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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은 케렌스키 공세 당시 동부전선의 위치입니다. 러시아는 러시아령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남부전선에서 케렌스키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공세는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이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임시정부와 케렌스키는 공세를 통해 사기를 되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러시아군은 일명 민주화를 통해 작살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좌측은 10월 혁명 이후, 협정이 지연되면서 독일군이 공세를 감행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벨로루시 일부, 우크라이나 거의 전부를 상실하고, 이를 인정하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이루어졌을때의 영토상실분입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상실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뭐, 그럴수도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수백년간 러시아가 통치하고, 여전히 러시아 내에 다수의 폴란드/리투아니아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는건 문제가 없진 않겠습니다만... 


하지만 그 이후의 영토상실은 순전히 볼셰비키의 군대해산 때문이었습니다. 기존 러시아군을 대책없이 해산시킴으로서 전선이 붕괴했고, 독일군은 큰 문제 없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단지 10월 혁명 이전의 민주화란 미명하에 막장이 된 러시아군만 존재했어도 이런 사태를 맞이하진 않았겠지만, 볼셰비키 입장에서는 독일군의 위협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군대가 없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란 것도 군사경험이 없는 볼셰비키 입장에서는 판단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를 상실했으며, 기존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를 모스크바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곡창이자 잉여곡물의 주 공급처였던 우크라이나를 병신같은 결정으로 날려먹게 된 건 큰 타격이었고, 특히 이것은 역으로 당시 소수로 쫗겨다니는 중이었던 데니킨과 코르닐로프의 백군에게는 희소식이었고, 돈 코사크가 봉기해서 독일군과 협력 단숨에 남러시아에서 백군은 대규모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전쟁을 지속했던 것도 이해가 안가는건 아닌게, 이미 1917년 4월 미국이 참전선언을 한 상태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국의 승리가 확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문제는 사회혁명당과 볼셰비키가 러시아군에 만연시킨 민주화의 암덩이가 러시아군을 병신을 만들어놓은 상태인데다가, 이걸 통제하고 장교단과의 타협을 적절히 조정해야할 전쟁상, 그리고 이후에는 정부수반인 케렌스키는 이런 상황을 방조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군의 민주화, 그리고 이걸 반대하는 장교단의 숙청이 군을 강화시켜줄 거라 믿었습니다. 


게다가 볼셰비키는 후방에서 반전여론을 부추기고 있었고, 후방에 대기중인 한번도 참전하지 않은 예비병력이나 보충병들은 시위와 민주화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전선이동을 거부하고 탈영하고, 항명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일명 볼셰비키의 무력인 적위대들은 케렌스키가 해방시킨 일명 케렌스키의 새끼새들, 정치범과 함께 풀려난 수만명의 범범죄자들이 포함되었고, 위의 항명한 병사들이나 적위대는 곳곳의 지방정부에서 일명 병사 소비에트를 구성하고 지방정부를 장악하거나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에 10월 혁명은 지방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만, 독일의 전선은 막장이고, 후방에서는 적위대가 여기저기서 체포, 처형, 약탈도 즐겁게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전쟁지속은 납득할만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볼셰비키도 안믿지만 반동으로 보이는 장교집단도 안믿는 사회혁명당과 임시정부, 그리고 볼셰비키는 합작해서 군대를 막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임시정부와 케렌스키는 전쟁을 할거면 군대를 건드리지 말고, 군대를 건드릴거면 전쟁을 하질 말아야 했지만 어정쩡하게 했다가 망했습니다.


볼셰비키의 휴전협상은 초반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군대를 해산시키고 장교들을 몽땅 해고하고 탄압하는 병신짓거리로 간단히 국토를 대량 추가 상실한 것 빼도박도 못할 병신짓이고, 거기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외에도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더 밀접하고 중요한 지역들을 모두 넘겨준 것은 확실하게 매국노짓이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건 그러고서 나중에 외세의 침입에 부역하는 백군 어쩌고 한 것을 생각하면 파렴치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회혁명당의 임시정부와,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모두, 나름의 명분은 있겠지만, 말아먹은 것은 차르나 차르의 내각보다 훨씬 더 무능하면서 용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 독일이 서부전선에 집중하길 원했기 때문이었지, 만약 반대였다면 독일은 간단히 유럽방면의 러시아를 모두 장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이르는 기간동안 사회혁명당과 볼셰비키 둘 다 이전의 러시아 정부보다 단 하나도 유능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단지 승자를 가른 것은 사회혁명당은 너무 나이브하고 너무 무능해서 실패한 반면에, 볼셰비키는 좀 더 냉혹하고, 악랄하면서, 실패를 한 이후 수정 보완할 정도의 유연성은 보유했다는 차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