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5월 14일. 맑음
선전관 박찬종이 왔다.
동시에 선전관 영산령 예윤이 또 유지를 가지고 왔다.
그들에게서 피난가신 임금님의 사정과 명나라 군사들의 소행을 들으니, 참으로 통탄스럽다.
나는 우수사(이억기)의 배에 옮겨 타고 선전관과 대화하며 술을 마셨는데,
영남 우수사 원평중(원균)이 와서 술주정이 심하기가 차마 말할 수 없으니
배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고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의 거짓됨을 차마 말로 할 수가 없다.
5월 15일. 맑음
아침에 낙안 군수 신호가 와서 만났다.
조금 뒤에 윤동구가 그의 대장 원균이 올린 장계의 초본을 가지고 왔는데,
그의 거짓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노승석 역 난중일기 中
충무공이 손절할 정도면 걍 답없는듯. - dc App
저것 말고 원균은 민간인 사냥을 자행하고 왜병의 수급으로 위장했다던데... 그런데 말이야 이순신은 원균의 상급자 아닌가? 왕정시대에서는 저런 짓의 책임자 곱게 못 죽는데. 책임자가 되어서 저런 부하 하나 책임 못한거? - dc App
원숭환이 모문룡 함부로 죽였다가 뭔 꼴 빚었는지 보면 답 나옴. - dc App
ㄴ모문룡과 원숭환은 같은 급의 장수니까 그러지. 최소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때 원균을 처리했어야 맞는게 아닌가? - dc App
그게 웃긴게 전라좌수사겸 통제사다 이게 웃긴게 경상우수사가 전라좌수사보다 윗급이거든 통제사는 새로 만든 직제고 그래서 원균한테 작전 지휘권만 행사할수있었다 다 선조대왕께서 친히 만드신 직제다 ㅆㅂ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이 원균의 상급자가 된(=삼도수군통제사가 된) 1593년 8월 이후로도 허구한날 원흉 원흉이라는 글이 보이는데 왜 책임자가 되어서 원흉 하나 처리 못하셨을까. 글로 쓰지나 말고 직접 나서시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