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에 루산 회의에서 기근 문제로 주석과 대립했던 펑더화이 사령관은 1966년 12월 (27일) 쓰촨 성에서 장칭(모택동 부인)의 명령을 받은 홍위병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끌려왔다. 그에게 닥쳐올 시련은 너무도 뻔했다. 뤄루이칭과 마찬가지로 감옥에 끌려갔고 끝없이 이어지는 비판 대회와 마주했다. 한 목격자는 그가 지붕을 씨우지 않은 대형 트럭 화물칸에서 홍위병에게 둘러싸인 채 실려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반항적으로 고개를 쳐들려고 했지만 한 왜소한 학생이 매번 목을 때리면서 고개를 숙인 채 복종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거의 전설로 여겨지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 그조차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런 무법천지에서 우리같은 일반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목이 메였고 울고 싶었다.>
문화대혁명, 프랑크 디쾨터, 열린책들.
알렉산드르 판초프의 마오쩌둥 평전에 따르면, 펑더화이는 홍위병들에게 100여 차례의 고문을 받아 얼굴이 뭉개지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폐기능이 정지되었다. 홍위병들은 만신창이가 된 그를 비투회에 끌고 다니면서 노리개로 삼았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말년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수감 이후 그는 마오쩌둥에게 "마지막으로 경례를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유언을 보냈다. 그는 베이징의 감옥 의무실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기에는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거의 전설로 여겨지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런 그조차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런 무법천지에서 우리같은 일반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목이 메였고 울고 싶었다.>
문화대혁명, 프랑크 디쾨터, 열린책들.
알렉산드르 판초프의 마오쩌둥 평전에 따르면, 펑더화이는 홍위병들에게 100여 차례의 고문을 받아 얼굴이 뭉개지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폐기능이 정지되었다. 홍위병들은 만신창이가 된 그를 비투회에 끌고 다니면서 노리개로 삼았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말년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수감 이후 그는 마오쩌둥에게 "마지막으로 경례를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유언을 보냈다. 그는 베이징의 감옥 의무실에서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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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덕회가 팽당했네 - dc App
얘가 조온나 유능하던애아님? 6.25 중궈애들 전술 오지던데
ㄴ 평덕회는 몇몇 미군들도 좋게 봤었음. 회담 자리에서 평덕회한테 중국어로 인사하고 대화하고 싶어서 백선엽 장군한테 중국어 배워가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