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의 화를 면하게 한 변판윤 댁 '곰국 적선'-


인정(1) 이후에는 각 영의 군사가 매일 교대로 궁성을 순찰하는 의식이 행해졌는데, 한 조는 대략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엄동설한에 매서운 찬바람이 맹위를 떨칠 때에는 밖을 순찰하는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다.


이 무렵 변 아무개 지사(知事)가 있었는데, 그는 중인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 그의 집이 마동에 자리해 뒷문이 창덕궁 담장 밑으로 나 있었다.


하루는 눈 내리고 난 뒤 심한 추위 속에서 깊은 밤에 순라군의 소리를 듣고는 집안 하인들에게 명하여 밥을 짓고 곰국을 끓이라 명했다.


그러고는 순라군이 자기 집 후문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인솔하고 있는 군관에게 청했다.


"내 집에 추위로 언 몸을 녹일 것이 있으니 잠깐 들어오시오."


군관이 순라군 약 열 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자 변 지사는 더운밥과 곰국 그리고 따끈한 술을 내어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노고를 위로하니, 군관 이하 병졸들이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이후에도 혹심하게 추운 날이면 그는 이렇게 순라군들을 불러들여 따뜻하게 대접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이 변 지사의 아들이 최근 정계에서 쟁쟁한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한성판균 변원규이다. 그리고 그 손자는 문과 출신으로 동부승지를 지낸 변종헌이다.


임오군란 때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당시 신세력 일파들을 색출, 집에 들이닥쳐 마구잡이로 때려 부술 즈음 한 무리의 병사들이 변 판윤 집에도 들이닥쳤다.


이때 한 늙은 군사가 급히 쫓아와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고정하고 내 말 한 마디만 들어라. 이 변 판윤 대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동에 살던 변 지사 어른의 아들이다. 우리가 아무 해 아무 달 극심한 추위 속에 순찰을 돌 때 따뜻하게 대접해 주며 구제해 주었는데 이제 우리가 이 댁을 부수려 함은 그야말로 은혜를 악으로 갚는 짓이니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이 말을 듣고 이 집에 들이닥쳤던 군사 무리들이 감탄해 마지않으며 스스로 물러나니, 변 판윤 집안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는 요행이 아니라 적선을 베푼 것에 대한 보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人定, 종로 보신각에서 종을 28번 울려 통행금지를 알림.)


출처: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있는 망국사 65~66p. 윤효정 지음, 박광희 엮음. 다산북스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