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는 3월이 되었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만큼 바깥 활동을 삼가시고 각종 호흡기 질환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초랑 컵이랑 해서 30위안입니다, 오늘 인터넷이 이상해서 위챗페이 못 받으니까 현금으로 주...아, 뭐 오천 원이면 충분하죠. 봉투 필요하세요?\"
편의점의 점원은 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가락으로 가게의 구석을 가르켰다. 손님은 CCTV를 피해 무언가를 집어 품 속에 넣었다. 그 뒤로도 몇 명의 사람이 가게를 찾아 보따리를 가져갔고 그 또한 품 속에 한 보따리를 숨겨 가게를 나섰다.
[이번 역은 마포, 마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웅성거리는 승객들 사이에서 학생은 어제 학원의 마지막 교시 수업을 떠올렸다.
\"자, 여기까지가 새 학년 올라가면 배우는 내용들이었다!. 지금부터는 새 학기 가도 못 배우는 내용 할거야. 영진아, 창문 블라인드 내리고. 수영이는 문 닫고. 여기서부터는 시험에 안 나오는데 중요한거 한다. 듣기 싫으면 빠지고. 희수는 옆에 교실 가서 빨간색이랑 파란 보드마카 가져와라.\"
익숙한 손놀림으로 거침없이 그린 몇 개의 선과 빨갛고 파란 원은 서슬퍼런 총칼 아래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고, 공안의 눈이 무서워 감히 나부끼지 못해 장롱 깊숙히 고이 모셔둔 천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 그림을 응시하다가 재빠르게 지우고는 다시 힘찬 목소리로 한 학생을 불러 일으켰다.
\"원일아, 다시 그릴 수 있겠니?\"
여느 학생이 그렇듯이 학생은 서툴렀고 어설펐다. 선생은 학원 선생답게 쉽게 외우는 법을 알고 있었거니와 가르치는 데도 능했다.
\"으이구, 괘가 틀렸잖아! 다시 그리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기억해보자, 왼쪽 위부터 세줄, 아래로 넷....\"
그렇다고 학생이 빠르게 배우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몇 번을 지우고 그려 보자 이윽고 그 모양과 색이 눈에 익게 되었다.
\"이제 그리는 법은 알았지! 그러면 국기에 대한 경례 배워보자. 자 따라해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선생은 그 나라가 진실로 자유로웠는지, 정의로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은 했었지만 그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TV에서 마지막 태극기가 내려가고, 오성홍기와 함께 붉으락 푸르락하고, 중간에 별이 있는 고려연방기가 올라간 것을 울먹이며 본 것이었다.
\"오늘 숙제는 태극기 그리는 거랑 국기에 대한 맹세다. 노트필기 하지말고 저거 본대로 외워야 돼! 공안이 책을 버리고 폰에 있는 사진을 지우고 깃발은 찢을 수 있어도 머리에 있는 태극기는 절대 어떻게 못하는거야. 숙제검사는 광화문에서 하자.\"
[이번 역은 서대문, 서대문 역입니다. 다음 역인 광화문역은 오늘 안전 문제로 정차하지 않습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좀 걸어갑시다! 까짓거 걸으면 되는 거 아니오!\"
웅성거리던 승객 중 한 이가 말했다.
인파에 실려 가는 사람들은 목적지가 다르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았다. 사람의 급류는 거칠면서도 단호하게 그 하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의 개천이 만난 그 끝에는 또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진 장성이 있었다.
그 장성은 조선총독부가 있던 자리에 우뚝 선, 대륙의 정복자들이 오랑캐를 정벌할 때마다 세우던 비석을 닮은, 주 고려연방 중화인민공화국 대표부를 둘러싸고 있었다.
[서구의 책동에 놀아난 분리주의자, 반 연방주의자들은 귀가하라!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의 모든 책임은 폭도들과, 이 폭란을 주도한 주모자들에게 있음을 알라!]
그들이 마주한 것은 안과 밖을 분리하기 위한 인의 장성이었다. 예로부터 그들은 그 안과 밖을 구분해 안의 사람과 밖의 오랑캐로 구분했다. 중원의 지배자들은 대대로 장성 밖의 오랑캐의 가진 것을 뺏거나, 자유를 뺏아 노예로 하거나, 그 목숨을 뺏는 것을 권면하였다. 그들에게 오랑캐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 며칠간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고 정신이 없어, 아직도 떼만 쓰면 다 되는 제놈들 세상인 줄 아는 모양인데 아주 죽탕을 쳐 버려야 되지 안갓어?\"
2월 내내 도심의 시위는 이어졌고 이들은 내내 그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도심을 후볐다. 서울의 시민들이-이제는 인민이 되어버린- 누렸던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무시되었고 90년대의 합의는 무시되었다. 도처에는 최루탄과 고무탄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매를 맞고 있었다. 다시 보도블럭과 화염병이 거리로 나왔고 이제 어떤 이는 오늘에야말로 피를 보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오늘은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확성기를 든 남자가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은 이 땅에 평화와 자주로서 독립을 기원하였던 이들이 다함께 모여 만세 운동을 벌인 날입니다. 백 년도 더 전에, 민족의 대표 서른 세 명은 이 땅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온 겨레의 남녀노소는 광장으로 나와 손수 만든 깃발을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것이 우리 나라의 시작이었고 그 깃발 아래 자유와 평화를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광장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지 못하고! 우리의 노력과 역량이 뜻 있는 선배님들에 미치지 못하여서! 이 자리에 죄 지은 사람들이 되어 서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싸워셔 졌습니다, 항복도 했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누가 하나 더 잃고 더 잃을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우리의 가족이었습니다. 이들이 죽으면서도 바랬던 것은 내 나라 내 가족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고! 이 바램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이 기본적인 권리지요! 그런데 중공은, 중공이 앉혀놓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고려연방을 세워놓고 무슨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거리마다 최루탄을 쏴 댑니다, 며칠 전에는 귀가하던 학생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취재하던 기자는 총에 맞아 눈이 멀었습니다.]
숨을 고른 남자는 잠시 좌중을 바라보았다. 연단도 스피커도 준비할 수 없어서 의자에 올라 확성기만을 들었지만 충분한 사람들이 들을 만큼 조용했다. 팔뚝을 물어가며 가까스로 울음을 참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무서운 세월입니다, 무서운 세월이지만 결국 우리가 이겨 나가리라는것을 아는 것은 그 옛날 무서운 왜정을 이겨 내었고, 서슬퍼런 유신의 총칼도 꺾어 내었으며, 평화를 통한 정권 교체도 이루어낸 사람들이 우리의 부모 형제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양 옆을 둘러 봅시다! 같이 온 친구들과 덕담 한마디씩 건넵시다! 참 좋은 친구들이지요? 선생님 몰래 같이 담배 필때도 망 봐 주면서 한 가치도 나눠 피는....이거는 뭐 농담입니다만은...허허허]
안전모와 마스크를 썼지만 서로는 몸짓으로, 보안경 너머 눈짓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무경의 진압대들이 방패를 두들겨가며 내는 소음에도 시위대가 물러나지 않는 것은 서로의 존재와, 이를 묶어주는 강한 유대감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광장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신 많은 외신 기자분들이 계십니다! 여기저기 손 흔들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늘 의료지원을 해 주시기 위해서 나오신 의료진 분들도 계십니다. 혹시 오늘 아프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빨간색 십자가가 있는 천막을 찾아 주시면 됩니다. 또 오늘 행사 내내 반주를 맡아주실 반주자 분들도 계십니다!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참 든든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둔 우리인 만큼 우리는 큰 일을 해낼 감이 됩니다! 그러면 정식 식순으로서, 반주에 맞춰 애국가 1절을 제창하겠습니다.]
군중이 부르는 노래는 음정도 어렵사리 맞고, 소리도 빌딩 숲에 갇혀 되튕기는 통에 돌림노래가 되었지만, 가사만큼은 모두가 목청껏 부르고, 흐느끼며 부르며 듣고 있었다.
[다음으로 만세 삼창을 하겠습니다.]
대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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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민주를 응원합니다.
저번에 올린 작품의 프리퀄입니다.
잘써서 개추 시대배경 좃같아서 비추
눈물 난다
아흑.. - dc App
잘 읽었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