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레브뉵에 따르면 스탈린의 거듭된 실정은 그의 독단을 가능케 했던 독재 정치와 그의 세계관 및 성격이 결합된 결과였다는 것이 논지이다. 이런 실정을 양산한 스탈린 체제는, 그에 의하면, 전체주의 사회라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다. 테러의 국가도구화, 전통적 사회관계의 파괴, 사회의 원자화, 그리고 이데올로기 조종 모두가 소련 체제에 존재했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흘레브뉵의 개념은 과거 1950년대 서방 사회과학자들과 페레스트로이카 시대 소련 지식인들의 전체주의론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간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이 낡은 틀을 그가 다시 꺼내든 이유를 추정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전체주의론의 이론적 적실성을 학문적으로 주장하고자 함이 아니라, 스탈린 체제에 대한 수사적인 공격을 위함일 것이다.
농민들의 지위는, 흘레브뉵의 표현에 따르면, "농노" 또는 국가에 완전히 예속된 상태로 떨어졌으며, 기근이 덮치 소련의 농촌에는 영아살해나 식인행위와 같은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모습들을 두고도 스탈린은 소련 사회와는 물론 정치권 내부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농촌의 실상은 그의 정책 변화에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수많은 농민들의 편지들은 대부분 스탈린의 책상에까지 이르지도 못했다.
다음으로, 1930년대 말 대숙청이 야기한 피해 역시 흘레브뉵이 자세히 다루는 부분이다. 그에 의하면, 이 대숙청이 본질적으로 당원이나 관료 등의 엘리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몇몇 서방의 학자들의 주장은 그 기간의 초반에는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했던 숙청의 후반기는 보다 넓은 계층과 민족 일반을 표적으로 하는 전반적인 테러였다. 그 결과, 전 인구의 3%에 해당되는 거대한 수가 소위 강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었다. 강제 노동 수용소, 즉 굴락은 스탈린 시대 소련 삶의 "가장 중대한" 부분이었다고 그는 선언한다.
러시아 역사가의 스탈린 신화 깨기 기획, 노경덕, 인문노총 제73권 제2호(201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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