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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넷 랭킨은 공화당 출신 하원의원으로 1880년 몬타나주에서 태어났다.


1910년부터 여성참정권 로비스트로 활동한 그녀는 1916년 하원의원 투표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때 그녀는 "내가 최초의 여성의원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참고로 이때 여자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당시는 1차대전이 한창이었는데, 평화주의자 였던 랭킨은 반전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녀는 "전쟁을 하고 싶다면 젊은이들은 내버려두고 늙은이들이 전쟁에 나서야 한다" 라는 연설을 하며 적극 반대했다.


1917년 독일이 무제한 잠수함전을 시작한 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주주의 세계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전쟁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투표 중 그녀는 무심코 "나는 조국을 지지하고 싶지만, 전쟁을 지지할 수는 없다"라는 연설을 했다.

실은 이는 투표 시작 후에는 발언할 수 없다는 의회 규정을 어긴 것이었다.


1차대전 참전 투표에서 반대표는 50개가 나왔지만, 그녀는 이 연설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이로 인해 주전파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아마 여자 의원이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해 가을, 그녀는 여성참정권 지지 연설에서 "신사여러분, 여성들의 요구에 어떤 대답을 돌려줘야 합니까? 세계 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해 전쟁에 찬성했던 의회가 여성들에게 사소한 민주주의의 권리를 주는 것을 거부한다면 대체 여자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라는 연설로 지지표를 끌어내었다.

덕분에 여성참정권은 간신히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거부권을 발동했다.


1차대전이 끝난 후, 그녀는 사회활동가로써 아동노동금지법 등을 통과시켰으며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전국전쟁예방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0년 전쟁 위기가 다가오자 그녀는 하원 의원으로 복귀하였다.

랭킨은 당시 고립주의자 의원들과 많은 부분에서 견해가 일치하였으나, 고립주의자 파벌과는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


1941년 그녀는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중 일본의 진주만 기습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참전 찬성을 호소하는 유명한 연설을 한 후, 의회에서는 짧은 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랭킨은 거듭 반대발언을 하려고 했으나 하원 의장은 그녀에게 앉으라고 요구했다.

또한 동료의원들은 찬성 투표를 하거나 기권하라고 설득하려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랭킨은 의원들의 야유의 합창 속에서 "여자인 나는 전쟁에 나갈 수 없고, 다른 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 또한 거부한다"라고 대꾸했다.

이런 해프닝 후에 2차대전 전쟁참전법은 388대 1로 통과했다.


투표 직후 랭킨은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

기자들이 랭킨을 쫓아왔고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에게서 온 전보에는 "몬타나 주의 전원이 너에게 반대한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녀는 경찰 호송을 받기 위해 공중전화박스로 대피했다.

랭킨은 유권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내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뽑았다. 나는 내 신념과 선거 공약을 이행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사석에서는 "나에게는 정직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다음날 공중전화부스에 갇힌 랭킨의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선택은 그녀의 정치 경력에 치명적이었다.

3일 후 일본의 동맹국들에게 선전포고하는 표결안에 대해 랭킨은 기권했다.


그녀는 언론과 동료 의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시작했고, 재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훗날 이 선택에 후회하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하지 않는다. 전쟁은 분쟁을 해결하는 잘못한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의원직을 그만둔 이후에도 반전활동을 계속했다.

그녀는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1950년 한국전쟁 참전을 반대하는 랭킨 시위대를 이끌었다.

1973년 5월 18일, 그녀는 베트남전에 반대하기 위해 하원출마를 계획 중에 고령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93세였다.


미국하원에서는 랭킨의 신념과 유의미한 반대를 기려 하원 해방관 내부에 랭킨의 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