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Hrušecký tank 1970


19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 사건이 일어나자 소련은 재빠르게 군대를 파견하여 체코를 "정상화"시켰다.

그렇게까지 억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개혁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둬야했다.

블라디미르 베네시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베네슬라프 인근 마을에 살던 베네시 씨는 오스트리아로 탈출을 계획했다.

베네시 씨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국경 사이에 있는 철조망을 뚫고 가기를 원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소유한 바르트부르크 311 차량 위에 1.5mm 두께의 철판 네 개를 덮었다.

해당 철판은 브르체슬라프에 위치한 체코 국영회사인 구모텍스 브르체슬라프(Gumotex Břeclav)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상부에는 가짜포탑을 달았고 이 가짜포탑은 장착된 가짜포신을 전기장치를 이용해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었다.

이는 오직 위협용도였고 달리 무장은 없었다.


모든 작업은 1970년 5월 19일에 완료되었다.


해가 지자 온 가족은 이 탱크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6km 정도 이동한 후 차량의 전기장치가 불량을 일으켰다.

베네시는 다리 밑에 차를 버려두고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이 사건을 접한 기자가 술에 취한채 기사를 썼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다.


베네시 가족의 운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는 베네시의 부인과 두 자녀는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날이 밝자 경찰은 기묘한 전차를 발견했고 이 소유주를 밝혀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은 베네시를 체포하여 총살했다는 발표를 했고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절망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버려진 부인과 아이들이 차량에서 울고 있었다는 이야기었다.

발견한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였고 이들은 당국에 체포되었다.

여기서 부인은 베네시 씨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는 증언을 남겼다고 한다.


어쨌건 베네시 씨는 국경에 도착하여, 신호용 전선을 교란해서 아무 신호도 가지 않게 만든 후 국경을 넘었다.

베네시 씨는 오스트리아 Traiskirchen에 위치한 망명신청 캠프에 도착하여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베네시는 체코 정부에 의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아내는 8개월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7년 후, 베네시 씨는 아내와 연락할 수 있었고 가족들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체코 국경수비대는 이 차량을 조사한 후, 6월에 체코 경찰 박물관에 달하하였고 외부 장갑을 새로 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