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님, 이쪽에서 우리쪽 시신을 찾았습니다.'

선두에 서 움직이던 병사가 소리쳤다.
저 병사는 핸슨 병장, 전투교범의 삽화를 찢고 튀어나온듯한 전형적인 군인으로서, 산탄총을 잡고다니는 겁대가리 없는 놈이였다.

핸슨이 소리치자 주변의 병사 둘이 다가가 쓰러져있는 전우의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체는 총 3구로 하나는 목이 날아가있었고 나머지 둘은 검에 난자당한듯 너덜너덜 해져있었다. 부대가 와해된지 3일이나 지났는데 첫날 합류할수있었던 다섯을 제외하곤 단 한명도 살아있는체 만나지 못했다.


빌어먹을 노스가르스의 기사들은 납덩어리를 천성적으로 거부하는것인지 다섯이서 집중사격을 가해도 멀쩡히 걸어서 접근하는일이 태반인 놈들이고. 애초에 전원 경무장한 전위 소총수 중대가 행군중인 1개 기사단과 정면에서 조우했으니 살아남은게 다행이였다.


때때로 혼자 생각에 빠지는 버릇은 여러모로 악습이였다. 혼자 생각을 하다보면 생각은 쓸데없는 잡념에 빠지고, 그렇게되면 외부의 소리에 둔감해진다. 바로 지금처럼

'...위님, 베스파로프 소위님, 안들리십니까?'
핸슨이 코앞에서 손을 휘저으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고 주변 병사들은 전부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열명정도 남은 병사들은 살아남은 지휘자라곤 나 하나뿐인 이 상황에서도 아무말 없이 따라와주고 있었지만, 고작해봐야 나같은 낙하산 인사에겐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부담이 될 뿐이였다.

'시신을 가져가기엔 너무 힘이 모자란다, 묘만 대충 만들어주고 인식표를 챙겨 떠나자.'

말 한마디를 가까스로 꺼냈지만 불안감은 계속해서 커져간다.
시신을 수습하다가 추격대에 잡히는건 아닐까, 이미 추격대가 우릴 앞지른건 아닐까?

또 혼자서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을 다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수습작업은 끝나가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불고있던 눈보라는 갑작스럽게 그쳐가고 있었다.

간단히 만들어진 무덤에는 세명의 용사들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고, 살아남은 열댓명의 패잔병들은 살아남기 위해 여정을 이어갔다.





(1)


'소위님, 뭐라도 좀 드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에릭 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병 하나가 오늘 낮까지만 해도 숲을 뛰다니던 사슴의 다릿살을 건냈다. 고깃덩어리는 속은 아직 핏빛으로 붉었고 겉은 불타버린, 도저히 정상적으로 먹을수 없는 물건이었고, 이는 지금 모여있는 열댓명의 병사중 나를 제외한 모두가 조리란걸 해본적도 없는 남정네들이였으며 하나남은 여자인 나도 요리에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물론 맛을 따질 여유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이미 술기운에 빠진 병사들은 굽다만 핏덩이까지도 어머니의 손맛이니 뭐니 하며 뜯어먹고 있었다.

'먼저먹어라 신병, 딱히 먹을생각이 안드는군.'

호의의 탈을 쓴 죄악을 최대한 정중히 거절하고 비스킷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물론 돌덩어리같은 이 물건을 씹어먹다간 치아가 죄다 바스라질지도 모르는데다, 씹다보면 귀여운 벌래친구들마저 고깃덩이가 되어 내 뱃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뭘 해도 저 3색깔의 살아있는것처럼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만은 먹고싶지 않았다

신병이 돌아가자 다시 난 구석에 혼자 처박혀 혼자가 되었고, 주위를 조용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핸슨과 몇몇병사들은 밖을 주시하고 있었고 몇몇은 술기운으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흉물을 씹지도 않고 넘기고 있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석진 곳에서 병사 두명이서 무엇인가 불을 지피고 하고있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 한사람은 고기의 탄 부분을 긁어내고 있었고 한사람은 불을 지피며 긁어낸 고기를 정리하고있었다. 아마 저 귀 형태를 보아 하니 부모중 한놈이 귀큰것들이 틀림없으리라..... 천천히 구석에서 일어나 두 병사들의 뒤로 다가가 무엇을 하고있나 지켜보니 연기를 피워 고기를 연기에 쐬여주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있는지 당최 알수 없었기에 물어보려고 했으나 행여나 이상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중간하게 입에서 소리가 나오다 들어갔다. 거기에 둘은 반응해 뒤를 돌아봤고, 말을 안하니만도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소위님?'

두명의 병사들은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대로 돌이 된듯 얼어버렸다. 뭐라 말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두 병사들도 아무 반응 없이 침묵하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침묵하던 두 병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시 날 쳐다봤고
'고기를 훈제해보려고 하는 중이였습니다. 구경이라도 해보시겠습니까?' 라며 말을 던졌다.

'아...아...뭐, 구경 해도 된다면야....'
속으로 병신 금붕어 새끼...라고 자신을 자책하며 근처에 쭈그려 앉은 난 잠시 아무 생각없이 병사들의 작업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저 귀큰 아론 일병이나 같이 다니는 아놀드 일병이나 둘다 방금전까지 나무토막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게 목적이였나 라고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나같은 낙하산 인사보다는 다들 적응력이 빠르구나... 라는 생각과 아무것도 못하고 빌빌거리는 나 자신에 대한 민망함 정도가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저기, 이걸 만드는데 얼마쯤 걸리는거지?'
지켜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병사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3시간 전부터 시작했고 8시간에서 10시간정도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라는 대답을 얻었다. 어짜피 해도 일찍 지는바람에 행군도 멈춘거니 시간은 얼추 맞출수 있겠거니...라며 혼자 생각했다.

3일간 행군해도 본대의 주둔지 까지 도달하지 못한걸 보면 길을 잘못잡은건가, 방향이 잘못된건가, 등의 여러가지 의심을 하게된다.

오늘까지 총 4번의 교전이 있었고, 총알도 튕겨내며 달려드는 또라이같은 기사놈들과 바윗덩이도 박살내는 석궁을 쏴대는 추격대, 더럽게 큰 불기둥을 맨땅에 꽂아넣는 마법사란 작자들과 싸우며 아직까지 어떠한 전사자도 나오지 않은것은 분명 기적같은일이고, 며칠간의 강행군에 지친 병사들을 위해 하룻밤쯤의 휴식도 나쁘지 않을까 하여 잠시 동굴에서 머무르자고 한것인데, 과연 이게 올바른 선택일까 의심해본다.

혹시 우리가 도주해올수 있던것도 기사단의 추적꾼들이 뒤를 밟고있어서가 아닐까? 혹시 우리가 적들을 우리 본대로 대려가고 있는것이라면?

......머리만 아파오기 시작했다. 과도한 생각은 되려 방해만 될 뿐이다.
도대체 왜 난 가장 경험이 딸리는 주제에 이 무리를 지휘하고 있는걸까? 도대체 아버지는 날 왜 기여코 군에 밀어넣으신걸까?

가문의 전통? 아버지의 고집? 아마 둘 다일것이다. 분명 전통있는 가문에서 태어난것은 축복이라고도 할수 있을것이다. 그것도 연합국이 건립될때부터 이어져 온 가문이며, 개국공신이라는 멋진 칭호까지 있다면 당연히 그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문재는 내가 여자이며, 아버지는 어떻게든 가문의 전통을 이으려 하고있고, 내가 우리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라는것이다. 멀쩡한 인생하나가 가문의 전통 하나때문에 말아먹혔으며, 지금 객지에서 살아돌아갈수 있을지 의심되는 마당에, 나 하나한테 목숨 열몇개가 달린 상황에 처했다.

생각을 이어가면 갈수록 점점 암울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더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그냥 잠이나 자 내일을 기약하는게 좋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들지않는 잠에 빠지기위해 노력했다.





(2)

하룻밤이 지나고 눈을 떴을땐, 조금 늦은 아침이라는것을 알려주는듯 햇빛이 동굴 안쪽으로 비쳐들어오고 있었고, 핸슨 병장은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젯밤 연기를 계속 피우다 가장먼저 골아떨어진 두 일병 또한 기상해 자신들이 만들고있던 고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다 보는 동안에도 병사들은 속속히 기상해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피로가 완벽히 해소되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만족할만큼의 숙면을 취했고, 몸도 어젯밤보단 훨씬 가볍다고 느껴졌다. 이젠 생각만 하는걸 멈추고 행동할 시간이였고, 이틀정도만 더 행군한다면 본대, 최소한 우리 국경까진 퇴각할수 있을것이였다.

지금 할 일은 뭘까, 뭘 해야 최선의 선택일까 혼자 고민하다, 결국 결정한것은 별것아닌 격려 정도나 해보는것이였다. 준비가 끝나가는 병사들 앞에서 헛기침을 몇번 한뒤, 자새를 잡고는

"이제 곧 국경지대로 접근한다. 이틀정도만 더 행군한다면 본대랑 합류할수 있을것이다... 그때까지만 명령을 잘 이행해주면 고맙겠다."

라고 같잖은 말을 내뱉었다. 말을 한번 할때마다 별것 아닌것까지 긴장하게 되고, 말을 끝내면 긴장이 풀리며 힘이 빠진다. 그리고 남는것은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 뿐인것 같았다. 남을 이끄는것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맞는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겐 리더의 자질따윈 없다.

다행히도 병사들은 나의 허접한 발언에도 고개를 끄덕여주고, 날 신뢰해주었다. 오히려 이게 부담스럽다고 느껴지고, 또 혼자 생각속에 빠지려 한다. 잡념을 잘라낸뒤 몸을 일으키고, 나는 병사들을 인솔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전이란 놈은 아무리 간단해도 시작한뒤 5분뒤면 다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일은 꼭 일어나게 된다. 요 며칠세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였다.

"놈들이 다시 몰려온다! 사격준비!"
아무리 놈들이 말도안돼는 짓을 골라서 하는 놈들이라지만, 이정도일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핀은 북방대륙 생태계의 최상위권의 야수로서, 도대체 어떤식으로 새대가리를 가지고 날갯짓을 해대는 거대 포유류가 탄생했는가는 진화론자들이 해명하지 못한 수수깨끼같은것이다.

사자한테 날개를 달아놓은것과 하등 차이가 없는 이 야수들을 길들인다는 발상을 했다는것 자체가 믿을수 없었지만, 30분전부터 그걸 탄 기사놈들이, 셋이나 나타나 우릴 쫒고있다는 시점에서 그걸 부정할순 없었다. 내가 혼자였다면,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선두에 선 저 썅것에게 집중해! 한놈이라도 떨어트려야 한다!"
나는 주변의 부대원들에게 소리쳤고, 핸슨 병장을 비롯한 병사들 또한 딱히 내가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나와 똑같은 판단을 내리고 선두의 기수에게 포화를 퍼붇고 있었다.

사격을 두들겨 맞고있던 그리핀기수들은는 지금까지의 집중공격에 여러번 직격타를 맞은것인지, 갑옷에도 손상이 가있었으며, 전개된 보호막 또한 일렁임이 불안정해 보였다.

기수들은 검을 휘두르기 보단 마법을 써 불덩이를 땅에 쓰래기 버리듯이 까던져 우리를 튀겨죽이려 하고있었고, 실제로 첫 타격에 2명의 병사가 놈들의 의도대로 그자리에서 튀겨저 즉사했다.

"저 개새끼를 안떨구면 우리가 튀겨져 저 새대가리들의 사료가 될꺼다! 쏘고 그자리에서 당장 튀어라! 방금전 에릭꼬라지가 나기 싫음 말이다!"

핸슨 병장이 총으로 기수들을 쏴대며 고함을 질렀다. 놈들은 공격을 하기위해 멈춰있어야 하며 놈들의 불덩이는 유도능력이 없다는 점에선 충분히 옳은 판단이였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놈들의 공격을 방해하는 전략은, 생각외로 괜찮게 먹혀드는듯 싶었다. 첫 사망자 둘을 제외하곤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고, 되려 선봉에 서있던 기수 하나가 보호막을 깨먹고는 그리핀 제어에 실패한것인지 난동부리던 그리핀에게서 추락해 사라졌다. 추락하는 기수의 머리가 나무에 들이박혀 으깨지는걸 보고서야 병사들은 환호, 혹은 그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내질렀다.

"드디어 한놈 잡았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나는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다음 타겟을 찾기 시작했고, 동료가 추락한걸 지켜본 그리핀 기수 둘은 서로간 이야기를 나누다 점점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병사들또한 퇴각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적들을 주시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얼굴에 잠깐 돌았던 기쁨또한 점점 후퇴하기 시작했고,그 자리는 의심과 공포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서있던 핸슨의 표정또한 평소의 무표정이 아닌 두려움을 띄고있었다. 그제서야 난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려 하는지 직감했다.


"전속력으로 뛰어라! 기사들과 조우하는순간 우린 끝장이야!"
놈들이 우릴 기습으로 바로 조지지 않고 계속해서 허튼곳을 공격하던 이유도 대충 알것같았다. 우릴 잡아죽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끌고 탄환을 낭비시키는게 목적이였기 때문이겠지. 아마 우릴 포로로 붙잡거나, 아님 성전이니 뭐니 하며 우릴 잔인하게 죽일것이 뻔하다.


병사들또한 이것을 진작에 깨달은것인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분동안 사냥개에게 쫒기는 토끼마냥 사방으로 뛰어다녔던 탓인지, 속력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우리의 뒷쪽에선 놈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각 조장들은 흩어져서 집결지점까지 각자 이동하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정해놨던걸 진짜로 써먹게 될줄은 몰랐는데, 라며 중얼거리며 핸슨병장과 롤프 상병에게 손짓으로 명령했다. 곧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 네다섯 정도의 병사들을 이끌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최소한 전멸은 피할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남아있는 병사들과 함깨 언제 끝날지 모를 뜀박질을 시작했다.




(4)

오늘 해가 뜬 뒤로 제대로 쉰적이 없는것 같다.

아침부터 놈들의 그리핀 기수들에게 쫒겨다니고 있었고, 그리핀 기수들을 겨우 쫒아냈을땐 뒤를 잡힌 뒤였다. 생각해보면 놈들이 우릴 진작에 끝장낼 심산이였음 첫 습격때의 공격으로 우릴 전부 묻어버릴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도 그러지않고 우릴 가지고 놀며 무의미하게 총알을 낭비시키고 우릴 몰아새웠고, 적당히 시간을 끌었다고 판단하자 퇴각해 사라졌다.

그리고 놈들이 사라지자마자 나타난 철덩어리 기사새끼들은 우릴 조지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때서야 저새끼들이 왜 우릴 고양이가 반죽여놓은 쥐새끼마냥 대했는지 알수 있었다. 저 비이성적인 씨발놈들은 당연 대검자루를 쥐어들고 우리모가지와 심장을 향해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놈들은 우릴 포위해왔다.


"소위님! 놈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산탄총수 로크 상병이 큰소리로 소리치며 가장 가까이 접근한 기사에게 산탄을 흝뿌리며 소리쳤다. 발사된 산탄은 보호막의 넓은 부분에 충격을 전했고, 한번에 여러곳을 피격당한 보호막은 순식간에 불안정해지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로크 상병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산탄을 연발했고, 그와 대적하고 있던 기사또한 계속해서 전해져오는 충격에 밀려나 자신의 몸을 간수하지 못하는듯 했다.

"씨발! 헤이든! 지금 저새끼 쏴버려!"
로크 상병은 뒷쪽에서 총만잡고 정신줄 놓은놈처럼 벌벌거리고있는 헤이든 이병에게 소리쳤고, 그 고함에 화들짝 놀라기라도 하듯 부들거리는 손으로 총을 기사에게 연발하기 시작했다.

두사람의 집중공격을 받던 선두기사의 보호막은 결국 강렬한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고, 이어서 날아오는 탄환에 기사는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소위님! 이러다 전부 뒤질껍니다! 빨리 저길 건너가던가 해야합니다!

간신히 접근한 기사 하나를 처리한 로크 상병은 나를 잡아먹을듯 소리쳤다, 하지만 소리친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었다. 앞에는 기사놈들이, 뒷쪽엔 낭떠러지가 우릴 포위하고 있었으니까, 단 하나 남아 반대편 낭떠러지로 우릴 이어주고 있는건 아무리봐도 무너지기 직전인 흔들다리 하나 뿐이였다. 한번에 전부 건너다간 그대로 절벽으로 떨어져 비명횡사 할뿐이다. 한명씩 건너는데도 30초는 기본적으로 소요됬고, 그러니 이사단이 나는건 당연한 일이다.

"알고있다고 씨발! 헤이든! 네놈차례다, 빨리 저 망할 다리를 건너라!"
나는 평소에도 어리버리했지만 오늘 최악의 정신상태를 보여주고있는 헤이든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치며 다리쪽으로 밀어냈고, 헤이든은 화들짝 놀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헤이든 머저리새끼야! 뛰다가 다리 무너지면 어쩌려는거냐!"
딱봐도 무너질 기미가 보이던 흔들다리는 나무판자가 절벽아래로 부러저 자유낙하하며 점점 박살나기 시작했고, 점점 기사놈들의 포위망은 아직까지 다리를 건너지 못한 우릴 잡기위해 점점 조여오기 시작했다.

"망할...... 소위님! 먼저 건너십쇼! 빨리요!"
로크 상병은 산탄총을 코앞까지 근접한 기사에게 연발하기 시작했고, 보호막이 사라진 기사는 반대편에서 날아온 소총탄에 피격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바로 뒤에 덤벼든 기사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겼을때, 그의 총에선 강렬한 폭음대신 무의미한 찰칵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씨발!"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였다. 그는 장전을 중지하고 급히 개머리판으로 기사를 후려치려고 했으나 기사의 대검의 속도가 더욱 빨랐고, 기사의 검은 로크의 복부를 관통했다. 기사는 칼을 뽑아든뒤 풀썩 쓰러진 로크 상병의 목을 날려버렸고, 그게 하워드 로크 상병의 최후였다.

"얼라이언스의 침락자들아! 국토를 침범한 대가를 치러라!"
로크를 썰어버린 기사는 칼을 나에게 겨누더니, 맹수마냥 포효하기 시작했다.


"명예도 모르는 비겁한 작자들아! 네놈들이 진정한 전사라면 지금 튀어나와 나와 싸워라!"
방금전에 우리중 가장 용감하던 로크의 목을 친 기사가 나를 노려보며 고함쳤다. 유독 화려한 장식과 빛나는 갑옷, 그리고 날개가 달린것처럼 생긴 투구로 보아 저자가 지금까지 우리를 쫒던 노스가르스 기사들의 지휘관인듯 싶었다.

잠시 다리 반대편을 보니 부상병들과 패잔병의 표본이라고 할법한 병사 셋이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살아나가기 힘들것이란걸 잘 알고 도망치려하는것이겠지.

"빨리 합류지점으로 퇴각해라! 나중에 뒤따라가겠다!"
지금 저들에게 할수있는건 최소한의 죄책감이라도 덜어주는정도였다. 어짜피 저놈들이 저기 서있어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될것이다. 쓸대없이 도와준답시고 총쏘다 나만 안맞춰도 다행이지.

내가 소리치는것을 들은 병사들은 잠시 머뭇하더니 뛰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와 대치한 기사는 내 행동을 비웃는것인지 아님 뭔가 만족이라도 한건지 웃는듯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소총에 레버를 당겨 탄환을 장전했다.

나는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기사의 팔에서 방패를 빼낸 뒤 왼손으로 집어들었다. 금속부분 하나 없는 이복장으로 근접당해 배이기라도 하는날이면 그대로 로크를 따라가게 될것이다.

방패를 팔에 묶고는 소총을 적에게 겨누었다. 왼팔에 묶인 방패는 상상이상으로 무거웠고, 거추장스러울 뿐이였다. 하지만 이걸로 목숨을 1초라도 연장할수있다면 충분히 이짓을 한 가치가 있을것이다......물론 희망사항이다만.

잠시동안의 대치를 깬것은 기사의 돌진이였다. 중갑을 입었다는것이 믿기지 않을 속도로 달려들기 시작한 기사의 돌진에 나는 옆으로 몸을 던져 회피하는쪽을 택했다.

몸을 굴러 회피하려던 나는 방금전 방패를 찬 행위자체를 후회했다. 방패는 행동에 방해만 될뿐이란걸 이제와서야 깨닫다니, 기사는 방향을 꺾어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나는 몸을 비틀어 겨우 일어난뒤 왼팔의 방패로 놈의 칼을 받아냈다.

역시 여성의 몸으로 남성의 공격을 버텨내는건 어려울것같았다. 간신히 놈의 첫 공격을 막아내도 기사는 계속해서 칼을 휘두르며 접근해왔고, 그때마다 곡예를 하듯 간신히 공격을 흘려보냈다. 기회가 날때마다 탄환을 박아봤지만 보호막에 무력화될 뿐이였고, 점점 수세로 몰리기 시작했다.

"염병할, 뭔놈의 사람새끼가 총을 쏴도 뒈지질 않아,"
간신히 거리를 벌리고 총을 쏘려고 방아쇠를 당겨도 찰칵 소리만 나고 폭발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또 장전량 계산을 잘못했나보다, 속으로 씨발소리를 내며 급히 탄환을 장전한다, 급히 장전하다보면 한두발씩 땅바닥에 흘리게 되고, 저렇게 낭비된 탄환하나하나가 내 생명줄을 단축시키는 기분이다.

기사란 새끼들은 어떻게 총알을 스무발 가까이 얻어맞고도 멀쩡히 걸어다닐수있는지 모르겠다. 지휘관처럼 보이긴 했다만 지휘관이라고 특별히 더 오래가는 보호석이라도 준건가, 라고 생각하며 장전을 마치고, 어느쪽으로 공격이 들어올지 주시하고 있었다.

기사는 전면으로 돌진하기 시작했고, 나는 한발을 박아넣고 옆으로 굴러 돌진을 회피했다. 언제나 그렇듯 탄환이 발사될때 폭발음은 강렬하게 울려퍼졌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팽! 소리와 함께 힘없이 튕겨나가는 소리와 웅웅거리며 퍼져나가는 묘하게 신경줄 긁어놓는 소리 뿐이였다.

저놈의 보호막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게 있는 탄환만 낭비하다가 죽고말것이다. 지금까지 정상적이였다면 열댓명도 죽였을 탄환을 단 한사람한테 쏘아댔으나, 빗나간것도 감안한다 쳐도 너무하다싶을정도로 저놈의 보호막은 너무 튼튼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놈의 보호막을 찢어발기거나 균형을 무너트릴만큼 강력하거나 여러곳을 타격하는 무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계속해서 교란하며 저놈의 방어막이 박살날때까지 몸으로 뛰는것 뿐이겠지.

기사도 한시간 가까이 이어지고있는 술래잡기에 지친건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난 진작부터 헉헉거리고 있었지만, 한시간동안 적중시킨 탄환만 30발 가까이 되고, 흘리거나 빗나간 탄환만 따져도 20발쯤 될것이다. 이젠 쏴맞출 탄환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이란점은 기사놈의 보호막도 걸래짝이나 다름 없었다는것이다. 그래도 1시간동안 기회가 날때마다 쏘아댄게 헛되진 않았는지 보호막의 생성도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 왼팔의 방패 또한 여러번의 일격을 받아내어 우그러지고 제복또한 흙먼지와 빗겨간 칼날의 흔적때문에 걸래짝이 되가고 있었다.

"제법이군, 얼라이언스의 장교. 네놈처럼 오랫동안 버티는 총잡이는 처음이다. 거기다 계집의 몸으로 대등히 버텨내고 있지. 적국의 군인이라지만 칭찬할만 해."

"군인이 되고싶어 군인이 된건 아니거든, 거기다 딱히 내가 용맹한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서 할수있는게 부하들이라도 살려보내고 내가 시간끄는거라 생각했을뿐."

한시간쯤 술래잡기라도 했더니 정이라도 든건지 놈은 나에게 먼저 말을 뱉었고, 나도 그에 응수했다. 승산은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끌었고 놈들은 살았을테니 처음 해본 윗사람질은 성공했다고 자위하며 죽을수 있겠지.

"살신성인 하는 모습이 멋지군, 침략자들의 수하만 아니였다면 정말 좋은 친우가 될수 있었을텐데."

"누가 침략자야 미친놈들이, 네놈들이 먼저 국경지역을 침략한것 아니냐?"

"웃기는군, 이펠성을 침략해 불태운건 네놈들이 아니더냐."

저 미친놈은 논리적 사고가 안되는게 틀림없었다. 저 망할놈들이 내 고향만 침략하지 않았었다면 애초에 이곳에서 저딴새끼랑 엮일일도 없었을텐데.

나는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놈을 겨누었고, 놈도 나를 향에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였다. 살고싶다는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이미 살기위해 발버둥치기엔 모든것이 늦어버린것 같았다.

기사는 나에게 다시한번 돌진하기 시작했고, 나는 회피하기위해 뒷걸음질 치다 무엇인가에 걸려 휘청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기사는 날 그대로 들이받았고, 난 튕겨져나가 땅바닥에 던져졌다.

다리에는 힘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오른팔을 겨우 움직일수나 있었다. 마침 내 옆에는 로크의 시체가 널부러져있었고, 그놈의 마르지 못한 피가 내 옷을 적시고 피부에 닿는 기분이였다.

"끈질긴 행운도 이게 끝인가 보군, 계집?"
기사는 나를 직시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승리의 쾌감이 새겨져 있었으며, 내 볼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는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입에선 묘한 짠맛이 느껴졌고 갈비뼈가 저려왔다.

"이름은 뭔가. 죽이기전에 말한마디 정도는 남기게 해주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기사를 쳐다보며, 나는 오른손을 나의 허벅지로 옮겼다. 그리고는 기사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마리야 베스팔로바. 얼라이언스 제11여단 소속 소위이고..."
말을 끉어버린 나는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뽑아들어 기사에게 집어던졌고, 갑작스러운 충격에 기사는 대응하지 못했다. 나는 그사이에 로크의 시체가 쥐고있던 산탄총을 집어들었고, 그대로 기사에게 발사했다.

죽기직전 장전을 멈췄던 그의 산탄총은 완벽히 장전되어있진 않았지만, 기사의 보호막을 작동불능으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기사의 보호막은 굉음을 내며 산산조각나버렸고, 이어 발사된 차탄에 맞은 기사는 그대로 밀려나더니 무릎을 굽혔다.

"베스파로프 가문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뒤 나는 비척이며 그에게 접근했다. 계속 입에서는 헛기침이 튀어나왔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기사의 갑옷은 우그러지고 구멍이 나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길말은?"
기사의 얼굴에 총구를 들이밀고는 나는 감정을 담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고, 기사는 이상하게도 만족한듯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좋은 꿈 꾸길."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탄환이 격발했다. 몇조각의 쇠구슬이 기사의 얼굴을 파고들었고, 난 로크 상병의 복수를 하는데 성공했다.






예전에 썼던 소설 프롤로그부터 4화까지 분량임.

지금보니까 문체 참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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