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 독립전쟁이 남긴 빚더미 위에 앉아 있던 신생 미합중국의 각 주들은 세금을 올려 부채를 청산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빚에 허덕이고 있던 가난한 농부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주 정부가 부유한 채권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을 쥐어짠다고 생각했고,
결국 농민들의 압력을 못 이긴 주 의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거의 종잇조각이나 다름없는 지폐를 발행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던 농민들은 1달러가 몇 페니로 변한 물가 덕분에 어떻게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메사추세츠 주 의회는 전국에서 제일 완고했고, 급기야 1786년 7월에 더 이상 지긋지긋한 항의를 듣지 않으려고 6개월간 정회를 선포했다.
빡친 농민들이 일찌기 독립군 대위였던 서른아홉 살 대니얼 셰이스의 아래로 몰려들었다.
일찌기 렉싱턴-콩코드 전투의 소식을 듣고 피가 끓어 자원입대한 셰이스는 저 유명한 벙커힐 전투에까지 참전했었지만
그 뒤로 10년이 지나도록 밀린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그 해 여름 내내 셰이스의 무리는 담보물 처분을 담당하던 민사법원을 힘으로 점거하고, 보안관이 담보물을 파는 것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했다.
겨울이 오자 급기야 그들은 본격적으로 반란군이 되어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스프링필드에 있는 연방정부 무기고로 행진했다.
다음해 1월 중순에 벤자민 링컨이 급조한 주 민병대가 반란을 싱겁게 제압했다.
셰이스와 주동자들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후에 사면되었고, 메사추세츠 주는 농민들에게 세금을 낮춰 주고 부채 상환 기간을 연장해 줌으로서
소가 완전히 도망가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
이 해프닝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있던 제헌회의 대표단이 새롭고 강력한 연방정부를 탄생시키고자 한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미국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에서
그 뒤로 10년이 지나도록 밀린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빡칠만 했네. ㅗㅜㅑ
미국이 초보나라 였던 시절 - 光復香港 時代革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