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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폭풍』이 출간된 지 거의 20년 후에,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항상 8월의 폭풍이 소련군의 만주 작전의 공식적인 작전명이라고 착각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옥스포드 제2차 세계대전 아틀라스』(Oxford Atlas of World War II)는 유명한 작전명들을 기록한 용어집에서 ‘8월의 폭풍’을 소련군이 1945년 8월에 실시한 만주 작전의 작전명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러시아의 연구 몇 가지도 이 공세를 8월의 폭풍이라고 쓴다.
필자에게 ‘8월의 폭풍’ 이라는 말이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물어본 몇몇 이들에게 대답한 내용을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밝힐까 한다. 그 말은 1983년에 우리 가족이 포트 레븐워스의 로즈 루프(Rose Loop)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탄생했다. 전투연구소의 편집자는 내게 연구의 제목을 ‘소련군의 만주전략공세, 1945년 8월’로 하자고 요청했다. 우리 가족은 그 제목이 적절한지 고민했는데, 당시 10살이었던 내 딸 수지(Susie)가 이렇게 물어보았다. “소련군이 공격을 시작할 때 비가 거세게 내리지 않았나요?” 내가 “그랬지.”라고 대답하자 수지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8월의 폭풍이라고 불러야겠네요!” 내가 수지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8월의 폭풍”이 탄생했고 나 자신의 역사도 탄생했다. 실로 역사의 변덕이었다.
역자: 이 부분은 책의 맨 뒤에 있는 저자 글랜츠 박사의 글 "8월의 폭풍과 사막의 폭풍의 관계"의 맨 뒷부분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2017년 일본 방위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곳으로 저자의 허락 아래 단독 공개된 것입니다. 훗날까지 여러 오해를 일으켰던 "8월의 폭풍"이란 명칭이 1983년 당시 10살짜리 애기에게서 나온 말이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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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모르겠는데 언니(또는 여동생)인 메리 E. 글랜츠 박사는 현재 국무부 러시아과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똑똑한 딸 추
아무리 그래도 "8월의 폭풍"이라니 작전명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너무 간지나자나요
똑똑추 - dc App
열살배기가 만들어낸 역사...
작명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