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란 나라는 원래 낮은 수준의 재정규모를 유지함으로서 안정적인 문치주의를 유지했고 농민들의 군역부담이 경감되어 대신 농업생산력이 크게 증가됨.. 조선의 안정적인 문치와 준수한 생산력을 가진 농촌에 대해 촘촘한 행정력을 발휘하여 전시에 방대한 동원능력을 가질 수는 있게 하였음..


실제로 임란초기 상주-탄금대 전투에서 조선은 미리 준비한 작계에 따라 북상하는 고니시의 주력군 앞에다 일본 주력부대의 2-3배는 되는 병력을 모아 놓을 수 있었음.. 이 만단위가 넘는 병력도 무장이나 장비수준도 작계에 따라 기본이상은 하는 수준이었고 따로 편성한 경군 8천에는 전부 전마 1필씩을 줄 정도로 기병전력도 충분히 동원이 가능했음.. 


기본이상의 무장이나 장비를 갖춘 수만 단위의 병력을 적시에 동원하는 능력은 영지인 보헤미아를 완전 전쟁기업으로 만든 30년 전쟁기의 발렌슈타인이나 프로이센을 전쟁을 위한 기계로 만든 프리드리히 대왕에서나 볼 수 있는거고.. 이걸보면 조선이란 나라의 행정력의 대단함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조선의 동원력 = 조선의 군사력 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는게 문제였음.. 준수한 무장과 장비를 갖춘 수만의 병력과 1명당 군마 1필씩을 받은 8천의 경군들은 장비나 편성수준은 완편되었지만..  "상비군"이 아닌 탓에 전혀 병사라고 할 수가 없었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평시에 양성된 중간급 군관들이 전무한 탓에 (상주-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가진 하급 군관수는 80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함..) 병력을 수만을 모아 놓아 봐야 제대로된 전투를 지휘할 수가 없었다는 것..


즉 임란때 일본군이 조선에게 느낀 것은 수세기를 뛰어넘는 오버 테크놀러지 수준의 막강한 행정력에 놀라고 그 놀라운 동원력의 실체가 전혀 전투를 할 수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는 수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