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민족구성


보스니아 내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자면 오스만 투르크 시절까지 올라간다.


본래 보스니아인들은 슬라브족이다.

1463년 보스니아를 정복한 오스만 투르크는 보스니아 인들에게 투르크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하였다.

이 시기 동안 본래 카톨릭계가 대세이던 보스니아인 대다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이들이 보스니아인이라고 자칭하는 보스니악(Bosniak)이다 


한편 오스트리아-보헤미아-크로아티아 3 국가의 왕위를 가지고 있던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오스만투르크의 진격을 막아낸다.

보스니아인들 일부는 크로아티아로 피신하거나 크로아티아 인들과 교류를 가지며 카톨릭으로써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들을 크로아티아계라고 한다. 


나머지는 동방정교를 믿었는데

동방정교가 가장 강세였던 지역이 세르비아였기 때문에 정교를 믿는 슬라브인들을 세르비아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같은 슬라브 민족이지만 종교에따라 무슬림은 보스니아계, 카톨릭은 크로아티아계, 정교회는 세르비아계로 갈라졌다.



2.간단한 역사


이들은 19세기까지 오스만의 지배를 받다가 1차 대전 직전 러시아 제국의 동의를 받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합병된다.

1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슬라브계 민족들을 모아 대충 만든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탄생하였고 수장은 세르비아 왕국이 된다.

그러다 2차대전 때 공산화되어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탄생했고 티토의 죽음과 함께 갈라졌다.


여기서 슬로바니아, 크로아티아가 먼저 독립했다.

이 신생국가들은 막 탄생한 참이라 군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세르비아는 슬로바니아의 독립을 막을 명분이 없어서 대신 크로아티아를 탈탈 털었다.


하도 털리니까 크로아티아는 살아남기 위해 보스니아를 끌어들였다.

크로아티아는 잘 되면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계 지방을 먹고, 안되면 세르비아군 병력을 보스니아로 돌려서 병력을 분할 시킬 목적으로 보스니아에 개입한다.

동시에 크로아티아계는 무슬림과 세르비아계 인종청소를 시작했다.


세르비아는 다른 인종에 대한 악감정이 많았다.

2차대전 당시 나치가 대 게릴라 전술을 위해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계로 이루어진 현지 무장친위대를 조직해 세르비아계 마을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르비아계는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를 인종청소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유고 내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 세르비아를 적극지원했으며 UN내에서 방해공작을 펼쳤다.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UN의 미적지근한 대응과 더불어 엉망진창인 평화유지군 운용으로 전쟁이 길어졌다.

심지어 일부 평화유지군은 전투를 피하기 위해 보호중인 난민들을 폭도의 손에 넘겨주기도 했다.



3.전쟁 종식


UN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여론이 돌아서면서 부터였다.


1994년 4월, 세르비아계가 전쟁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했다.

포위한 세르비아군은 도로, 수도, 전기, 가스, 음식을 모두 차단하고 인종청소를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되어 움직이는 사람을 모두 죽였고 매일 융단폭격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사라예보의 홀리데이인 호텔에는 외신 기자들이 숙박하고 있었다.

외신기자들은 호텔 반경 500미터 내의 상황을 생중계했다.


여론이 돌아서자 미국에서는 UN개입이 결정되기 전 임시조치로 PMC를 파견하였다.

국내 여론까지 돌아서자 러시아의 옐친은 더 이상 보스니아에 개입하기 힘들었다.


결국 1995년 미국이 각 민병대 지도자들을 불러 데이튼 평화협정 서명을 강요하면서 전쟁이 종식되었다.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조 무력사용권을 박탈하는 내용

2~6조 당사자들에게 협정을 지키라는

7조 난민 건드리지 마라

8조 민병대를 해산하고 범죄 수사에 협력하라는 내용

9조 UN에 협조 안하면 개박살 내겠다는 내용

10조 각 민족 자치 정부를 인정하라는 내용

11조 안지키면 미국이 다 죽여버리겠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