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알려진 것과 달리, 페이디페디스(Pheidippides)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헤메로드로모이였다. 헤메로드로모이는 "하루 종일 달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고대 그리스군의 병과였다. 헤메로드로모이의 역할은 단순한 전투의 일부를 넘어 신성한 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초기 그리스 올림픽 선수의 트레이닝과 올림픽 준비, 묘사에 대한 여러 저작들이 존재하는데. 이 중 몇몇은 신비스러운 헤메로드로모이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믿을 수 없는 거리를 오직 발로 주파하고, 바위 투성이와 산이 가득한 지역을 넘어서, 필요하다면 수면을 포기하면서까지 전령으로써의 의무를 수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페이디피데스처럼 나 또한 장거리를 달린다. 몇 년 전인, 나의 30번째 생일, 나는 30마일(역주 : 48.28032km)을 달려서 나의 불운한 생애를 축하하는 거리를 완성했다. 그날 밤은 영원히 내 삶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나는 더 멀리, 심지어 50마일(역주 : 80.4672km) 완주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했다. 트레이닝과 인생은 불가분하고, 동일하며, 친숙하게 뒤영켰다. 이런식으로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은 자유를 의미했다. 나는 페이디피데스에게 친밀감을 느꼈고 고대 그리스 산비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잘 알려진 이야기는 마라톤 전장의 승리 직후, 약 25마일(역주 : 40.2336km) 거리인 아타네까지 달려와 그리스의 승리를 알리는 페이디피데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먼저, 페르시아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아테네군을 지원할 스파르타 원군을 끌고 오기 위해 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달려갔다. 그 거리는 마라톤 완주 거리보다 훨씬 더 길었으며, 마라톤을 6번 뛰고 거기에 150마일을 더한 것과 같은 거리였다. (역주 : 494.571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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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운동선수들은 무화과와 다른 과일, 올리브, 말린 고기, 갈아서 가루로 만든 참깨와 꿀을 반죽한 특별한 혼합물(현대에는 파스텔리라고 부른다)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있었다. 또한 헤메로드로모이는 지구력과 체력을 향상시킨다고 여겨졌던 Hippophae Rhamnoides(산자나무라고도 한다)의 작은 과일을 한 움큼 먹었다. 이것이 페이디페디스가 달리는 동안 보급하는 방법이었고, 내가 달리는 동안 보급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 딘 칼나지즈 저, The Road to Sparta에서 발최






 어떤 경우에서든, 헤로도토스에는 페이디페디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헤로도토스의 관련 구절 (역사, 제6권, 105~106, 105~106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저술하고 있다.


『그들이 도시를 떠나기 전 아테네의 장군들은 스파르타에 메세지를 보냈다. 전령은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써, 페이디피데스라는 이름의 아테네인이었다. 그가 돌아오는 길에 아테네인들에게 전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페이디피데스는 테게아 위쪽 파르테논 산에서 목신 판을 만났다고 한다. 판은, 그의 말에 따르면, 페이디피데스의 이름을 불러, 자신의 친근하고 짖꿎은 장난과 판이 과거에 아테네인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아테네인들이 자신에게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물어보라 했다. 아테네인들은 페이디피데스의 이야기를 믿었으며, 아테네주가 다시 번창하자 판에게 신전을 지어주었고, 그의 신탁이 도착할 때마다 그의 보호에 합당한 성화 경주와 희생 의식을 치뤘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즉 페이디피데스가 아테네의 지휘관들에게 임무를 받아 수행하고 판을 보았다고 말했던 때, 그는 아테네를 떠나 스파르테에 도착하여 스파르타 정부에 그의 전갈을 전달했다. "스파르타의 남자들이여" (전령이 이어 말했다) "아테네인들이 당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의 도시가 침략자의 손에 짓눌리고 파괴되는 동안 좌시하지 말 것을 호소합니다. 현재도 에레트리아는 노예가 되었으며, 그리스는 하나의 훌륭한 도시를 잃어서 약해졌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전갈에 감동하여 기꺼이 도움을 보내고 싶었지만, 법을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곧장 지원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 때가 그 달의 9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스파르타인들의 말로는 보름달이 뜨기 전에는 전장에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스파르타인들은 보름달을 기다렸고, 한편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 히피아스는 페르시아인들을 마라톤으로 안내했다.』


- 위키백과 Pheidippides 항목







실제로 페이디피데스는 오래 뛰는 걸로 먹고 살던 사람이라 마라톤 전투 후에도 멀쩡히 잘 살았다고 한다.

페이디피데스가 승리를 알리고 죽었다는건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1879년 발표한 "페이디피데스"라는 시에서 각색된 이야기.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브레알은 자신의 친구이며 올림픽 경기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텡에게 이 사건을 기리는 경기를 만들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마라톤이 생겼다고 함.


참고로 파스텔리는 그리스식 참깨강정. 여러분에 군대에서 먹었던 그거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