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당시 반도전역에서 벌어진 참극은 마치 20세기 전쟁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프랑스군들은 스페인 게릴라들이 교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비적떼"에 불과하단 이유로,

스페인 독립군 게릴라들은 조국의 해방과 복수를 위해서란 미명으로 각자 서로가 저지르는 추악한 고문과 학살을 정당화했다.


게릴라들이 보여준 잔혹함은 대부분 프랑스군의 만행이 낳은 자연스런 결과로,

점령군의 약탈과 파괴로 인해 도시와 촌락이 잿더미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809년 포르투갈에서 어느 영국군 장교가 목격하고 기록한 현장은

반도 전역에서 무수히 자행된 만행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프랑스군들이 숙영지로 썼던 들판을 지나갔다.

온갖 가구부터 심지어 도자기류까지 가까운 마을의 집에서 빼앗아 들고 온 물건들이 들판에 가득했다.

진흙밭 위에 침대와 매트리스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갖가지 기물과 가구에서 빼낸 서랍은 여물통으로 쓰였다.

옷장은 침대틀이나 움막집의 지붕으로 변신했고, 도자기와 유리제품은 죄다 산산조각나 바닥에 널려 있었다.

교회의 무덤들조차 프랑스군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제단의 촛대, 찢어진 제의, 성배, 기도서 등이 한데 뒤섞여 지푸라기와 오물에 파묻혀 있었다."


프랑스군의 징발과 약탈, 신성모독이 농부들을 빨치산으로 몰려들게 만들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은 현지인들에게 저질러진 학살이었다.

1811년 산타렘에 입성한 영국군 코스텔로 일병은 난도질당한 포르투갈인들의 시체로 메워진 우물을 발견했다.

그가 마을 광장에서 마주친 광경은 다음과 같았다.


"살해당하고 유린당한 여인들, 울부짖거나 죽어가는 아이들...

목숨이 아직 붙어 있던 마을 안의 모든 것들은 땅에 널브러진 채

끔찍한 학살이 안긴 고통의 말미에서 가냘프게 몸을 떨고 있었다."


반도 전역은 아주 자연스럽게 피로 피를 씻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었고, 게릴라들은 프랑스군의 작전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안겼다.

전령 한 사람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데 200명의 기병이 동행해야 했고,

군대와 떨어져 단독으로 이동하기를 원한 어느 장군을 호위하는 데만 1천 명의 병력이 필요한 판이었다.

1813년 여름에는 괴뢰왕 조세프 - 나폴레옹의 큰형 - 의 친서를 안전하게 파리로 보내기 위해

무려 1500명의 병력이 프랑스 국경까지 호위해야 했다.

전령을 호위하고 수송대를 엄호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의 중요 도로들을 따라

머스킷 총알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거대한 목재 건물들로 이뤄진 프랑스군의 소규모 요새들이 줄줄히 늘어섰지만

1812년경부터 영국이 게릴라들에게 경포를 풀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낙오병이나 전령, 소부대, 초병을 막론하고 게릴라들에게 사로잡힌 불운한 프랑스 병사들이

비교적 편한 죽음을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프랑스군의 프랑수아 대위는 그가 목격한 지옥도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우리 군의 장교와 병사들, 심지어 여자들마저도 배가 갈라져 있었다.

어떤 이들은 두 장의 널빤지 위에 놓인 채 톱으로 두 쪽이 나 있었다.

또 다른 이들은 산 채로 헛간 문에 못박히거나, 머리부터 타도록 불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프랑수아 대위는 낙오병들을 학살한 용의자들의 마을을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주민들을 한 줄로 세워

자기 차례를 앞두고 범인을 지목하는 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 총살했다.


한 프랑스 야전병원에서는 400구나 되는 환자들의 시신이 그곳을 점령한 게릴라들에게 학살당해 나뒹굴었다.

프랑수아 대위는 그 뒤에도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학살당한 1200명의 부상병들 가운데 홀로 살아남아

정신이 나가버린 병사와 마주쳤다.

어떤 이들은 돌에 맞아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 꼬챙이에 눈을 잃은 후 작렬하는 태양 아래 말라 죽도록 방치되거나

나무에 묶인 채 거세당해 과다출혈로 죽어가기도 했다.

르네 장군을 사로잡은 게릴라들은 물이 펄펄 끓는 커다란 가마솥 위에 발끝부터 닿도록 그를 매단 다음,

그가 죽을 때까지 무려 몇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조금씩 줄을 밑으로 내렸다.


유의할 점은, 금전적인 동기가 이러한 학살 행위에 미친 영향이다.

게릴라들 중에는 전리품이나 프랑스군의 전갈을 가로채 웰링턴의 포상금을 노리려는 흉악범에 불과한 자들이 상당수 끼여 있었고,

이들의 만행은 빨치산 활동의 최대 수혜자였던 웰링턴조차도

"스페인인은 한번 흥분하면 통제불능의 야만인으로 변한다"고 불평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이다.

막 살육의 현장에서 돌아온 게릴라와 마주친 어느 영국 군인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비단주머니 속에

잘라낸 귀와 금반지 낀 손가락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 게릴라는 험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폴레옹은 말이지, 자기 병사들을 사랑해."

그리고 그건 까마귀들도 마찬가지지.

그놈들은 우리 덕에 먹잇감이 넘치고 있거든.

프랑스놈들이 스페인에 발붙이고 있는 한, 까마귀들은 절대 배고플 일은 없을 거야."





- kodef 세계 전쟁사 "나폴레옹 전쟁"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