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고 보는데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역사가들도 그렇고 스페인내전에서 공화파가 학살한건 그럴수도 있고 피해자가 잘했으면 학살 안당했다고 하면서 프랑코 학살을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 하다고나 할까요., 이건 앤서니 비버..
점진적이라니?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난 각국의 수많은 비극, 소요사태, 혁명시도, 투쟁을 너무 저평가하는듯.
당대 러시아 인민들에게 피의 일요일은 민심을 잃을 만한 사건이었겠지만 볼셰비키의 학살, 적색테러, 정책상의 실책은 혁명을 일으킬 만큼은 와닿지 않았었겠지. 그건 당대 러시아 인민들의 생각이 그랬던 거지 니가 왜 얘들은 이랬는데 혁명 안 일으킴?하고 빼애액댈 건 아니라 본다. 적색테러 이런 걸 옹호하는 건 아니다만 적어도 볼셰비키가 정권 잡은 후 안정시켜 가면서 나름 성취를 이룬 부분도 있었으니 혁명이 안 일어난 거 아니겠으? 단편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면서 왜 이리 단편적으로 생각하시나
솔까 피지배층이 가만히 참고살면 귀족들이 노예를 풀어주겠음? 영주들이 농노를 풀어주겠음? 앙시앵 레짐의 귀족들이 지들 토지를 포기하겠음? 자본가들이 노조를 인정해주겠음?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수많은 권리들은 다 우리 인류의 조상들, 피지배층들이 폭력으로 투쟁해서 이뤄낸거임.
점ㅋㅋㅋㅋㅋㅋㅋㅋ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너 6월혁명은 어디따 갖다팔아먹고 머릿속에서 포맷했냐?
1860년대 윾럽 혁명들은 뭐 무혈혁명이었냐?ㅋㅋㅋㅋㅋㅋㅋ 웃고간다
고대 로마의 노예, 중세의 농노, 앙시앵 레짐 시기에 세리들에 저당잡힌 농민, 산업혁명기에 아동시절부터 중노동에 시달리던 빈곤한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폭력혁명에 극도록 부정적이라는거 자체가 엄청나게 문제있는 생각임.
혁명 이전 러시아 정부가 한 오판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볼셰비키가 자행한 폭력이나 학살, 기근, 정책실패 수준의 오판을 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1차 대전 개전 자체는 심각한 오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자국민 학살, 아사 수준까지의 식량 공출과 약탈, 군대 해산 수준의 오판을 저지르진 않았습니다. 혁명 이전 러시아 정부 자체도 단순히 귀족, 보수, 자본가의 사악한 연합이나 보수꼴통으로 구성된게 아닙니다. 이미 전쟁 이전 시점에서 러시아에서 귀족의 경제,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었고, 비트나 스톨리핀, 크리보셰인 같은 인물들은 국영지, 대지주들의 토지를 농민은행을 통해서 보다 많은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Nep 일명 신경제는 이를 모방한 수준에 불과했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왜 러시아 인민들은 안 알아줬을까
엘리트인 지식인, 자본가, 귀족들이 시키는데로 했으면 잘됬을텐데 무식한 농노, 노동자 새끼들이 선동당해서 일을 망쳤다는게 저 사람 주장인거지
대기근 같은 건 정책실패, 오판으로 볼 수 있겠지만 적색테러 같은 것은 지들 딴의 신념으로 한 거지 볼셰비키 입장에서는 그거 오판 아니었을 걸? 식량 공출은 그렇게 안 하면 도시 노동자들이 굶어죽을 판인데 농촌을 말려죽인 걸 옹호하는 건 아니다만 도시까지 굶기면 혁명으로 가뜩이나 혼란한 러시아 더 혼란해졌다 임마 제정 러시아가 개혁 노력을 한 걸 부정하는 건 아닌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인민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느리니까 혁명이 일어난 거지.
러시아 제정 말기를 귀족이 주도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1800년대부터 농업발전과정에서 러시아 귀족층의 토지점유율은 감소하고 경제에서의 영향력도 감소합니다. 농민층의 상공업 진출도 가속화되고 특히 모스크바의 성공한 기업가들은 다수가 농노출신이었습니다. 스톨리핀은 귀족출신이긴 하지만 귀족의 이익보다는 사회안정을 위해 농민의 부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보고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농민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적백내전에서 백군에 편을 든 사람들이 다 귀족출신이라거나 이렇지도 않습니다. 데니킨의 아버지는 농노출신이었고, 반면 브랑겔은 귀족출신이지만 토지개혁을 추진할 정도였죠.
니 말은 결국 나름 능력있는 제정 러시아 정부였는데 혁명놀음만 할줄 알지 정치할 줄 모르는 놈들이 정권 잡아 망쳤다는 말 아니냐? 근데 그 논리 비슷하게 소련 붕괴에도 적용 가능한 거 아냐? 쭉 다스려 온 기존 소련 정부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개혁가지 왜 옐친같은 새끼한테 나라가 넘어갔냐? 그러므로 소련>>>>>현 러시아 ㅇㅈ?
기본적으로 볼셰비키와 대립한 대표적인 우익 정당은 입헌민주당인데, 입헌민주당은 자유주의 정당이지 왕정주의 정당도 아닙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기업가가 그렇게 엄청 주도적인 곳이 되기엔 아직 농업기반 국가였구요. 그 시대의 많은 엘리트층들은 자유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인민주의에 대거 위치해 있었습니다만 행정경험이 별로 없는 사회혁명당이나 볼셰비키를 포함한 사회민주노동당이 기존 정치가들이나 관료에 비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만, 공산주의나 인민주의를 현실에 맞추는게 아니라 반대로 현실을 거기 맞추려다 보니 많은 오판이 발생했고, 그 피해가 엄청났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저 논리는 지금 중국 공산당에도 적용가능한 논리 아님? 중국인들은 민주주의 하겠답시고 폭력혁명따위 벌일 생각도 말고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 조금씩 바꿀수 있도록 노오력 하면 되겠넴? ㅋㅋㅋ
그래 우크라이나 대기근 같은 피해도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데 중공업과 우주과학, 군사기술, 6~70년대의 안정적 생활 같은 성취도 있었지. 왜 자꾸 단편적으로 보지말라면서 반대쪽에서 단편적으로 보려고 하시나?
지금 17년 혁명 전후 이야기 중이니까 그러는거지 우주개발 이야기를 왜 꺼내 시발 ㅋㅋㅋㅋ
흠 근데 피의일요일로 사망한 사람이 300명 이하인데 혁명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들게 하고, 천만명이 굶어죽은건 혁명할 마음이 와닫지 않았다구요? 그냥 차르체제에서의 사상의 자유가 더 보장된 반면 레닌이나 스탈린 체제가 가차없었던거 아닐까요.
적백내전의 사망자는 최대한 불리고 차르체제가 흘린 피는 1905년 혁명때 300명으로 퉁치는 거임?
애초에 혁명이라는 게 단순히 과오 몇개 있다고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체제의 모순이 쌓여야 발생하는 건데 왜 그리 제정 러시아가 망한 것에 투정을 부리시나? 그리고 차르 체제의 과오가 피의 일요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그쪽도 잘 아실텐데?
반정부 쪽에서 피의 일요일을 최대한 사상자를 주장하는 것도 4천명 정도로 알고 있는데, 적백내전 사상자가 아니라 러시아 기근 사망자만 400만명은 되고, 홀로모도르도 1000만명 단위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자는 비교할수가 없습니다. 차르 체제에서 민중을 대량학살하거나 대량아사시킬만한 정책실패 사례가 있으면 말씀좀 해주세요.
예를 들어 차르체제에서도 기아사태는 있었습니다. 일명 기아수출이라고 해서, 잉여곡물이 수출되는 동안, 빈농의 경우 임차료를 내는 과정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자급가능한 곡물이나 납세에 필요한 현금확보가 어려워 빚이 느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걸 주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볼셰비키 치하나 스탈린때처럼 대량아사가 터질 식량징발이 이루어진 경우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적백내전과 대기근 사망자를 최대치를 고르고 차르 체제하 사망자는 최대한 축소시키냐? 체리피킹보소
식량 징발로 농촌 아사자가 발생한 건 소련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거기에 집착하면서 차르체제를 추켜세우려 하십니까? 제정 러시아에 관해서는 숲을 보면서 소련에 관해서는 왜 나무만 보려하시는지요?
내가 참 궁금한 게 임시정부와 볼셰비키가 진정 선인가?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그런데도 러시아 제국이 왜 망할 수 밖에 없었을까?라는 의문은 왜 안 품어보냐
점진적, 무혈혁명의 사례가 뭐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다만ㅋㅋㅋㅋ 참 생각 순진하다는건 알고간다
순진한게 아니라 귀족, 영주, 대지주, 자본가같은 기득권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거겠지 ㅇㅇ
레닌 치하에서 수행된 곡물징발, 농민공동체가 알아서 수행한 무작위 토지분배나, 스탈린의 토지 집산화 정책으로 야기된 천만 단위의 아사사태보다는 비트나 스톨리핀이 진행한 농업은행과 타협을 통한 점진적 토지개혁이 더 훌륭한 개혁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볼셰비키가 진행한 폭력혁명보다는 젬스트보나 입헌민주당이 추구한 자유주의와 개혁방안이 러시아를 보다 안전하게 발전시켰을 거라고 봅니다.
결국 니 바램을 말하는 걸로 끝내는 거냐
1900년대에는 이미 러시아에서 귀족, 영주, 대지주의 토지점유율은 계속 감소하게 되고, 도시민이나 부농의 토지점유는 증가하는 편입니다. 이 시기에 빈농의 문제와 빈부격차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귀족의 착취때문이 아니라, 농민공동체의 문제점과 곡물수출과정에서의 토치의 임차 및 재임차(하청같이)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이 문제는 부르주아나 대지주의 착취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소련은 이걸 집산화로 억지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해체 시점까지 완전한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은거죠.
니 논리는 아무리 현실의 모순이 있어도 점진적으로 개혁하며 해결하지는 보수적 논리인데 그게 통할 때도 있지만 그게 안 통하고 혼란기를 겪어야 해결되는 모순과 혁명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이 느낄 수 밖에 없다는 때가 있다는 걸 알야지
거 뭐 북한 인민들이나 중국 인민들도 체제내에서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주장의 일관성만큼은 인정하겠음 ㅋㅋㅋ
저는 천만명 단위로 전쟁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굶어죽어가면서 혁명을 해야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러시아의 이후 산업, 경제적 발전과 삶의 질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달성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정에서 입헌군주국이나 공화국으로의 변화도 보다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톨리핀은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그의 개혁이 진행되었다면 필연적으로 러시아는 입헌군주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백군편에 든 사람들조차 제정을 복구시키겠다고 보는 이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백군이 승리했어도 공화국이었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데니킨 조차 살아남은 유력 황족인 미하일 대공을 전반적인 계증의 지지에 도움이 안된다고 외면할 정도였거든요.
결국에는 자기자신의 IF를 얘기하는구만. 나도 그렇게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다만 그건 결국 러시아 인민들이 선택했던 운명이지. 그 죽음에는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도 책임이 있겠지만 과연 제정 러시아는 책임이 없을까? 니가 그렇게 러시아 사람들의 죽음을 애통해 한다면 왜 빠르게 개혁 안해서 인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혁명으로 이어지게 한 제정 러시아는 탓하지 않는거지? 니 논리는 자칫하면 러시아 인민들을 우매하다고 욕할 수 있는 논리로도 쓰일 수 있는 거 아나? 니가 나열한 사실들로 당시 러시아 정부가 마냥 무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겠다만 그게 제정 러시아가 망하지 않았어야 하는 체제라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
나도 90년대 러시아의 그 혼란을 겪으면서까지 소련이 급격한 체제 변환을 해서는 안 됐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 니 주장의 일관성 하나는 인정해줄게ㅎㅎ
음 저는 소련의 체제전환이 과도하게 급속하게 이루어져서 타격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자본주의화 변화 과정에서의 토지개혁이나 사유재산 분배 문제는 주된 연구대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 그러면 중국과 북한도 중공과 김정은 체제 하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도 생각해?
시리아 내전이나 아랍의 봄 이후 아랍 국가들 보면 폭력 혁명보단 그냥 김정은이나 중공이 그대로 눌러 앉는 편이 더 나음 - dc App
결국 러시아 제국은 망할만 해서 망했고 백군이 간섭군 끌고 온게 팩트인데 길게 써봤자 반공이념에 물들어서 나무만 보다 숲을 못본 병신글임
와 소뽕들 진짜 미쳐돌아가네 씹 ㅋㅋㅋ
정말 구구절절 개소리만 지껄이는군 콘
한 7~8년 전쯤에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이 책 봤는데 당시 일고 느낀게 1차대전말 러시아 군은 누가 와도 독일군 못 막았음. 전쟁초라면 모를까 전쟁 말기에 그 꼬라지 난건 제정 러시아 책임이지, 이걸 뭐 볼셰비키가 선동해서 망했다고 하는건 좀 무리수임
그 책에서 기억나는건 '협상국은 볼셰비키가 선동해서 러시아인들이 전쟁 의지를 잃었다고 생각하여 백군을 지원했으나, 실상은 러시아인들이 의지를 잃은걸 볼셰비키가 간파하고 전쟁을 멈추자고 주장한 것이다'. 반공은 좋지만 걍 제정 러시아는 망할만 했고 그 권력을 볼셰비키가 잡았을뿐이지 볼셰비키가 없었다고 제정 러시아가 문제 없었을거라곤 생각치 않음
1916년 보로실로프 공세를 수행한 러시아군이 1917년에는 개작살이 나게 됩니다. 차르체제라서 그런게 아니라 1917년에는 군대 민주화때문에 개판이 됬어요. 보로실로프 대장도 케렌스키에게 군대의 민주화를 제한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구 러시아 장교단은 오히려 공세에 반대했습니다.
아니 병신아 혁명 후 집권세력이 러시아군을 약화시킨 건 맞는데 애초에 무리한 전쟁을 벌여서 러시아를 그 상황까지 몬 건 제정 러시아라고요 이 답답아 무슨 니콜라이 환생이냐? 왜 자꾸 숲을 안 보고 나무를 볼라고 하노
그러니까 그 책에선 전쟁 말기에 러시아군이 사기 잃고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탈영과 명령 거부가 끊이지 않던게 걍 러시아군이 오랜기간 패배를 경험하고 승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그 꼬라지 난거지, 볼셰비키가 선동했다느니 그런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볼셰비키는 여론을 파악하고 뒷북을 친거지 이미 그 훨씬전부터 러시아군은 무너졌다고요.
아니 그러고보니까 케렌스키 임시정부 트롤은 사회혁명당 몫인데 그걸 왜 볼셰비키 탓으로 밀어붙임
일단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군의 민주화 결과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사들이 부활절 계란과 케이크를 못받았다고 민가를 약탈하다가 연대장을 죽여버리겠다고 잡아서 묶어놓고 조리돌리면서 계란과 케이크 어딨냐고 협박하고 죽이겠다고 위협하는걸 연대장이 자기는 보급받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애걸해서 살아남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었고, 전장에 갓 임관한 소년 장교들이 끔찍한 모욕과 폭행에 시달리고, 심지어 장교들이 일선에서 돌격하는 임무를 맏는 일명 죽음의 대대에 차라리 자원하겠다고 나서는 수준이었습니다. 무기는 장교가 관리하는게 아니라 병사 소비에트가 관리해야 한다고 정부가 공포한 상황이었죠.
그 병사 소비에트 시스템은 사회혁명당과 사회민주노동당을 비롯한 혁명세력의 합작품이거든요. 그리고 그 소비에트를 구성에 볼셰비키 지지자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후방지역에는 이들이 지방정부를 위협하고 다녔구요.
얘 진짜 좀 아스퍼거냐? 왜 자기 할말만 자꾸해;;
1차대전 말기에는 프랑스에서도 대규모 항명 사태가 벌어졌고, 독일군에서도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혁명이 일어나죠. 이건 프랑스, 독일 내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해서 그런걸까요? 아뇨, 그냥 전쟁이 끝없이 길어지고 사상자가 늘어나자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그런거죠. 러시아 보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았던 프랑스/독일에서도 군대에 심각한 동요가 일어났는데, 러시아에서 군대가 무너진다고 그걸 볼셰비키만 아니었어도 괜찮았다고 하는건 좀 주객전도라고 생각하네요. 군대가 무너졌기에 볼셰비키가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던거지, 볼셰비키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군대가 무너진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17년 군내 민주화는 결과적으로 사병들이 거의 합법적으로 장교를 살해하거나 린치하는 상황을 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거부하는 것도요. 프랑스에서의 항명사태는 지휘관의 공세 강요와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면, 1917년 러시아에서의 군내 민주화는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발틱함대 사령관과 장교들이 학살당한 경우에도 정부가 공식적 조사를 대충 하고 넘겨버리고, 수병 소비에트가 조사를 이건 내부문제라고 거부해도 정부가 처벌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이 분 생각 외로 답답한 인물이었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소련 붕괴에 옐친과 고르비가 중심적인 인물이었다고 해서 소련 붕괴의 책임이 전부 옐친, 고르비 탓이 아닌 것과 같다. 옐친과 고르비가 결정타를 날렸으나 70년대부터 자원 의존경제를 만들고 8월 쿠데타로 민심을 떠나게 한 소련 공산당이 결국 소련을 붕괴 직전의 상황까지 내몬 거지. 이것도 마찬가지다.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결정적으로 러시아군을 유명무실화 시켰을지언정 그런 막장상황까지 가게 한 건 결국 제정러시아라고.
ㄴㄴ아 시발 무슨 앵무새도 아니고.
작성자분, 제가 1차대전 동부전선을 팠던게 거의 10년쯤 되서 상세한 반박은 못하겠습니다만 당시 제가 읽었던 책들은 공통적으로 이미 볼셰비키 선동 이전에 불리한 전황과 늘어나는 사상자, 열악한 보급 등으로 러시아군은 사기를 잃고 무너져가고 있었고 이에 볼셰비키가 이런 여론을 파악하고 침투를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볼셰비키의 러시아군 민주화가 군기에 분명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겠지만, 애초에 볼셰비키가 그렇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건 러시아군이 무너질대로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러시아군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은 전쟁 초기부터 있었지만 그 선동이 먹히기 시작한건 러시아군 스스로가 의지를 잃고 무너지기 시작한 대전 말기라고 알고 있네요.
이해되나? 소련 공산당이 옐친이 활개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었듯 제정 러시아가 먼저 무리한 전쟁을 벌여 군대 상태를 병신으로 만들어놨기에 볼셰비키가 그런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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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참고문헌이고 뭐고 없이 그냥 흔한 소뽕 레퍼토리만 주절대고 있는데 그냥 사회성 좀 결여된 급식들 같음
1차 세계대전 패퇴에 볼셰비키, 사회혁명당이 결정적이었다를 주장하려면 혁명 이전 러시아군의 전과, 사기와 혁명 이후 러시아군의 전과, 사기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비교연구 자료를 들고 와야지 단편적인 사례만 죽 나열하면 어떡하노 그거 나열한다고 혁명 전 러시아군이 지리멸렬했던 게 가려지나?
트루 빨갱이들이 진짜 있네 ㅋㅋㅋㅋㅋㅋㅋ 걍 간단히 보면 제정 러시아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갈아봤는데 그 갈린 대가리들이 훨씬 심각한 똥덩어리에 약삭빠르기만 한 혁명가 꼴통새끼들이었다는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 꽃이 지고서야 봄인줄 안거지 ㅋㅋㅋㅋㅋㅋㅋ왜 이걸 못받아들이고 빨들빨달 떠실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혁명가가 병신'이라는거랑 '혁명가 아니었으면 제정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무너지지 않았을것이다'는 전혀 다른 얘기임. 글쓴이는 러시아군이 무너진건 볼셰비키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반론하는쪽은 이미 러시아군이 무너졌기에 볼셰비키가 영향력을 끼칠수 있었다는것.
몇가지 말하고 싶은건 군의 붕괴는 러시아에서만 발생한게 아니었음. 대전 말기에 오헝 제국이나 독일 제국, 프랑스 등 주요 참전국에선 공통적으로 벌어졌던 형상이라는 것. 그리고 전황은 혁명 여부와 상관 없이 1914년 개전 이후 꾸준히 밀리고 있었다는것. 물론 러시아의 공세로 일시적으로나마 서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긴 흐름으로 보면 독일군에 밀려 점점 후퇴하는 모양새였음. 이런 상황에서 과연 볼셰비키만 아니었어도 러시아군은 무너지지 않았을것이다라는 주장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 있을까 싶음
2월혁명 전엔 그래도 수비에 치중하는 이상 브루실로프 공세 이후에도 전선이 크게 밀려나진 않았는데 말이시. 폴란드가 무너졌어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보유하고 있었고 발트해 라인에선 리가 이북으로 -리가는 케렌스키의 6월공세 대실패로 말미암아 독일군에게 상실- 독일군을 쉽사리 들이지 않음. 전쟁이라는 국가적 중대사에서 군율과 기강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지 민주같은 밸류는 그저 극단주의자들의 놀이터가 될게 자명했고. 그리고 2월혁명 전에 러시아군 기강이 이미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으면 출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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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겡이가 왜 병신인가를 구구절절이 설명해주는데 아닌데 재정러시아가 더병신인데? 하는 수준 설사 진짜 그랬더라도 뽈겡이 병신인건 안바뀌는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