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중대장으로 100명을 지휘하게 된 지 불과 몇 달 뒤, 마셜 중위는

필리핀 방어전을 가정한 대규모 기동훈련에서 "백군(White Force)"의 부관참모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쟁성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기고만장해진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깨고

태평양의 패자가 되기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품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프랭클린 벨 장군 휘하 필리핀 군관구는

마닐라 방위를 맡은 "황군(Brown force)"대 마닐라 점령을 목표로 한 대항군인 백군의 수륙양면 기동훈련을 기획했다.


벨 장군이 백군 사령관으로 임명한 연대장은 야전 지휘능력이 형편없는 술주정뱅이였고, 부연대장도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그래서 마셜은 연대장과 부연대장의 명목상 지휘권은 유지하되 실질적으로는 그가 지휘하는 방안을 연대참모들에게 과감히 제안했다.

대담하다 못해 간이 부은 제안이었지만, 외외로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지 연대장이 이를 받아들였고

마셜 중위는 필리핀 방면군에서 가장 큰 야전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5천 명에 달하는 백군을 지휘하게 된 마셜은, 짬 덕분에 보급품과 장비를 더 두둑하게 확보한 황군의 대령 두 명과 맞서야 했다.

모의침공을 개시한 1914년 1월 22일, 백군 공격부대는 루손 항을 출발해 바탕가스에 상륙해 작은 보트를 타고 해변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선박이 부족해 1월 29일까지 공격이 지연되었고, 마셜은 이때 복잡한 문제들을 임기응변으로 척척 해결해냈다.

백군의 보병중대를 이끌던 한 웨스트포인트 출신 중위는, 대나무 그늘 아래서 지도를 펼쳐들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더 전력이 우위인 적의 방어선을 와해시킬 공격을 지시하는 마셜의 당찬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중위는 훗날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미 공군의 아버지가 될 헨리 '햅' 아놀드였다.

아놀드의 회상에 의하면, 기동훈련이 끝나고 귀가한 그는 아내에게

"이번에 내가 장차 육군참모총장이 될 사나이를 만났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셜이 지휘한 백군이 황군을 격파하고 어려운 임무를 성공시키자 극찬이 쏟아졌고, 그는 마닐라 방면군 장교들 사이에 화제의 인사가 되었다.

벨 장군이 마셜을 "스톤월 잭슨 이후 가장 위대한 천재군인"이라 불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기동훈련 중 과로로 건강을 해친 마셜에게 정규휴가 두 달에 병가 두 달이 추가로 주어졌고,

마셜은 아내 릴리와 휴가 동안 일본, 만주, 한국을 여행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즐기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마셜은 러일전쟁 당시의 전장들을 직접 방문하며 연구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 kodef 안보 총서 "마셜"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