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Roger's Rangers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때부터 투사무기를 사용했지만, 길리슈트 등으로 대표되는 저격수용 위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군용 위장복을 부대 단위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것은 미국이었다.
유럽에서 7년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유럽 제국의 식민지들도 종주국을 따라 전쟁을 하고 있었다.
북미대륙도 같은 상황이었다.
초기에는 북미 프랑스 식민지에 배치된 3000명의 해병대와 극소수의 영국군이 신경전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모두 서로 동맹을 맺고 있던 북미 원주민들을 끌어들이면서 식민지 전쟁의 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각각 원주민 부족들은 영국 혹은 프랑스 식민지와 교역이나 혼인을 통한 친인척 관계 등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때문에 우호적인 국가를 지원 하기 위해, 혹은 전쟁 약탈물을 노리고 양쪽 모두에 가담하려 했다.
하지만 버지니아 총독 대리이자 실질적인 북미식민지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딘위디가 월권을 함으로써 상황이 바뀐다.
로버트 딘위디는 절차를 무시하고 조지 워싱턴에게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되, 우리를 방해하는 자를 모두 격멸하라" 라는 지시를 내린다.
1754년 5월 23일, 프랑스 지휘관 조셉 쿨롱 드 주몬빌은 35명의 분견대를 이끌고 영국 식민지 방향으로 향했다.
이들의 공식적인 임무는 양국 식민지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평화사절이었다.
조지 워싱턴은 이를 프랑스군의 선제공격으로 간주하고 밍고족과 연합하여 기습공격한다.
이 사건에서 밍고족은 책을 읽던 주몬빌이 총격을 당해 죽었고 민병대가 캐나다인을 학살했으며 우리는 이를 막으려 했다라고 주장했다.
민병대 측은 프랑스군을 포로로 예우했지만 밍고족이 포로를 학살했고 그 중 한 명이 주몬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주몬빌의 동생 루이 쿨롱 드 빌리어즈가 워싱턴을 생포하여 비열한 급습으로 주몬빌의 평화사절단을 학살했음을 인정한다라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디언 상당수가 프랑스측으로 돌아섰다.
인디언의 협조를 잃은 영국측은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했다.
그 중 하나가 로저의 레인저(Roger's Ranger)였다.
로저의 레인저는 뉴 햄프셔 주에 위치한 식민지 회사의 경비대에서 시작되었다.
로버트 로저스 대위가 지휘하는 이 부대는 특수부대로써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녹색 외투를 입고 손도끼를 들고 숲에서 기습전을 펼치는가 하면
보트를 머리에 이고 육지를 돌파한 후 강에서 보트를 타고 포위망을 탈출했고
장거리 표적에 대한 저격전을 수행하고 정찰임무를 맡았으며
혹한기에는 설피를 신고 험지를 돌파하여 방어선의 취약점을 급습했다
정찰수색임무나 사냥용 덫을 설치하여 적 부대의 진격을 막는 임무도 맡았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 참여한 영국군은 로저의 레인저를 아주 높게 평가했다.
2.Experimental Corps of Riflemen
로버트 윌리엄 소위는 20살이던 7년 전쟁 기간 중 인도 전역에서 제 42 보병연대의 소위로 복무했다.
그리고 1796년 중령으로 승진하여 제 67 보병연대의 지휘관으로 나폴레옹 전역에서 복무했다.
그는 루조 자유연대 휘하 티롤리안 엽병대와 크로아티아인 의용군으로 이루어진 그란츠 보병대의 전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799년 로버트 윌리엄 중령은 영국 육군장관에게 "저격병으로 이루어진 연대를 편제해야한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 주장은 영국 국왕과 존 무어 경의 지지를 받았다.
이듬해인 1800년 3월 총 14개 연대에서 엄선된 저격병들로 구성된 라이플맨 실험부대(Experimental Corps of Riflemen)이 창설되었다.
지휘관은 쿠트 메닝헴 대령으로 북미 식민지에 종군한 장교였고 부지휘관은 로버트 윌리엄 중령이었다.
라이플맨 실험부대는 녹색 옷과 베이커 라이플으로 무장한 세계 최초의 정규저격전 부대로 평가된다
실험부대의 특징은 훗날 이 부대의 별명으로 고착된 녹색 제복을 전투복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반쯤 주먹구구식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화가이자 장교였던 찰스 해밀턴 스미스는 1800년 여러 색 중 어떤 색이 군복에 어울리는지 위장 실험을 하였다.
150야드 거리에서 테스트를 한 결과 회색이 가장 위장율이 우수하고 그 다음으로 녹색이며, 붉은색은 눈에 띄어서 맞추기 쉽다는 결과가 나왔다.
찰스 해밀턴 스미스는 이 결과를 영국군에 제출하고 경보병 제복은 회색이나 카키색 제복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영국군은 이 실험 결과에 대해 보어전쟁에서 털리기 직전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실험부대는 1800년 8월 25일부터 26일 간 윌리엄 중령의 지휘 하에 3개 중대가 스페인 티롤에서 상륙전을 보조하였다.
이들은 저격전을 펼쳐 스페인군 방어진지 상당수를 파괴하는데 성공했으나 상륙전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1801년 4월 2일 코펜하겐 해전에서 1개 중대가 저격병으로 탑승하였다.
윌리엄 중령은 경보병 전술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영내 도서관을 도입하고 각 지휘관들이 휘하 병사들을 면담하고 독립된 개인으로 대우하도록 했다.
또한 실험적인 저격/경보병 훈련을 도입하였으며 병사들을 위한 훈장을 도입했다.
본래 유럽의 상훈제도라는 것은 귀족에만 해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유럽인의 상식이었다.
나폴레옹이 병사에게 상훈을 확대하고 상훈수여자에게 연금까지 지급하도록 한 레옹 도뇌르 훈장에 대해 의회가 격렬히 반대했을 정도였다.
유럽의 후진국인 영국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서 기껏해봐야 25년 복무한 병사에게 매일 6펜스의 연금을 주는 것이 다였다.
윌리엄 중령의 시도는 동시기 영국 장교들에 비해 선진적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나 영향은 없지만.
(6펜스 = 빵 4끼 분량 살 수 있을 돈)
실험적 부대운용을 거친 후 1803년 1월 라이플 실험부대는 제 95 보병연대로 정식편제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인 1816년에는 제 45 셔우드숲 보병연대가 제 95 보병연대로 바뀌면서, 제 95 보병연대는 라이플 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군비 감축에 들어갔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부대부터 해산되었지만, 라이플 연대의 공적과 기술은 그냥 버리기엔 너무 귀중했다.
또한 웰링턴 공작이 격렬하게 반대하였기 때문에 1816년 제95 보병연대는 경보병부대에서 정예보병부대로 재편되었다.
이때 제17 보병연대와 제45 보병연대가 합쳐져 제 95 더비셔 보병연대로 재편되었기 때문에 그냥 번호판은 떼버리고 라이플 연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부대는 정예부대로써 크림전쟁 기간부터 인도 용병 반란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공을 세웠다.
덕분에 1862년 1월에는 앨버트공의 근위라이플연대(The Prince Consort's Own Rifle Brigade)라는 부대명을 하사받았다.
3.Great War
1차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군은 위장복을 사용하는 군대로 재편되었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장교이자 화가였던 루시앙-빅토르 기랑 드 셰볼라라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림 그리던 사람이었다.
1차대전이 쉐볼라는 일어나자 제 6 포병연대 소속이 되었다.
본래 그의 군경력은 2등 포병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빠르게 진급하여 대위까지 올라간다.
이 시절에 쉐볼라는 입체파적 살려서 캔버스에 위장색을 칠해 대포 위장용 가림막으로 사용했다.
1915년 2월부터 실험적으로 사용된 이 위장은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 육군 총사령관의 눈에 띈다.
조제프 조프르 장군은 같은 해 8월 아미엥에 위장 연구부서를 설치하고 부서장에 쉐볼라를 임명한다.
쉐볼라는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자신과 같은 화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 화가들은 전통주의 화가들이었지만 위장기법에는 입체파의 기법들을 도입했다.
쉐볼라는 위장술 개발의 대가로 1935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군 사령관으로 승진한다.
덕분에 말년에 잘 먹고 잘 살았음
이 부서에서 만든 것들
1914년 외젠 꼬르벵이 만든 위장패턴
삼색 위장패턴과 그물 위장막
위장벽
나무로 위장한 관측소
나무 위장복 + 나무 관측소
저격수 위장복
위장복 개무섭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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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패턴은 괜찮아보이내
저러니 저격수가 괴물취급 받았지...
마지막은 사이버맨같이 생겼네
3번 이야기 보면 프랑스 애들이 호라이즌 블루 군복 쓴거 진짜로 어느정도 위장효과가 있어서 쓴건가? 위장 개념이 없는 군대도 아니었는데 끝까지 쓴거 보면
평야가 많아서 나름 효과가 좋았음 - dc App
그거 전에 쓰던게 파란색, 하얀색, 빨간색 3색 섞인 나폴레옹식 군복인데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보수주의자들 어르고 달래서 겨우 도입한게 호라이즌 블루 군복임. 그냥 호라이즌 블루 패턴만 보면 이게 뭔 병신인가 싶지만 이전에 입던 군복이랑 비교해보면 위장면에서 훨씬 진일보한거....
저격수 위장복 닥터후에 나올꺼같다 ㅋㅋ
빵국군 위장벽에 사퍼 복장도 특이함 . 저거 나폴레옹 시절부터 쓰던 공병장비 - dc App
6펜스? 빵 4끼? 우리로 치면 국밥 네그릇 아니냐? 뜨-뜻한 국밥 한그릇 7천원이라 치고 4끼면 2.8만원 한달 30일이면 84만원인데 당시는 근대 복지국가 등장 훨씬 이전임을 감안했을때 갓진적인거 아니냐?
그건 그냥 명문화된 규정이고 실제로는 10년 복무 이전에 강제전역시켜서 별 의미 없음
실제 전역자들은 복무일수 채우기 전에 신체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전역되거나, 늙었지만 복무일수는 다 차기 전에 전역되는 경우가 많아서 구걸로 살아갔고. 거기다 국가에서 가져가는 인두세, 하숙비 같은거도 고려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