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한커우 비행장의 소비에트 자원군. 왼쪽부터 차례대로 카모닌, 중화민국 비행사, 레베데프, 통역사.
소비에트 자원군(Советские добровольцы в Китае)은 1937년에 중화민국에 파견된 소련 공군의 부대로, 루거우차오 사건 후 중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소련이 국민당 정권에 보낸 지원이다. 중화민국의 원자재 수출을 대가로 62기의 I-15 전투기, 93기의 I-16 전투기와 8기의 UT-4 훈련기가 중국에 판매되었고, 소련 고문단 및 자원 조종사들도 중국의 요청으로 파견되었다. 1937년 10월, 450여명의 소련 비행사와 정비인력은 민간인 복장을 입은 채 비밀리에 155기의 전투기, 62기의 폭격기, 8기의 훈련기를 중국 내로 들여왔다. 이들에게는 서로를 '동지'로 부르지 말란 엄명이 떨어졌으며 만에 하나 생포 시엔 중국에 정착한 러시아 백군조직의 일원이라 둘러대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중화민국 공군 도장을 한 일류신 I-16 전투기.
그렇게 중화민국 조종사들과 함께 일제를 상대로 전투해 나가던 소련 공군은 1938년 2월 23일, 붉은 군대 창군 20주년의 날에 대담한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바로 포르모사(대만)에 있는 일본 비행장의 공습. 대만은 가장 가까운 해안의 푸저우 시와 150키로가 넘어가는 거리에 있었고, 1930년대 항공기의 역량으로는 여러 모로 무리수를 둬야 할 작전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공습을 감행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1938년 2월 초엽, 중화민국 총사령부는 일본군이 포르모사에 대규모 비행장을 완공시키는 것이 임박했음을 발견했다. 막대한 양의 항공기 조립 부품들이 매일같이 해로를 통해 포르모사에 실어 날라졌고, 일본군 기지에서 조립된 항공기들은 상하이 작전에 투입될 준비를 마쳐 가고 있었다. 중화민국 공군의 미약한 힘으로는 새로 대두되는 일본 항공대의 위협을 막아세울 수 없었다. 유일하게 비행장에 대한 직접 타격이 가능한 건 오로지 소비에트 자원군 뿐이었다.
2월 22일, 소비에트 자원군의 지휘관 파벨 바실리예비치 리차고프 소령과 대대 정치위원 안드레이 제라시모비치 리토프는 한커우에 있는 주 비행장에서 회의를 열었다. 폭격기 부대장 표트르 폴리닌 대위가 두 지휘관의 호출을 받고 다가왔다. 리차고프 소령은 지도를 펼쳐들며 해안에 손가락을 짚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 폴리닌 대위. 이후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를 수여받으며 독소전쟁 때는 레닌그라드 군관구의 제76항공군 사령관 등을 역임.
"내일 자네의 폭격대는 타이페이의 적 비행기지를 상대로 공습을 수행한다. 최단 거리로 비행해야 하고, 귀환 비행 중간에 푸저우에 착륙해서 연료를 재급유하라. 해안에서 23키로 안쪽, 산맥에 위치한 비행장이다."
소령은 지도를 가볍게 두드렸다.
"난창 폭격대의 폭격기 열두 기가 자네와 동행할 것이다."
포르모사는 호락호락한 표적이 아니었다. 소련 공군이 위치한 한커우 비행장에서 섬까지의 거리는 1000키로 이상, 투폴레프 SB 쌍발폭격기의 항속거리 이내에 겨우 간산히 들어갔다. 일본 비행장은 산악지대 한복판에 있었고 접근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전투기뿐 아니라 대공포좌들도 사방에 쫙 깔려 있을 터였다.
하지만 러시아 폭격기 승무원들도 그동안 많은 경험으로 단련된 정예였다. 전투기 호위 없는 작전에 이미 익숙해 있었고, 일본 육항대의 전투기를 따돌릴 정도로 빠른 투폴레프 ANT-40의 날쌘 속도를 믿었다.
중화민국 공군 도장을 한 투폴레프 SB 폭격기.
리차고프와 리토프가 떠나간 후 폴리닌 대위는 폭격대 항법사 페도루크를 불러 상의했다. 두 장교는 지휘관들이 결정한 대략적인 폭격 항로를 세부적으로 수정해 나갔다. SB의 항속거리 증대를 위해 13500-16500 피트의 고고도 비행이 결정되었다. 호흡 마스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폭격기 승무원들은 산소결핍에 시달리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폭격대는 포르모사 섬의 북쪽으로 접근한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후, 엔진을 끄고 12000 피트까지 활강하며 일본군을 기만하려 시도할 것이었다. 그 후로는 목표를 폭격한 후 해안으로 도망치는 일만 있었다. 해협에서 폭격기들은 6천 피트까지 하강하며 산소를 보충한 후 12000 피트로 도로 상승하며 적기의 추격을 따돌리고, 사전에 상의된 대로 산맥 비행장에서 재급유까지 완료하면 되었다.
작전 보안은 엄격히 유지되었다. 정비사들에게 폭격기 점검과 급유까지는 지시되었지만, 이륙 직전까지 무장은 명령되지 않았다. 한커우에 있을지 모르는 일본 첩자들을 속이기 위해 비행장의 나머지 인원들에겐 폭격대가 안칭 근처, 양쯔 강의 일본 해군을 공습하려 한다는 거짓말이 퍼트려졌다.
23일 새벽, 폭격기 승무원들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을 때 기상했다. 아침식사 이후 브리핑이 이루어졌다. 작전에 참여할 투폴레프 스물여덟 기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엔진은 예열되었고, 폭탄창은 가득 채워졌으며 기관총도 장전되어 있었다. 해 뜨기 직전, 비행사들은 각자의 폭격기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공습경보가 온 비행장에 울렸다. 어두운 반점들이 지평 너머에서 출몰했고, 경종 소리에는 일본 폭격기의 엔진음이 섞여들어갔다. 정비반원들과 승무원들은 황급히 엄폐물을 찾아 뛰었다. 각각 9기, 총 2개의 무리가 막 해가 떠오른 지평에 선명히 보였다. 일본 항공기들은 한커우 비행장을 향해 오고 있었다. 폴리닌 대위는 넋을 잃고 다가오는 적기들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고함 질렀다.
"쪽바리 놈들이 어떻게 알아챘지? 누가 배신한 거냐!"
막 활주로에 견인되던 폭격기들에게 이륙할 시간은 없었고, 비행장의 방공포대만으로 적기를 쫓기란 무리였다. 만일 폭탄으로 가득 무장한 폭격기들이 활주로 위에 있을 때, 일본 폭탄들이 떨어진다면... 폴리닌은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일본 항공기들은 돌연 기수를 돌려 창사 방향으로 유유히 멀어져 갔다. 소련 공군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아직도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른다. 아마 어두운 나머지 활주로의 폭격기들을 보지 못했거나, 애초에 한커우는 안중에도 없었고 창사를 향하던 비행기들이었을 것이다. 안도에 젖은 폴리닌은 활주로 끄트머리로 서둘러 달려온 리차고프와 리토프와 마주쳤다. 두 지휘관도 깜짝 놀랐다가 터무니없는 안도를 방금 느낀 차였다.
얼마 후, 소련 군사고문단장 미하일 드라트빈 소장과 공군무관 치가레프 대령도 현장에 도착해 공식 출정식을 열었다. 도열한 승무원들 앞에서 리차고프 소령은 짧게 연설했다. 그는 그날 - 2월 23일은 붉은 군대의 창군 기념일임을 강조하며 이 날을 특별한 방식으로 기념하자며 연설을 마쳤다.
0700시, 신호탄의 격발과 함께 폭격기들의 이륙이 시작되었다. 하나씩 활주로에서 발진한 폭격기들은 곧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16000 피트에 도달한 폭격대는 구름 위에서 대형을 짜고 포르모사 방향으로 날았다. 자욱한 안개 탓에 시계는 몇 키로 안으로 제한되었다. 온도계는 섭씨 4도를 가리켰지만 털 안감의 두꺼운 비행복을 껴입은 승무원들은 덥다고 느꼈다. 산소 결핍증의 초기 증상들 - 빈맥, 어지럼증, 졸림이 시작되었다. 폭격기들은 양쯔 계곡과 포양호를 지났다. 구름이 점차 옅어졌다. 한 시간 후, 폭격기들은 항로상에 있는 마지막 중국 도시 푸저우 상공을 날고 있었다.
15분 후, 옅은 구름 사이로 포르모사 섬의 해안이 보였다. 폭격대는 계획대로 섬의 북단까지 난 후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높다란 산봉우리에서 내리깔린 짙은 구름이 땅을 뒤덮고 있었다. 폴리닌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금 이대로 폭격을 감행하고, 폭탄들이 마구잡이로 떨어진다는 걸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첩첩산중 한복판에서 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데 구름 밑으로 하강할 것이냐. 항법사 페도루크의 침착한 목소리가 무전으로 울렸다.
"목표에 접근 중. 명령을 기다립니다, 대위님."
폴리닌은 위험을 무릅쓴 하강을 결정했다. 잠시 후, 폭격대 밑의 구름에 마침 구멍이 뻥 뚫렸다. 아래로 타이페이의 바쁜 거리들이 언뜻 보였다. 필시 기지도 가까우리라. 폴리닌은 대형의 선두에 서서 구름의 틈바구니로 곧장 향했다. 폭격기들은 감속하며 하강을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어느 때에라도 일본 요격기들이 출몰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기총수들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사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일본 요격기들은 출격하지 않았으며 대공포화도 침묵했다. 일본군의 지상 관측병들은 북쪽에서 오고 있는 밀집 대형의 폭격대를 그냥 아군으로 판정해 버린 것이다.
포르모사의 주 비행장은 대단한 광경이었다. 전투 준비가 완비된 항공기들은 두 열로 늘어서 있었고, 흰 페인트로 칠해진 격납고들과 거대한 연료 저장고들이 기지 반대편에 놓여 있었다. 항공기 부품으로 가득한 회색 상자들이 사방에 놓여 있었다. 일본군은 포르모사가 공격받을 리 없다고 과신하며 그 어느 위장 시도도 해놓지 않았다. 활주로에 늘어선 비행기들에 새로 칠해진 붉은 태양 무늬가 선명히 빛났다.
10000 피트까지 하강한 폭격대는 최초 폭격을 감행했다. 폭탄들은 활주로 중앙에 오밀조밀 밀집한 적기들을 타격했다. 그 이후 폭격대는 각각 야코프 프로코피에프와 바실리 클레프초프가 이끄는 편대로 나뉘어 격납고와 물품 창고와 연료 저장고들을 공습했다. 연료 저장고들은 화려한 2차 폭발을 선보이며 유폭했다. 소련 폭격기 28기는 각자 10발씩, 총 280발의 폭탄을 전부 떨어트렸다. 뒤늦게 사격을 개시한 일본 대공포화는 단 한 기의 폭격기도 잡아내지 못했다. 육중한 폭탄을 토해내고 한결 가벼워진 폭격대는 이미 전속력으로 해협을 건너 중국 해안으로 내빼는 중이었다.
푸저우에 있는 재급유 활주로는 좁은 데다가 산과 늪지대로 제약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폭격기는 안전히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몇 기의 폭격기가 푸저우 비행장을 들리길 깜빡하고 쭉 한커우로 향하다가 부랴부랴 귀항해야 했고, 이는 시간 지연을 초래하며 폴리닌 대위를 초조하게 했다. 지상에서 일본군의 보복 공격에 개죽음당하긴 싫었다.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클레프초프 중위가 난처해하는 걸 본 대위는 말을 걸었다.
"뭐가 문젠가?"
"해협 상공에서 왼쪽 엔진이 나갔습니다."
클레츠토프는 한쪽 엔진이 고장난 쌍발 폭격기를 어찌저찌 푸저우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곧 비행장의 정비사들이 엔진 고장을 수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피해는 다른 폭격기의 조종사 시니친이었는데, 그는 산소 결핍증으로 쓰러져 한커우까진 승무원으로 뒤에 탑승해야 했다. 난창 폭격대의 예비 조종사 하나가 시니친의 자리를 대신해 폭격기를 몰았다.
일곱 시간 동안 작전을 수행한 폭격대는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한커우에 귀환했다. 중화민국 공군의 연락장교 하나가 지도책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 공군은 기밀 엄수를 위해 중국 측에 작전의 목표를 사전 통보하지 않았고, 중국군은 그들이 타격한 곳을 알고자 했다. 폴리닌은 두꺼운 지도책을 휙휙 넘기다가 포르모사의 지도가 나오자 손가락을 가리키며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탄성을 지른 연락장교는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자동차로 뛰어갔다.
한편, 중국 민중에게도 슬슬 공습의 소식이 흘러나갔다. 몇 시간 후, 소련 비행사들은 비행장에서 숙소로 귀환하는 길 양편에 몰려든 군중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며 "하오, 하오!"와 "하라쇼!"를 외쳤다. 비행사들의 숙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엄지를 척 들며 계속 "타이완! 타이완!"을 반복했다. 여태까지 암울한 전황에만 마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에게 성공적인 공습은 신선한 활력의 원천이었다. 색색의 등불과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한편으로, 해안 근처, 푸저우의 주민들도 밝은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경우에는 해협 저편에서 아직까지 붉게 타오르는 일본 비행장의 빛이었지만.
다음날, 기상 조건은 비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소련 비행사들은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 이후 리차고프 소령에게 보고한 폴리닌은 매우 기뻐하는 상관과 마추했다.
"한커우 사람들 모두가 어제 공습만을 말하고 있다. 방금 지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오늘 자네를 위한 축하연이 열릴 거라고 한다."
축하연에 참석한 여러 고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의 영부인 쑹메이링이었다. 상석에 앉은 그녀는 옆자리에 폭격대 지휘관이었던 폴리닌 대위를 불렀다. 반대쪽에는 고문단장 드라트빈 소장이 앉았고, 공군참모 치가레프, 그리고 리차고프와 리토프 등도 축연에 초대되었다. 자리에는 중화민국 공군 사령관과 한커우 지사, 그리고 중국의 고위 관료들도 동석하고 있었다. 소련 비행사들과 항법사, 기총 사수들은 연회장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탁자 두 개를 독차지했다. 쑹메이링의 건배사로 시작된 축연은 키릴 문자로 "RKKA의 자원 비행사들에게"라 적힌 거대한 케이크로 끝났다.
포르모사 공습은 여러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특히나 일본군에 있어서는 충격이었다. 타이페이 비행기지가 한 달 동안 가동 중지되었고, 약 40대의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수리의 여지도 없이 파괴되었다. 많은 수의 조립 중이던 비행기들 역시 컨테이너에서 꺼내지지도 않은 채 파괴되었다. 격납고들은 불탔고, 더 중요하게도 3년치 비축분의 연료가 있던 저장고들이 불타올랐다. 일본군은 기지 사령관을 군사재판에 회부시켰고, 그는 이내 할복 자살했다.
이후에도 4월 28일, 천장절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일제와 우한 항공전에서 교전하며 계속 전과를 올리던 소비에트 자원군은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며 철수가 지시되었다. 이후로 중화민국 공군은 미국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셰놀트의 중화민국 공군 제1미국인 의용대대, 일명 플라잉 타이거즈다.
출처.
Polynin F.P. Boevye marshruty [The Combat Routes] (Moscow, 1981).
Rumyantsev H. "Operatsiya 'Formoza'" [The Mission to Formosa], collection of articles Shagnuvshiye v bessmertiye, in 3 vols (Saratov, 1971) I:59-66.
Red Riposte: the Soviet Volunteer Group Over Formosa. (n.d.). Retrieved from http://worldatwar.net/chandelle/v3/v3n1/luks.html
이륙쯤에 걸렸으면 깨강정 됬겠네
소련도 폭격 오지게 잘했네
와 ㅅㅂ 대만 포격한방이 엄청컷구나
아니 할복자살 실화냐 - dc App
이래도 좆련이냐!
중화민국이 독일 뿐만 아니라 소련과도 붙어 먹은 적이 있었구나. 중공만 척결했으면 스탈린과 장개석이 잘 지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두 들구 말야.
스탈린은 개인적으로 장개석 인상이 좆병신같다고 싫어함
스탈린은 모택동도 유사 공산주의자라고 안좋아했음. 미영 보다 늦게 중화인민공화국 인정함
머머리는 어쩔수없지
ㄴ 미국 친구들도 별로 안 좋아햇던 거 같은데... 그나마 독일이 제일 나았던 셈인가?
SB 103 폭격기 같은데 저 폭격기 엔진출력이 한쪽당 1100마력일텐데 쌍발엔진중에 엔진하나 뒤지면 남은엔진으로 비행이 가능하긴하냐?
심지어 저거 37년 가을에 건너간 폭격기라서 이스파노수이자 12Y 쓰는 2M-100 기종임. 뭐 활주로 임박해서 늦게 고장난 거면 천천히 떨어지면서 활강 비스무리하게 했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